11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열린 ‘소아청소년과 탈출을 위한 학술대회’에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등 800여명이 몰렸다고 한다. 소아과 문을 닫고 다른 과목으로 개원하려는 의사들을 대상으로 보톡스 등 미용과 당뇨·비만 등 성인 만성 질환 치료 노하우를 알려주는 자리였는데 일대 성황을 이룬 것이다. 소아과 전문의가 없어 응급실 뺑뺑이를 돌다 숨지는 일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소아과 진료를 접겠다는 의사가 많다니 소아의료 시스템 붕괴마저 우려된다.
소아과 위기는 사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5년간 폐업한 소아청소년의원이 662개에 달한다. 소아과가 사라지면서 서울에서도 진료 대기에만 3~4시간 걸리는 게 보통이다. ‘병원 오픈런’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재난 상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종일 아이 진료를 위해 헤매야 하는 중소 도시는 말할 필요가 없다. 응급 상황에선 더 취약하다. 지난 어린이날 응급실 5곳을 돌다 끝내 숨진 사례에서 보듯, 소아 응급환자를 받지 않는 병원이 대부분이다. 응급진료가 가능한 한두 곳에만 몰리다 보니 결국 골든타임을 놓치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 의료선진국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의료 현장도 아우성이다. 지난 9일엔 국내 아동전문병원들이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부족으로 평일 야간 및 휴일 진료시간 단축을 선언했다. 의사가 줄어 의사 한 명의 주당 평균 근무시간이 78시간에 달해 진료시간을 줄일 수밖에 없는 사정이 이해가 간다.
문제는 소아과 기피 현상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올해 전공의 지원율은 16.6%로, 2019년 지원율 80%의 4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등 대형 병원도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실정이다. 인기가 떨어진 데에는 다른 진료 과목에 비해 수가가 낮고 비급여 진료가 많지 않아 수입이 떨어진 탓이 크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0년 의사 평균 연봉이 2억3000만원인데 소아청소년과 의사는 1억875만원으로, 전체 임상과 의사 중 가장 낮다. 평균의 절반도 안 된다. 여기에 악성 민원과 잦은 소송에 시달려야 한다.
의사 부족을 메우려면 의대 정원을 늘리는 게 답이지만 의사 양성에는 10년 이상을 기다려야 하는 만큼 우선 의사들의 소아과 탈출을 막는 게 급하다. 소아 진료에 대한 수가 인상 등과 함께 병원들이 전문의를 채용할 수 있게 예산이나 건강보험 재정으로 충분히 보상하는 것도 필요하다. 병원 수술 수가 인상 등 정부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지원책을 쏟아부어야 한다. 일단 급한 불을 끄고 봐야 한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건강과 생명이 위협받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