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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대건·김수환·이태석을 떠올리다 [임형주의 컬처코드-K]
지난달 1일(현지시간)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린 ‘2023 리스본 세계청년대회(WYD)’ 개막미사 [천주교 서울대교구 제공]

지난달 6일 서울 모처의 단골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다가 아무 생각 없이 누른 포털사이트 첫 화면 속 단문 속보를 보고 순간, 나도 모르게 환호성을 내질렀다. 순식간에 식당 안 모든 사람의 시선이 필자에게 쏠렸다. 필자는 겸연쩍은 미소를 지으며 사람들에게 사과의 의미로 고개를 숙였다.

필자를 흥분시킨 속보는 바로 ‘2027 가톨릭 세계청년대회(WYD)’ 개최지가 우리나라 수도인 서울로 확정됐다는 것을 프란치스코 교황이 직접 발표했다는 소식이었다. 가톨릭 신자이자 현재 가톨릭평화방송사 cpbc의 FM라디오 ‘임형주의 너에게 주는 노래’ DJ인 필자는 흥분된 표정을 감추기 어려웠다.

‘가톨릭 세계청년대회’는 요한 바오로 2세 전(前) 교황이 지구촌 젊은이들의 신앙을 독려하기 위해 지난 1984년 바티칸 성베드로광장에 전 세계 청년을 초대한 일이 모태가 됐다. 바티칸에 모인 수많은 젊은이가 그리스도를 향해 열광하는 모습에서 크나큰 감명을 받은 요한 바오로 2세 전 교황은 이후 지난 1985년 12월 ‘세계 젊은이의 날(World Youth Day)’을 선포했고, 이날을 기념하는 축제로 ‘가톨릭 세계청년대회’가 시작됐다.

제1회 대회는 1986년 이탈리아 수도 로마에서 열렸으며, 이후 2∼3년마다 세계의 각각 다른 도시에서 열리고 있다. 이 행사는 전 세계 가톨릭 청년이 한자리에 모여 신앙을 성찰하고 전 세계 인류가 직면한 사회문제를 토의하는 ‘열린 축제의 장(場)’으로 자리 잡았다.

게다가 세계청년대회는 전 세계 각지에서 적게는 수십만명, 많게는 수백만명의 가톨릭 청년이 한자리에 모이는 초대형 국제행사이기에 오늘날에는 ‘가톨릭 올림픽’으로 불리기도 한다.

올해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렸던 대회만 봐도 무려 200만명 이상의 젊은이가 참가했으며, 지난 1995년 필리핀에서 개최됐던 세계청년대회 때는 폐막일 미사에 400만∼500만명 이상이 운집해 ‘교황이 참가한 모임 중 최대 인파’로 월드기네스북에 등재되기까지 했다.

한국 가톨릭 서울대교구는 일찌감치 2027년 대회 국내 유치 의향을 공식 발표하고 유치에 발 벗고 나섰다. 서울대교구 측은 오는 2027년 서울에서 열릴 세계청년대회에 해외 참가자 20만∼30만명을 포함해 약 70만∼100만명이 참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따라서 최단 기간 가장 많은 외국인이 한국을 방문하는 행사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것은 물론 한국 천주교회와 한국 문화를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경제적인 효과 역시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글로벌 회계·컨설팅업체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 포르투갈에 따르면, 올해 리스본이 세계청년대회 개최로 얻은 총 부가가치는 5억6400만유로(약 8000억원)로 추산됐다. 생산적인 측면에서는 최대 11억유로(약 1조5000억원)의 효과가 있다고 분석했다.

또 ‘2027 가톨릭 세계청년대회’를 유치할 경우 역대 교황이 세계청년대회에 빠짐없이 참가해왔던 전례로 미뤄볼 때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역시 확실시되며 의미가 커진다. 요한 바오로 2세 전 교황의 1984년, 1989년 두 차례 방한과 프란치스코 교황의 2014년 한 차례 방한에 이어 2027년에는 역대 통산 네 번째 교황 방한이 성사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나 전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 교황이 세계 젊은이들과 함께 평화와 통일을 기원하고 염원하는 뜻깊은 방문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한편 서울대교구는 2027년 세계청년대회의 서울 개최를 통해 현재 입시 및 취업 경쟁에 내몰려 수많은 스트레스를 받는, 이른바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의 MZ세대 젊은이에게 새로운 삶의 가치를 제시하고, 위로와 화해의 장(場)을 마련하겠다는 청사진을 이미 내걸었다.

생각에 잠긴 김수환 추기경 [연합]

이번 행사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니 문득 고(故) 김수환 추기경의 모습이 떠올랐다. 김 추기경과 필자의 인연은 꽤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아마도 지난 2003년께였을 것이다. 당시 김 추기경께서 감사하게도 필자가 부른 ‘아베마리아’를 감명 깊게 들으셨다면서 “성모님을 만나는 느낌”이라는 과분한 찬사를 해주셨다. 게다가 당신이 거주하던 서울 혜화동 주교관으로 필자와 필자의 모친을 초대했던 것이 우리 인연의 시작점으로 필자는 기억한다. 올해가 2023년이니, 정확히 20년 전 이야기가 돼버렸다.

