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농장점을 누리는 ‘반도·반농’생활의 입지조건은 무엇보다 주변 거점도시로의 접근성이 좋은 농촌이어야 한다. 사진은 서울~양양고속도로 내촌IC 초입에 있는 강원도 홍천군 동창마을 전경. |
필자 가족이 강원도 홍천으로 삶터를 옮긴 2010년부터 귀농·귀촌 열풍이 시작됐다. 그중에서도 제주는 단연 ‘핫 플레이스’였다. 그랬던 제주의 인구가 지난해 14년 만에 처음으로 순유출(1687명)을 기록했다. 제주 순유입 인구는 2016년에 정점(1만4632명)을 기록한 후 계속 둔화세를 보였다. 거의 비슷한 궤적을 그려온 전국 귀농·귀촌 인구 역시 2017년에 정점(51만6817명)을 찍고 2022년엔 43만 여명으로 내려앉았다. 저출산과 인구감소로 ‘국가소멸’경고음까지 나오는 마당에 앞으론 제주살이도, 귀농·귀촌도 더 이상 열풍을 기대하긴 어렵다.
인생2막 귀농·귀촌은 곧잘 ‘사회적 이민’으로 불린다. 그만큼 만만찮다는 얘기다. 일자리와 소득 부족, 교육·의료·편의시설 미비, 원주민 텃세 등 농촌의 현실과 한계도 다 드러났다. 그렇다고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경직된 귀농·귀촌의 틀에서 벗어나면 대안은 늘 존재한다. 자유롭게 도시와 농촌을 오가며 각각의 장점을 아울러 취하는 ‘半도(시)·半농(촌)’생활이 바로 그것. 도시와 농촌의 경계파괴가 가장 큰 특징이다. 사실 ‘반도·반농’은 2010년 귀농·귀촌 열풍이 점화한 때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형태로 진화를 거듭해왔다.
관련법과 제도를 보면 귀농·귀촌하더라도 도시(행정구역상 동 지역)에서의 1막 삶 전체를 송두리째 농촌(읍·면 지역)으로 옮겨가지 않아도 된다. 주민등록 주소 이전이 핵심이다. 이를 유연하게 받아들여 도시와의 연계성을 확장하면 얼마든지 도시와 농촌생활을 병행할 수 있다. 농촌에 주소를 두고서도 2도5촌(2일은 도시, 5일은 농촌살이)은 물론이고 거꾸로 5도2촌도 가능하다. 농업·농촌에 ‘올인’했을 때의 위험을 줄이면서 도시와 연계한 경제활동과 문화생활을 이어갈 수 있다.
귀농·귀촌 통계와 실제에서 ‘반도·반농’의 사례를 살펴보자. 2022년에 귀촌한 10가구 중 8가구는‘나홀로’였다. 독신가구도 있겠지만 상당수는 가족 중 남편 혼자 농촌으로 들어간 경우다. 또 귀농가구주 중 여성비중은 33%로 의외로 많다. 이는 세대분리를 통해 아내 혼자 귀농하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는 남편 혼자 귀촌했지만 종종 도시 집에 가서 머물거나, 거꾸로 도시 아내와 자녀가 농촌 집에 와서 지내기도 한다. 아내 혼자 귀농했다는 밭에서는 도시남편의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최근 핫 이슈로 부상한 ‘세컨드 홈(second home·두 번째 집)’은 이런 ‘반도·반농’생활을 더욱 확산시키는 촉매제가 될 전망이다. 정부는 기존 1주택자가 인구감소지역(89개 시·군·구)의 주택 1채를 신규 취득할 경우 1세대 1주택 특례를 적용해 재산세·종부세·양도세 혜택을 주기로 했다. 심각한 소멸위기에 처한 지방의 생활인구(월 1회, 하루 3시간 이상 체류)를 늘리기 위한 정책이다. 비슷한 혜택을 주는 ‘지방저가주택’과 ‘농어촌주택’에 세컨드 홈까지 더해지는 것. 추후 발표될 세컨드 홈의 가액 및 적용지역 등에 관심이 쏠린다.
은퇴자 등 도시민 입장에선 도시의 메인 홈과 농촌의 세컨드 홈에 양다리를 걸치며 살다가 다시 도시 집으로 돌아갈 수도 있고, 아니면 도시 집을 정리하고 농촌 세컨드를 메인으로 삼을 수도 있다. 후자의 경우 세컨드 홈이 귀농·귀촌 전환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셈이다. 귀농과 귀촌, 도시와 농촌의 경계를 허물고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출구전략과 대안마련이 가능한 게 ‘반도·반농’생활의 장점 중 하나다.
귀농·귀촌을 통한 주민등록 인구 늘리기는 이미 한계점에 이르렀다. 지방 시·군들이 ‘생활인구 유치→정주인구 유인’쪽으로 속속 방향을 틀고 있는 이유다. 한국관광공사의 디지털 관광주민증(일종의 명예 주민증) 시범사업에 참여중인 단양군·옥천군·평창군 등을 보면 주민등록 인구보다 훨씬 많은 숫자가 발급됐다. 아예 귀농·귀촌 이름도 바꾼다. 충북도는 지난해 하반기 귀농·귀촌 대신 사용할 새 용어를 공모해 ‘농Go농락’, ‘새꿈지향(之鄕)’ 등 5개 우수작을 선정했다. 제천시·고흥군 등은 재외동포 유치에도 발 벗고 나서고 있다.
‘반도·반농’생활을 하려면 사든지 빌리든지 일단 농촌에 거처는 마련해야 한다. 고급 별장부터 일반 전원주택, 농가주택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가성비로 보자면 사실 농막(농업용 창고)만한 게 없다. 한때 규제 강화를 시도하다 역풍을 맞은 정부가 세컨드 홈과 함께 농막 활성화 방안도 내놓겠다고 하니 기다려볼 일이다.
‘반도·반농’생활을 위한 농촌 입지는 무엇보다도 주변 거점도시로의 접근성이 좋아야 한다. 도로·철도 등 교통망이 잘 구축되어 있고 청정한 자연환경을 갖춘 곳이다. 거점도시는 인구 20만 명은 넘어야 일자리·창업 등 소득확보와 필요한 도시서비스를 연계하는데 유리하다.
도시와 농촌을 따로 경계 짓는 경직된 귀농·귀촌이 아니라 유연하고 확장성 있는 도농상생의 ‘반도·반농’이 뉴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박인호 전원 칼럼니스트
hwshi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