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 스타트업)’이 전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19년 대비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타다 사태’에서 보듯 낡은 규제가 혁신을 가로막는 데다 기득권자들의 반발에 혁신의 싹이 움트지 못하는 척박한 산업생태계 탓이 크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글로벌 리서치회사 CB인사이츠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5월 기준 전 세계 유니콘 기업 수는 1209개로, 2019년(449개) 대비 760개(169.3%) 늘었다. 같은 기간 미국은 218개에서 655개로, 437개(200.0%)가 증가했다. 반면 한국은 10개에서 14개로, 4개(40.0%)가 추가되는 데 그쳤다. 한국 유니콘이 전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9년 2.2%에서 1.2%로, 1.0%포인트 뒷걸음쳤다. 압도적 1위인 미국은 48.6%에서 54.2%로, 비중이 더 높아졌다. 중국(24.3→14.0%)이 다소 주춤했지만 인도(4.5→5.8%)의 영향력이 커졌다. 2019년 한국보다 유니콘이 적었던 이스라엘(1.6→2.0%), 프랑스(1.1→2.1%), 캐나다(0.4→1.7%) 등도 약진했다. 한국은 특히 핀테크, 인공지능(AI), 헬스케어 등 미래 먹거리로 주목받는 업종에서 ‘스타’를 배출하지 못했다. AI는 한 곳도 없었다. 한국은 할 수 있는 것만 나열하는 ‘포지티브’식 규제 위주이다 보니 안 되는 게 많다. 핀테크, 모빌리티, 바이오·헬스케어 등은 이런 규제에 기존 업종과의 충돌까지 가시밭길을 걸어야 한다.
벤처기업과 스타트업이 성장하려면 투자 유치가 가장 중요하다. ‘타다’ 같은 사례는 기존 법 체계와 부딪치는 사업에 투자하면 안 된다는 시그널로 작용해 혁신생태계를 더 쪼그라들게 했다. 법률 서비스 플랫폼 ‘로톡’, 세금 환급 서비스 ‘삼쩜삼’, 비대면의료 플랫폼 등도 각각 변호사, 세무사, 의약계의 반발에 부딪혀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오죽하면 글로벌 100대 유니콘 기업의 절반은 한국에서라면 태동하기 어려웠을 것이란 분석이 있겠나.
미국이 2차대전 이후 세계 최강대국의 지위를 누리는 힘은 혁신역량에서 나온다. 독일에, 일본에, 중국에 기술패권을 내주는가 싶으면 실리콘밸리의 기업들이 게임체인저로 등장해 기술의 판도를 바꿔놓는다. 반도체·인터넷·스마트폰을 거쳐 지금은 오픈AI 챗GPT로 새 장을 열고 있다. 한국에 유니콘 AI가 전무한 현실은 미래 성장엔진이 꺼지고 있다는 신호다. 챗GPT가 몰고올 4차 산업혁명 물결에 올라타려면 더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신산업에 대한 규제혁파와 함께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털(CVC) 허용 등 투자환경의 획기적 개선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