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국무회의에서 전기요금과 TV수신료를 분리 징수하는 내용의 방송법 시행령을 의결, 12일부터 2500원의 TV수신료를 따로 내는 게 가능해졌다. 1994년 이후 29년 만에 통합 징수가 사라지게 된 것이다. 지난 6월 5일 대통령실에서 수신료 분리 징수를 권고하고 열흘 만에 방송법 시행령 일부개정안 입법예고, 방송통신위원회 의결까지 한 달 만에 일사천리로 처리됐다. 국민 70~80%가 분리 징수에 찬성한다지만 충분한 검토와 대안 마련 없이 성급하게 진행된 측면이 있다.
당장 국민 불편이 적지 않다. 번번이 수신료와 전기요금을 구분해 계좌 이체를 해야 하고, 관리비에 합산되는 대단지 아파트는 개별 세대가 관리사무소에 분리 납부를 신청해야 하는 등 번거롭다. 한전 징수비 증가도 문제다. 수신료를 따로 걷는 데에 2000억원가량 비용이 발생, 수신료 대비 징수비 비중이 6%에서 33%까지 올라가 낭비가 크다. 국회가 만든 방송법을 바꾸지 않고 대통령령으로 하는 시행령만 고쳐서 무리하게 분리 징수하는 것도 모양새가 좋지 않다.
수신료 압박은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공영방송 길들이기 카드로 등장했지만 실제로 시행되지는 않았다. KBS로서는 이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다. 공영방송 역할과 편파 방송, 방만경영에 대한 국민의 곱지 않은 시선을 제대로 살피고 환골탈태해야 했지만 그러지 않은 결과다. KBS 방만경영 지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올해 1분기에만 적자가 400억원대인 데다 무보직 억대 연봉자가 1500명이라니 국민정서에 맞지 않는다. 시대가 변해 TV 없는 가구도 적지 않다. 수상기도 없고 시청하지 않는데 세금처럼 내야 하니 반발이 크다. 그런데도 쇄신엔 눈을 감고 자동으로 들어오는 수신료로 특혜를 누리며 안일하게 일해온 것이다.
턱이 하나 생기면 수신료 징수액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수신료 통합 징수 전인 1993년 수신료 납부율이 52.5%이었다. 비상경영이 불가피한 수준이다. 그만큼 재난과 장애인방송, 교육 등 공공 차원의 방송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공영방송의 역할은 인터넷과 각종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사실 더 막중하다. 가짜 정보를 걸러내고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이 있다. 특히 정보접근성이 떨어지는 취약계층에는 공영방송이 중요한 정보창구다. 소외와 사각지대가 생기지 않도록 줄어드는 재정에 대한 대안 모색이 필요하다.
이제 국민은 수신료를 낼 때마다 공영방송 감시자로서 더 까다로워질 수 있다. KBS가 쇄신과 혁신의 고삐를 바짝 죄고 국민 신뢰를 얻는 일부터 시작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