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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가 우리 미래” 뚝심으로 문화강국 개척한 CJ ENM
1995년 문화산업으로 눈 돌린 식품기업
20년 적자에도 꾸준히 콘텐츠 투자·개발
해외서도 작품 인정...시스템 체계화 주효
이재현 CJ그룹 회장(당시 제일제당 상무)이 1995년 드림웍스 SKG와 투자 계약을 체결하는 모습[CJ그룹 제공]

‘콘텐츠 명가’, ‘한류 콘텐츠의 산실’, ‘문화창조기업’....

CJ그룹을 둘러싼 수식어는 이처럼 화려하다. 최근 몇 년 새 세계 시장의 중심에 우뚝 선 K-콘텐츠의 배경에 CJ, 그중에서도 CJ ENM이 오랜 세월 쌓은 노력이 기반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롯이 ‘문화 강국’이 되겠다는 뚝심 하나로, 20년 간 적자를 감내하며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온 CJ는 이제 최초의 기록을 갈아치우며 문화 전문 기업으로 우뚝 섰다.

▶뚝심 하나로 밀어붙인 K-콘텐츠 투자=“이제는 문화야. 그게 우리의 미래야. 단순히 영화 유통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 멀티플렉스도 짓고, 영화도 직접 만들고, 음악도 하고, 케이블 채널도 만들 거야. 아시아의 할리우드가 되자는 거지.”

1995년 미국 LA로 향하는 비행기 안. 이재현 CJ 회장(당시 제일제당 상무)은 누나인 이미경 CJ 부회장(당시 제일제당 이사)에게 이같이 말했다. 이들은 미국 제작사 드림웍스 SKG에 투자하기 위해 이동 중이었다. 드림웍스 SKG는 할리우드 거장 감독인 스티븐 스필버그, 월트디즈니 영화사 대표 제프리 카젠버그, ‘음반업계의 마술사’ 데이비드 게펜이 함께 만든 제작사다. 제일제당의 입장에서는 할리우드의 파트너가 되어 노하우를 배울 최고의 기회였다.

당시 한국은 문화 볼모지나 다름 없었다. 1969년 229편에 달했던 국내 영화 제작 편수는 1995년 65편으로 쪼그라들었다. 영화 한 편의 평균 제작비도 5억원에 불과했다. 이는 당시 할리우드 평균 제작비인 160억원의 30분의 1에도 못 미쳤다. 이 같은 척박한 문화 환경에서 식품사업에 주력하던 CJ가 문화산업으로 눈을 돌린 것은 당시로선 뜬금없는 선택이라 할만 했다. 특히 드림웍스에 3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나선 것은 예상 밖의 결정이었다. 연 매출의 23%에 달하는 자본을 주력 사업과 상관없는 곳에 투자하다니.... 경영진의 반대는 필연적이었다.

그럼에도 이 회장은 뚝심 하나로 밀고 나갔다. 그 배경에는 조부인 고(故) 이병철 선대 회장의 가르침이 있었다. 이 선대 회장은 평소 “문화가 없으면 나라가 없다. 문화는 그것이 창조되고 수용돼 모든 국민의 것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 역시 “역사적으로 경제 강국의 전제 조건은 문화 강국”이라며 “우리나라 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 남으려면 결국 문화 상품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며 문화 산업의 중요성을 힘주어 말하곤 했다.

제일제당은 당시 투자를 계기로 드림웍스 SKG의 공동 설립자가 돼 영상 소프트웨어 시장에 본격 진출했고,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지역의 판권을 보유하게 됐다.

이어 1995년 8월에는 제일제당 내에 ‘멀티미디어사업부’가 신설됐다. 이 조직은 이 회장의 남매가 나서 직접 진두지휘하던 곳으로, 훗날 CJ ENM의 모태가 됐다.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 회장이 단행한 드림웍스 투자는 향후 CJ는 물론, K-콘텐츠를 키우는 단단한 토대가 됐다. 당장의 사업성만 따진 투자가 아니라 먼 미래를 내다보며 처음으로 꿈을 구체화하는 순간이었다.

