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대구 퀴어문화축제’ 현장에서는 전례 없는 광경이 펄쳐졌다. 대구시·중구 공무원 500여명과 대구경찰청 소속 등 경찰관 1500여명이 몸싸움을 벌였다. 공무원들이 “무대 등을 설치해 도로를 불법 점거하는 것을 막겠다”고 나서자 경찰관들이 “적법하게 신고한 집회는 최대한 보장돼야 한다”며 밀어낸 것이다. 안전과 질서를 유지해야 할 지자체와 경찰이 민간단체의 집회 현장에서 자기들끼리 물리적 충돌을 한 것은 유례 없는 일이다.
대구시와 대구경찰청의 마찰은 지난 12일 시작했다. 퀴어축제 주최 측의 집회신고를 접수한 경찰이 시(市)에 “집회장소를 피해 버스 운행을 다른 곳으로 해 달라”고 요청하자 시가 “(퀴어축제가) 버스 노선을 우회할 만큼 공공성 있는 집회라고 보기 어렵다”며 거절한 것이다. 퀴어축제장소는 시내버스, 택시만 다닐 수 있는 ‘대중교통 전용지구’여서 버스가 우회하면 시민이 불편을 겪게 된다. 이 같은 표면적 이유 말고도 올해 열다섯 번째로 열린 ‘성소수자 축제’에 대한 보수 진영·개신교단의 반대 등 도덕적·종교적·정치적 이념갈등도 이번 충돌의 배경으로 작용했다.
경위야 어떻든 집회나 시위 현장에서 ‘원팀’처럼 움직여야할 경찰과 지방자치단체가 시민 앞에서 거친 몸싸움을 벌이며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인 것은 지탄받아 마땅하다. 더군다나 이번 행사는 오래전부터 예정돼 있었고 상인 등이 낸 집회 금지 가처분 신청도 법원이 15일 기각하는 등 집회의 합법성에 힘이 실렸던 터였다. 양측이 원만한 사전 조율로 역할 분담을 했다면 물리적 충돌로 비화하는 우스꽝스러운 촌극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처럼 집회 현장에서 공권력끼리 충돌하는 황당한 사태를 막으려면 차제에 모호한 도로 점거 허용 범위를 법률에 명확하게 규정할 필요가 있다. 헌법 21조에 ‘모든 국민은 집회의 자유를 가진다’고 돼 있지만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는 집회를 위해 무대 등을 도로에 설치하려면 ‘도로 점용 허가’를 별도로 받아야 하는지에 관한 규정은 없다. 그동안 법원에서는 ‘적법하게 신고된 집회의 경우 도로에 무대 등을 설치할 때 도로 점용 허가를 받지 않아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취지의 판결을 했고 경찰도 이를 중시했다. 그런데 대구시가 이런 관행에 제동을 걸면서 논란이 된 것이다.
집회의 자유와 시민의 통행권은 모두 소중한 헌법적 가치다. 법률 규정의 명확성을 높여 대구시 사태가 재발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당장 다음달 1일 서울 도심에서도 퀴어축제가 열릴 예정이다. 시민을 어리둥절케 하는 코미디 같은 소동이 더는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