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환 경찰제도발전위원장의 ‘문재인 간첩’ 발언이 일파만파다.
박 위원장은 26일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권이 내년부터 경찰로 넘어가는 것과 관련해 “문재인이 간첩이라는 걸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전직 대통령이 ‘간첩’이라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없앴다는 논리인 셈인데, 참으로 황당하고 어처구니가 없다. 그러면서도 그 근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경찰제도발전위원장은 한시직이기는 하지만 엄연한 국무총리실 소속 공적 기구의 책임자다. 그런 위치의 인사가 국민이 직접 뽑았던 전직 대통령을 간첩으로 지칭했다니 말문이 막힌다. 그저 상대 진영을 향한 혐오 가득한, 극단적인 진영 논리일 뿐이다. 박 위원장의 ‘간첩’ 발언은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 한다.
이재명 대표 등 더불어민주당의 거센 반발은 당연하다. 이 대표는 “철 지난 색깔론으로 무장한 사람에게 경찰제도개혁을 맡기는 건 국민이 용납하지 않는다”며 “당장 사과하고 물러나라”고 주장했다. 박용진 의원 등 민주당 소속 인사들도 속속 문제를 제기하며 박 위원장의 퇴진을 촉구했다. 민주당 관계자가 아니더라도 논리도, 근거도 없는 ‘황당 발언’에 동의할 국민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박 위원장 발언이 나온 자리다. 문제의 발언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국정원 퇴직자 모임의 안보토론회에서 나왔고, 국민의힘 박덕흠 의원실이 공동 주관했다. 공동 주관이라고 하지만 박 의원도 이 발언에 대한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져야 한다. 더욱이 한 참석자는 문 전 대통령이 거주하고 있는 양산과 광주 중앙로에 북한 인공기가 나부끼고 있다며, 사진까지 공개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이미 수 년전 광주시가 사실이 아니라고 밝힌 가짜 뉴스다. 이런 황당 주장들이 난무하는데도 박 의원실 측은 아무런 제지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박 위원장의 ‘간첩’ 발언에 토론장은 박수와 환호가 일었다고 한다. 이날 토론회는 국민의힘 박대출 정책위의장도 참석했지만 제지는커녕 ‘국정원 대공수사권’ 당위성만 강조했다.
대공 수사권의 경찰 이전 시점이 임박했지만 전문성 부족 등 많은 난제를 안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미 관련법이 국회를 통과한 상황인 만큼 정부와 여당은 야당과 머리를 맞대고 대공 수사역량을 키우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정상이다. 당시 대통령이 ‘간첩’이라 법을 개정했다는 식의 논리로 국정원이 대공 수사권을 다시 가져와야 한다는 주장은 억지다. 여기에 동조하는 듯한 여당 인사들의 책임도 결코 가볍지 않다. 진보든, 보수든 상식을 벗어나는 말과 행동은 비판받아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