▶날개 단 CJ ENM...콘텐츠 사업 다각화=제일제당이 시작한 문화 사업의 첫 발은 고무적이었으나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사업이 본격화된 시기가 하필 IMF(국제통화기금) 위기와 겹친 탓에 문화 사업은 ‘돈만 잡아먹는’ 애물단지가 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당시 삼성그룹과 대우그룹도 영화 사업에 도전장을 냈지만, 결국 IMF 풍파를 견디지 못하고 문화 사업에서 철수했다.

이 때 이 회장의 문화 산업에 대한 뚝심이 빛을 발한다. 드림웍스에 이어 문화 분야의 곳곳에 투자를 이어간 것. 그가 비행기에서 누이한테 내뱉은 말들이 그대로 현실화됐다.

제일제당은 영화 사업 뿐만 아니라 음악, TV 채널 등 다각적인 측면에서 문화 사업을 공략했다. 1997년 음악 전문 채널 Mnet을 인수한 데 이어 이듬해 국내 최초 멀티플렉스인 CGV 강변을 열었다. 2006년엔 종합 엔터테인먼트 채널 tvN을 개국했고, 2009년 글로벌 음악 시상식 MAMA를 개최하기 시작했다.

2009년 영화 ‘해운대’가 CJ 영화 최초로 천만 신화를 기록했고, 2010년엔 Mnet ‘슈퍼스타 K2’는 18.1%라는 역대 케이블 시청률 사상 최고의 성적을 기록했다. 이는 곧 전국에 오디션 열풍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조금씩 나오는 성과 속에서 CJ는 드디어 지난 2011년 종합 콘텐츠 기업 CJ ENM을 출범했다. CJ미디어, 온미디어, CJ엔터테인먼트, 엠넷미디어 등 그룹 내 문화 기업을 모두 합병한 것이다.

그렇다고 CJ ENM 출범이 바로 사업 간 시너지로 이어지진 않았다. CJ ENM 출범 후 1년 이상이 지난 2013년 회사의 영업이익률이 3.4%로 매우 낮았던 것. 이마저도 게임 부문의 영업이익 덕분에 가능한 성과였다. 이후 게임 사업부문이 넷마블로 분할된 2014년 이후에는 아예 적자로 돌아섰다. 그룹이 문화 산업을 시작한 지난 1995년 이후 약 20년 간 CJ는 문화 사업으로 수익을 내지 못했다.

그럼에도 CJ ENM은 공격적인 투자를 멈추지 않았다. 1997년 ‘인샬라’ 이후 지금까지 300편이 넘는 한국 영화에 투자해왔다. CJ가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투자한 금액만 7조5000억원이 넘는다.

하지만 2010년이 지나면서 서서히 성과를 보이기 시작했다. 2013년 봉준호 감독이 연출한 영화 ‘설국열차’가 한국 최초로 개봉 당시 전 세계 167개국 선판매라는 기념비적인 기록을 세웠다. 같은 해 CJ ENM이 공동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린 뮤지컬 ‘킹키부츠’는 토니상 시상식에서 작품상, 음악상 등 6관왕에 올랐다.

방송 채널인 tvN도 전성기가 시작됐다. tvN 최초 금토 드라마 ‘응답하라 1994’는 마지막 방송에서 케이블 드라마 사상 역대 최고 시청률인 11.9%를 기록한 데 이어 이듬해 케이블 TV 방송대상을 수상했다.

원로 배우들의 여행기를 담은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할배’ 역시 많은 인기에 힘입어 이듬해 백상예술대상에서 예능작품상을 수상하고, 한국 방송 최초로 미국 지상파 방송인 NBC에 포맷을 수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2014년과 2015년엔 ‘1000만 영화’가 두 편이나 탄생했다. 2014년엔 배우 최민식이 주연한 영화 ‘명량’이 1761만명을 동원하며 역대 한국 영화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다. 이 기록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깨지지 않고 있다.

2015년엔 배우 황정민, 유아인 등을 내세운 영화 ‘베테랑’이 13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지금까지 CJ가 탄생시킨 1000만 영화만 총 9편에 이른다(인수합병된 시네마서비스 작품 2편 포함).

