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로 인해 인공지능(AI)의 ‘아이폰 모멘트(iPhone moment·아이폰 순간)’가 시작됐다.”
반도체기업 최초로 시가총액 ‘1조달러(약 1300조원) 시대’를 연 엔비디아의 최고경영자(CEO)인 젠슨 황은 행사나 언론 인터뷰를 통해 종종 ‘아이폰 모멘트’란 표현을 사용한다. 지난해 말 등장한 챗GPT가 ‘AI 혁신아이콘’으로 등장해 우리 일상에 최근 급격히 스며들며 산업계 풍경을 뒤바꾸고 있는 상황을 애플의 아이폰 첫 등장 당시 충격에 빗댄 것이다.
잠시 과거로 돌아가보자. 아이폰은 휴대전화의 ‘손가락 터치’ 개념을 바꿨고, PC가 손 안의 스마트폰으로 변환되는 시대적 전환을 일으켰다. 업계를 취재하면서 알게 된 가장 놀라운 점은 아이폰이 일상만 변화시킨 게 아니라 후방 산업을 맡은 글로벌 기업들의 시장 판도를 완전히 뒤바꿨다는 점이다. 아이폰의 등장으로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시장에서 인텔의 추락과 ARM의 부상이 교차됐고, 삼성·LG 그룹의 국내 주요 부품사들 실적과 주가가 요동쳤다.
‘글로벌 파운드리 1위 대만의 TSMC를 따라잡자’는 게 요즘 국내 반도체업계 화두인데 TSMC가 삼성에 대해 압도적인 경쟁을 확보했다고 평가받는 지점 역시 아이폰과 관련이 있다. 애플의 아이폰 AP 수주를 삼성에서 완전히 뺏어왔던 때다. ‘파운드리 1위’ 고지 달성이라는 국내 업계 숙원에도 ‘아이폰 모멘트’가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이다.
최근 움직임을 보면 챗GPT가 ‘아이폰 모멘트’에 버금간다는 얘기가 틀린 말은 아니다. 컴퓨터 사용을 ‘인간의 말’로 단순화한다는 점에서 이 기술의 폭발력이 주목된다. 까다로운 코딩, 프레젠테이션 파일이나 동영상편집기의 조작법, 심지어 컴퓨터를 사용할 줄 몰라도 ‘일상어’만 할 줄 알면 원하는 콘텐츠를 디지털 형태로 산출하는 게 가능한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챗GPT가 이끄는 후방 산업에 대한 파급 효과도 아이폰만큼이나 강력하다. 관련 AI 스타트업이 어느 때보다 주목받고 있다. 아울러 그래픽처리장치(GPU) 최강자인 엔비디아를 필두로, 메모리반도체를 만드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의 실적에도 ‘단비’같은 소식이다.
그런데 이 아이폰 모멘트와 챗GPT 변화는 일상과 글로벌 후방 산업의 경계를 넘어 국가경제와 안보의 문제로도 진화되고 있다. 아이폰과 챗GPT의 핵심 기업들을 보유한 미국이 ‘반도체 리더십 회복’이라는 목표 아래 해당 기업에 칩을 제공하는 한국 기업들을 압박하는 형국이 굳어지면서다. 그럼에도 주요 칩 공급망의 최선두 기업들을 보유한 덕분에 한국의 협상력은 유효하게 유지되고 있다.
일상의 변화부터 국가의 부와 안보가 모두 ‘기업’과 ‘기술’에 달린 시대로 급전환 중이다. 기업의 혁신을 위한 국가의 투자는 절대로 낭비가 아니다. 한국에서 아이폰 모멘트가 태동했으면 어땠을까. 우리의 번영과 세계를 놀라게 할 한국판 ‘아이폰 모멘트’를 꿈꿀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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