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24억원을 투입한 4세대 교육행정정보 시스템인 나이스(NEIS)에서 다른 학교 시험지 답안이 출력되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전국 초·중·고교 1만2000여곳에서 21일 개통하자마자 벌어진 일이다. 접속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자료 이관도 안 돼 일선 교사들이 혼란을 겪고 있다. 무엇보다 기말고사를 앞두고 시험답안과 같이 민감한 정보가 다른 학교에 노출된 것은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교육부는 교사들에게 시험문항과 보기 순서를 뒤섞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혼란이 커지자 아예 시험일정을 연기한 학교까지 나왔다. 수천억원을 들인 시스템이 첫날부터 먹통이 된 것은 개발과 운영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이번 사태는 예고된 거나 마찬가지다. 전산 시스템을 바꾸는 작업은 안정화기간을 충분히 갖고 오류 발생과 수정작업을 반복하는 사용자 테스트를 거치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 교사들은 도입 과정에서 현장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고 한다. 기간도 짧고 이번에 문제가 된 성적 처리 분야는 아예 테스트를 거치지 않았다. 졸속 개통이나 다름 없다. 6~7월 기말고사와 9월 대입 수시전형 등 학사 일정이 집중되는 기간에 개통한 것도 혼란을 키운 측면이 있다. 더욱이 개발업체 선정과 관련해 의심스러운 게 한두 군데가 아니다. 2021년 이 입찰을 따낸 중소기업 컨소시엄의 주회사는 1200억 원 규모의 교육 회계 시스템 ‘K-에듀파인’ 개발사업도 수주했지만 2020년 1월 시스템 개통 당일 접속이 안 되고 기안문서가 사라지는 심각한 오류로 피해를 입힌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데도 4세대 나이스 입찰 과정에서 경쟁 컨소시엄에 가격점수에서 밀리고도 기술점수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선정됐다.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당장 시급한 것은 제 기능을 못하고 있는 시스템을 조속히 안정화하는 게 우선이다. 7월부터는 대입 전형업무가 시작된다. 혼란이 더 커질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수능 출제 방향 조정 등 대입 불안 요인이 적지 않은데 더 걱정을 보태서야 되겠는가. 이참에 공공 소프트웨어 사업에 대기업 참여를 제한하는 제도도 따져봐야 할 사안이다. 중소기업에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는 좋지만 방대하고 민감한 정보를 다루는 데 역량이 처지는 중소기업에 맡기는 게 맞는지는 의문이다.
정부도 국민불안을 키우는 식으로 교육개혁을 서둘러선 안 된다. 21일 공교육경쟁력제고방안에 이어 26일 사교육경감대책을 잇달아 내놓는 게 급해 보인다. 교육 전반을 깊고 멀리 내다보고 대책을 세워야 하지만 제각각 대증요법식으로 제시되는 모양새다. 바빠도 돌다리 두드리듯 안전하게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