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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광장] 사농공상의 레거시 깨기

겨울철 찬바람을 피해 따뜻한 곳으로 날아가던 철새 떼가 농부의 밭을 발견하고 내려앉아 밭에 있던 옥수수를 마음껏 먹은 후 다들 떠나는데 철새 한 마리는 혼자 남아 옥수수밭에 안주했다.

이후 본격적인 겨울이 다가오자 떠나기 위해 날갯짓을 했지만 몸이 뚱뚱해져 날지 못했고 끝내 차가운 눈 속에서 얼어죽고 말았다.

‘실존철학의 아버지’ 키르케고르가 평소 자주 인용했다는 ‘철새 이야기’로, ‘오늘 하루를 편히 쉬기 위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면 밝은 내일은 오지 않는다’는 진리를 남겼다.

과거로 눈을 돌려보면 우리의 조선은 비록 많은 외침을 받았으나 유교 철학사상과 ‘사농공상(士農工商)’을 근간으로 전 세계적으로 드물게 518년간 왕조를 유지했다.

하지만 20세기 초, 일본과 달리 급변하는 세계 정세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쇄국 정책으로 일관하다가 열강들의 지배를 받고 역사적인 막을 내렸다.

우루과이는 19세기 말까지만 해도 농업과 축산업을 기반으로 영국에 버금가는 세계적 수준의 부를 축적했다.

그러나 이후 남미의 경제적 위기와 정치적 혼란 등으로 1차 산업 중심의 국가 경제구조를 탈피하지 못했다. 그 결과, 남미에서는 그나마 경제적 안정을 유지하고 있으나 과거의 명성을 회복하지는 못하고 있다.

세상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급속하게 진화하고 있다. 19세기 말, 철강, 자동차, 전기 등의 기술 혁신을 통한 2차 산업 혁명기에는 미국과 독일이, 인터넷과 재생에너지가 새로운 세상의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예언한 제러미 리프킨에 의해 대중화 된 3차 산업혁명기에는 컴퓨터, 인터넷 등을 이용한 신속한 산업구조 개편으로 1인당 GDP(국내총생산) 세계 1위를 달성한 룩셈부르크 등이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다,

우리나라도 조선시대 도자기기술이 세계적 수준에 도달했으나 당시의 이념과 체제에 눌려 쇠락의 길을 걸었다.

지금은 반도체기술을 중심으로 정보통신기술(ICT) 기반의 4차 산업혁명으로 진화하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 중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사농공상’이라는 조선의 유산이 아직도 남아 있는 듯하다.

1948년 제정된 제헌헌법에서도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기회의 균등’을 언급하고 있으나 정치는 여전히 제일 앞에서 나머지 분야를 압도하고 있으니 말이다.

ICT를 기반으로 한 스타트업과 혁신의 상징이었던 차량호출 서비스 ‘타다’에 대한 기득권층의 반발에 휩쓸려 정치권이 제정한, 소위 ‘타다금지법’이 시행된 지 4년이 경과한 지난 6월, 대법원에서 ‘타다’에 대한 무죄 판결이 나왔다. 기술 혁신에 따른 선진 교통 시스템으로의 산업구조 변화를 가로막은 상징적인 사례인 듯싶다.

최근 국내외적으로 논란되고 있는 ‘잼버리 사태’에서도, 공동 위원장만 5명이고 지역 SOC(사회간접자본) 건설에만 관심이 컸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염불에는 마음이 없고 잿밥에만 마음이 있다’는 속담들이 하나도 틀리지 않은 듯해 왠지 씁슬하기만 하다.

우리나라는 1970년대 정치적 반대에도 경부고속도로와 포항제철 등을 필두로 긴 안목으로의 산업기반시설을 건설해 현재 1인당 GDP 3만달러를 상회하는 급성장을 했고, 전 세계 국방력 순위에서도 7위를 차지하고 있다.

근래 들어서는 MZ 세대를 중심으로 각종 스포츠와 음악 등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분야에서 월드클래스로서의 두각을 나타내고 있고, 이를 토대로 K-팝(K-pop) 등 신조어들이 지구촌에 유행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유무형의 가치를 창출해내고 있다.

미국의 정치개혁가 제임스 프리먼 클라크는 ‘정치꾼은 다음 선거를 생각하고, 정치가는 다음 세대를 생각한다’고 했다.

작금의 상황은 어떠한가. 기존 세대와 젊은 세대 간 갈등을 해소하기는커녕 더욱 골이 깊어지게 하고, 기술 혁신은 눈앞의 표만 의식해 각종 규제로 날개를 펴지도 못하게 하는 모습들을 볼때 과연 훌륭한 정치가가 있기는 한지 의문이 든다.

괴테는 ‘배는 항구에 정박해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 그러나 그것이 배의 존재 이유는 아니다’고 했다. 한강의 기적에 안주하는 철새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지금은 기존 세대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구축된 하드파워(hard power)에 젊은 세대의 소프트파워(soft power)를 어떻게 접목하느냐에 따라 우리 눈앞에 놓인 4차 산업혁명의 파고를 넘어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느냐 하는 기로에 서 있다.

헌법상 규정된 순서를 바꿀 수는 없기에 ‘정치’가 이념과 다음 선거보다는 K-에너지가 넘치는 젊은 세대가 초연결·초지능으로 특징되는 4차 산업혁명기에 공상(工商) 분야를 중심으로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를 넘어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되도록 한국발(發) 글로벌 플랫폼 등 각종 혁신 시스템 구축에 앞장서서 우리나라가 진정한 선진 강국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김형렬 기계설비건설공제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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