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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정상 카운터테너 자루스키 “마테 수난곡으로 미친 세상과 단절” [인터뷰]
3일 롯데ㆍ4일 통영ㆍ7일 LG 공연
獨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 공연
“바흐의 완벽함 앞에 불완전함 느껴”
카운터테너 필립 자루스키 [롯데콘서트홀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바흐의 성악곡에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필요해요. 이 아리아를 부르기 위해 6개월 이상 집중적으로 연습하고 있어요.”

현존하는 세계 최정상 카운터테너이자, 소위 ‘천사의 목소리’에 ‘악마의 기교’라는 찬사를 받는 필립 자루스키(46)에게도 ‘마태 수난곡’으로 향하는 여정엔 오랜 준비가 필요했다. ‘마태 수난곡’의 상징같은 알토 아리아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Erbarme Dich)’에 대한 이야기다. 예수를 세 번 부인한 제자 베드로의 통한의 심경을 담은 곡이다.

최근 서면 인터뷰로 만난 자루스키는 “20년 전 ‘마태 수난곡’을 몇 번 공연한 경험이 있는데, 더 성숙한 목소리와 더 나은 경험으로 다시 노래할 수 있기를 꿈꿔왔다”며 “이 무대의 일부가 되는 것은 강렬한 영적 여정”이라고 말했다.

자루스키는 3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을 시작으로 4일 통영국제음악당, 7일 LG아트센터 서울에서 독일 원전연주단체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와 함께 ‘마태 수난곡’ 무대에 선다. 그의 내한은 2014년 이후 10년 만이다.

‘마태 수난곡’은 바흐의 인생 역작이자, 바로크 음악의 위대한 유산으로 손꼽히는 곡이다. 자루스키는 “바흐는 목소리를 오케스트라와 대화하는 악기처럼 다룬다”며 “다른 악기들의 파트도 잘 알고 있어야 하고, 모든 감정을 전달하면서도 이탈리아어 레퍼토리보다 더 단순하고 냉정한 방식으로 전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카운터테너 필립 자루스키 [롯데콘서트홀 제공]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는 오블리가토(연주에서 생략할 수 없는 악기나 성부) 바이올린의 연주로 시작한다. ‘바흐 학자’ 존 버트는 “바이올린의 여덟 마디 리토르넬로(합주와 독주가 되풀이되는 형식)가 영적인 완벽함, 그리스도를 상징한다면, 아홉 번째 마디부터의 독창은 인간을 상징한다”며 “이 음악이 그토록 개인적이고 감동적인 이유는 강렬한 표현의 리토르넬로가 제시하는 모범과 이에 다가서고자 하는 인간의 노력 때문”이라고 했다.

자루스키 역시 이 곡에 대해 “바이올린과의 대화 같은 곡으로 후회하는 감정의 강렬한 표현과 극적인 면을 기악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어려운 곡”이라며 “바흐의 음악적 완벽함 앞에서 항상 나 자신의 불완전함을 강하게 느낀다”고 했다.

열 살에 바이올린을 시작한 자루스키는 노래를 하는 게 더 자유롭다고 느껴 성악가의 길을 걷게 됐다. 그는 탁월한 기교와 아름다운 목소리로 금세 세계를 사로잡았다. 프랑스 황금 디아파종상을 비롯해 올해의 승리상, 독일의 에코 클라식 어워드 올해의 성악가를 수상하기도 했다.

카운터테너는 보통 여성 음역대(알토, 메조 소프라노, 소프라노)를 소화하는 남성 성악가를 통칭한다. 자루스키는 그러나 “카운터테너는 음역대보다는 노래하는 방식으로 정의한다”고 강조하며 스스로를 “두성으로 부르는 카운터테너이며, 온몸으로 노래하며 더 다양한 색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고음을 낼 때도 가성이 아닌 두성을 사용한다. “‘가성’이라는 단어엔 ‘거짓’이 들어가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여전히 여성 소프라노 목소리처럼 머리로 노래한다”고 강조했다. 자신의 목소리에 대해선 “메조소프라노보다 가볍고 때로는 더 연약한 소리를 낸다”고 귀띔했다.

카운터테너 필립 자루스키 [롯데콘서트홀 제공]

카운터테너는 오랜시간 남성 성악가에서 들려오는 선명하고 맑은 여성의 목소리가 주는 특별함에 매료되는 경우가 많았다. 자루스키 역시 “예전엔 카운터테너의 독특함으로 관심을 받았지만, 이제는 탄탄한 목소리를 가진 전문 카운터테너가 많아지고 있다”며 “한국인 김강민, 정민호도 흘륭한 커리어를 만들고 있는 카운터테너”라고 소개했다.

부활절 주간에 찾아오는 ‘마태 수난곡’은 바흐가 1727년 마태복음 26~27장을 기반으로 예수의 수난기를 써내려간 대곡이다. 1829년 멘델스존이 무대에 올렸을 당시 헤겔은 “바흐는 위대하고 진실한 신교도였으며, 강인하고 박식한 천재였다. 최근에 비로소 그의 음악을 완전한 형태로 감상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장장 세 시간에 달하는 긴 시간동안 68곡의 숭고한 아름다움을 마주하게 된다.

“영성과 아름다운 음악을 느끼는 것이 매우 어려운 시기에 ‘마태 수난곡’은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3시간 동안 자리에 앉아 침묵을 지키며 잠시 이 미친 세상(crazy world)과 단절하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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