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복지국가 프랑스가 시끄러웠다. 우리보다 훨씬 짜임새 있는 복지 체제를 갖춘 프랑스의 혼란을 지켜보며 복지국가 반열에 들어보지도 못한 상태에서 개혁을 서둘러야 하는 우리나라의 현실이 무겁게만 느껴진다. 나라마다 다양한 복지 체제가 있지만 한 가지 공통점을 찾자면 매우 복잡하다는 것이다. 복지 체제 자체도 복잡하지만 이해관계는 더욱 혼란스럽게 얽혀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나라마다 복지개혁은 매우 어려운 과정을 거치고 있다.
사실 복잡한 문제일수록 단순한 원칙이 잘 작동돼야 해결방안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원칙이 취약한 분야일수록 정치적 고려나 힘의 논리가 개입될 가능성이 커지기에 문제해결이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나라의 경우 많은 것이 단시간에 구축되다보니 복지 분야에서도 다른 나라에선 찾기 어려운 비원칙적인 것들이 쉽게 발견된다. 국민건강보험의 재산보험료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재산이나 자동차에 건강보험료를 부과하는 불합리성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었다. 2016년에도 그 심각성이 인정돼 여러 정당이 공청회를 열었고 하나같이 재산보험료를 폐지하자는 대안을 제시했다. 그 후 지금까지 2단계에 걸친 개선안이 시행됐다. 그러나 재산보험료는 여전히 지역가입자 건강보험료의 절반 정도를 차지한다. 개선하긴 했다는데 바뀐 것이 분명하지 않으니 난감한 상황이다.
세제 적격 개인연금에 적용되는 세제도 원칙과는 거리가 있다. 2014년 개인연금의 소득공제는 세액공제로 전환됐다. 연금 세제의 기본 원리는 연금 납입액만큼 소득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해주는 대신 수령할 때는 원금과 이자 모두에 과세하는 것이다. 연금가입자의 세제 혜택 기준이 바뀌면서 소득공제가 부분적으로 이뤄지는 효과가 초래됐다. 그럼에도 연금소득세는 원금과 이자 전체에 대해 부과되고 있다. 분리과세와 저율의 연금소득세 적용으로 어느 정도 보완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세제 원칙상 세액공제된 연금의 원금은 소득공제된 원금과 분명히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
퇴직연금은 원칙을 세우는 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복지 분야다. 일시금으로 받던 기존의 퇴직금을 안정적으로 연금화하려고 도입한 것이 우리나라의 퇴직연금이다. 본연의 노후소득 보장 기능을 하려면 인출을 제한하고 연금화를 유도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맞다. 문제는 연금화의 정도에 대한 분명한 사회적 합의가 부족한 상태에서 추가적인 인출 제한 논의가 무성하다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앞으로 자신의 자금에 대한 제약이 강화되기 전에 가능한 한 빠르게 회수하려는 동기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높은 일시금 인출의 배후에는 이렇게 보이지 않는 인출 동기가 작용하고 있어 보인다.
복지개혁이란 누군가의 더 많은 부담 또는 손해를 설득하는, 어려운 과정이다. 그러나 어렵지 않게 발견되는 불합리성을 방치한 상태에서는 개혁의 설득력이 떨어지게 되고 더 많은 정치적 고려와 힘의 논리가 개입할 여지가 발생하게 된다. 국제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비합리적인 원칙들은 과감하게 개선하고, 불확실한 원칙은 빠른 사회적 합의로 투명성을 담보해가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이태열 보험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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