당시 필자는 천주교 신자가 아닌 개신교 신자였다. 그런데도 김 추기경은 친히 주교관에 초대해 맛있는 점심을 대접해줬고, 인자한 미소와 함께 “나는 이 세상에선 대통령에 출마하지 못했으니 천국 가서 출마하려고 한다”는 위트 넘치는 유머를 발산하며 당신의 사진이 담겨 있는 키걸이를 선물했다. 이 키걸이를 지금도 가보처럼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다.

‘김수환’이라는 이름 석 자는 우리 대한민국 가톨릭의 상징이었다. 이후 몇 사람의 추기경이 더 탄생했지만 한국 최초의 추기경이었던 김 추기경의 명성과 카리스마를 능가하는 분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그만큼 김 추기경의 삶과 발자취는 우리나라 천주교의 역사였다. 서슬 퍼런 군사독재 시절에는 용기와 강단으로 불의에 맞섰고, 민주화운동에는 누구보다 앞장섰던 이 시대의 어른이자 큰 별이었다.

고(故)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필자는 이런 김 추기경의 모습에서 조선 최초의 사제이셨던 고(故) 김대건 신부의 모습이 교차된다. 20세기도 거칠고 치열했지만 김대건 신부가 사셨던 조선 시대는 그야말로 유교 사상이 지배했던 시대였다. 아마도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이었을 것이다. 그러한 시대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바쳤던 성인(聖人)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숭고한 희생정신과 위대한 삶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21년은 김대건 신부의 탄생 200주년이 되는, 특별한 해였다. 이를 기념하고자 유네스코(UNESCO)는 올해의 기념인물로 김대건 신부를 선정해 전 세계적으로 그를 기렸다. 뿐만 아니라 이듬해였던 지난 2022년 11월 김대건 신부의 일생을 영화화한 ‘탄생’이 전국에서 개봉되기도 했다. 비록 영화는 상업적 측면에서 성공했다고 볼 수 없지만 영화를 본 많은 이는 ‘크나큰 전율을 느꼈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또한 이 영화의 제작진과 출연진은 바티칸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알현하기도 했다.

남수단 작은 톤즈 마을에서 아이들과 함께 웃고 있는 이태석 신부 [연합]

기존 세대에게 ‘가톨릭’의 이미지가 고(故) 김수환 추기경과 김대건 신부라면 요즘 MZ세대에겐 이태석 신부일 것으로 생각된다. 다큐멘터리 ‘울지마 톤즈’로 우리나라 국민에게 감동을 선사했던 주인공 고(故) 이태석 신부. 아프리카 대륙의 가난하고 굶주린 톤즈의 아이들을 온 마음을 다해 껴안고 진정한 사랑으로 변화시키는 모습을 보며 많은 사람이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이 신부는 사제이면서 의사였고, 음악가이면서 열정적인 교육자이기도 했다. 동료 신부들은 입을 모아 이야기했다. ‘그는 마치 살아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과도 같았다’고 말이다.

사실 필자는 고(故) 김수환 추기경 외에 김대건 신부와 이태석 신부와도 비록 다른 이에겐 사소해 보일 수 있지만 조금씩 인연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한 이유는 바로 필자가 교리공부 이후 지난 2021년 초 가톨릭으로 개종하면서 영세와 함께 세례명 ‘대건 안드레아’로 다시 태어났으며, 지난해 12월 개봉한 다큐영화 ‘이태석’의 내레이션과 주제가도 담당했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는 아침 뉴스나 일간지 사건·사고를 다루는 사회면을 보기가 두려운 삶을 살고 있다고 해도 결코 허언이 아닌데, 그만큼 매일매일 믿을 수 없는 사건들이 일어난다는 뜻이다. ‘어떻게 사람이 저럴 수 있지?’ ‘인면수심이 따로 없네’ ‘천벌을 받아야 한다’ 등의 반응이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울 정도로 정말 하루가 멀다고 입을 다물 수 없는 강력 범죄들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게 현실이다.

그저 기분 나쁜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봤다고, 혹은 고작 돈 5000원 때문에, 또는 아무 이유도 없이 너무 쉽게 살인을 저지르고 있다. ‘생명 경시’ 풍토가 이 사회에 만연하다는 방증이다. 최근 서울 신림동과 경기도 분당 서현역에서 벌어진 ‘묻지마 칼부림’ 사건을 겪으며 우리는 타인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흔들리는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 속에서 우리는 신(神)의 존재를 부정하게 되는 일이 잦게 됐다고 본다. 그러나 필자는 다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시대일수록 오히려 우리에게 종교가 더욱 필요하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꼭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로운 가르침을 통해 우리는 타인에 대한 배려와 사랑을 배워야 한다. 이 세상은 결코 혼자선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2027 가톨릭 세계청년대회’ 서울 유치 소식을 계기로 필자가 고(故) 김수환 추기경과 김대건 신부, 그리고 이태석 신부를 떠올렸듯이 이 행사를 준비하는 동안, 그리고 행사를 치른 이후에도 부디 우리나라 수많은 국민이 그리스도의 따스한 위로와 위안을 얻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carri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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