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이 미국과 유럽 등에 있는 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 해외 법인이 갖고 있던 59억달러(약 7조8000억원)를 국내로 들여와 미래차 투자에 쓰겠다고 밝혔다. 대기업들이 글로벌 시장 확장을 위해 해외 투자에 전념하면서 국내 제조업 공동화가 우려되던 차에 들려온 반가운 소식이다. 약 8조원의 재원은 현대차 울산공장과 기아 화성공장에 전기차 전용 생산설비에 쓰인다고 하니 청년일자리에도 숨통을 터줄 것이다. 미-중 패권경쟁으로 글로벌 공급망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핵심 미래 기술과 관련한 제조시설은 자국 내에 두려는 추세와도 부합한다.
현대차그룹의 ‘자본 리쇼어링(해외 유보금 국내 반입)’에는 여러 원인이 작용했지만 결정적인 것은 이중 과세를 풀어주는 법인세 개편이다. 기존에는 해외 자회사 국내 배당에 대해 해외와 국내에서 모두 과세했다. 현대차·기아가 지난 2021년 글로벌 시장에서 12조원의 영업이익을 올렸지만 작년 해외 법인에서 국내로 배당한 돈이 13억달러(약 1조6760억원)에 그쳤던 이유다. 하지만 지난해 법인세법이 개정된 덕분에 이제 해외에서 과세한 배당금의 95%는 국내 비과세 대상에 포함된다. 현대차·기아는 작년 글로벌 시장에서 약 17조원의 영업이익을 냈는데 올해 그 절반 가까이 국내로 들여오기로 한 배경이다. 올 1분기 현대차·기아는 사상 최대인 6조5000억원 영업이익을 낸 만큼 내년에는 더 큰 투자금이 국내로 유입될 수 있다.
현대차의 역대급 해외 배당금 유턴은 규제개혁의 효과가 얼마나 큰지를 보여준다. 삼성전자도 올 1분기에만 베트남·중국 등 해외 법인에서 유보금으로 쌓여 있던 현금 가운데 8조4400억원을 국내로 들여온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 삼성전자 연간 배당의 2배에 달하는 규모다. 한국경제연구원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4월 기준으로 해외 유보금 규모는 1077억달러(약 138조825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상당액이 유입된다면 국내 경기 진작효과는 배가될 것이다. 해외 자회사의 국내 본사 배당은 고전하고 있는 경상수지 방어에도 도움이 된다. 지난 1분기(1~3월) 경상수지는 44억6000만달러 적자였는데 경상수지에 포함되는 배당소득 수지(113억3000만달러 흑자) 덕분에 적자폭을 줄였다.
이중 과세의 족쇄처럼 아직도 해외 기업보다 불리한 환경을 강요하는 규제가 여럿이다. 과도한 상속세 탓에 정부가 국내 최대 게임업체인 넥슨의 2대 주주가 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파업 일상화 우려가 큰 노동법 개정도 국내 투자를 저어하게 만든다. 기업 투자와 혁신에 자해적 규제들을 과감히 혁파할 수 있어야 지속 성장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