이후 CJ ENM은 콘텐츠 사업을 더욱 전문적으로 다각화하기 시작했다. 2016년 제작사 스튜디오 드래곤을 출범해 드라마 제작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 덕분에 드라마 ‘도깨비’, ‘미스터 션샤인’, ‘김비서가 왜 그럴까’, ‘나의 아저씨’, ‘사랑의 불시착’ 등 히트작들을 대거 배출했다. 이들 작품은 각종 시상식에서 상을 휩쓸며 작품성도 인정받았다. CJ ENM의 콘텐츠가 이같이 줄줄이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엔 체계화된 시스템이 주효했다. 주먹구구식으로 작품 제작을 결정하기보다 체계화된 시스템에 따라 기획부터 제작까지 모두 책임지면서 성공 확률을 높였다는 것이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과거 다른 제작사들은 특별한 시스템도 없이 재무적으로 튼실하지 못한 상황에서 제작에 나서면서 부침이 강했다면 CJ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공격적으로 초점을 맞춰서 시스템을 체계화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문화 산업은 부가가치를 파생시킨 결과로 문화에 또 투자해야 하기 때문에 자금이 많이 들어가는데, CJ는 기업가 정신의 관점에서 이를 체계화하고 집대성하고 규모화했다”고 덧붙였다.

▶“국내 시장은 좁다”...해외 ‘주류 콘텐츠’우뚝=코로나19 직전인 2019년은 CJ 입장에서는 ‘화양연화’ 같은 시절이었다. 국내 성공을 기반으로 해외에서도 본격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해이기 때문이다.

특히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전 세계적으로 한국 영화의 저력을 알리는 기회였다. ‘기생충’은 국내에서 1000만 명을 돌파하는 동시에 2019년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고, 2020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에 올랐다. ‘기생충’이 수상한 상만 국내외를 합쳐 300여 개에 이른다.

이어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과 송강호 주연의 ‘브로커’도 2022년 칸 국제영화제에서 각각 감독상과 남우주연상을 안겼다.

한국 영화 세 편이 연달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배경엔 이 부회장의 공이 컸다. 이 부회장은 ‘헤어질 결심’과 ‘브로커’의 제작 총괄로 이름을 올린 뒤 직접 발로 뛰며 전폭적으로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CJ ENM의 해외 시장 공략은 더욱 공격적으로 발전했다. 단순히 ‘완제품’을 해외에 소개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현지화 콘텐츠를 제작하거나 세계 시장에서 ‘K-콘텐츠의 성공 모델’이라는 DNA를 이식시키는 방식으로 저변을 확대했다.

대표적인 성공 사례가 올해 국내에서 개봉한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한국 영화를 해외에 선보이는 기존의 방식이 아닌 미국 영화 제작에 직접 참여해 현지에서 성과를 만들어낸 사례다.

한국계인 셀린 송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패스트 라이브즈’는 올해 영국과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 노미네이트되는 영광을 안았다. 이는 ‘기생충’에 이어 두 번째 아카데미 노미네이션 작품이다. 지난해 선댄스 페스티벌에서 처음 선보인 ‘패스트 라이브즈’는 지금까지 222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29관왕에 오르는 기록을 쓰며 영화계에서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CJ ENM은 미국뿐만 아니라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여러 국가에서도 현지 영화의 기획과 제작을 주도하고 있다.

CJ ENM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장에도 뛰어들었다. 2020년 토종 OTT인 티빙(TVING)을 독립법인으로 출범시켰다. 티빙은 각종 오리지널과 예능으로 라인업을 강화하는 동시에 올해부터는 3년간 KBO 리그 독점 중계권도 따내며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CJ ENM은 더 나아가 2022년 미국 대형 스튜디오인 엔데버 콘텐트(이후 ‘피프스 시즌’으로 사명 변경)도 인수했다. 미국 현지에서 콘텐츠 기획부터 제작, 유통까지 자체 프로덕션 시스템과 유통망을 확보해 더욱 안정적인 글로벌 콘텐츠 전진 기지를 마련하겠다는 취지다. CJ ENM은 올해 프리미엄 시리즈를 중심으로 영화, 다큐멘터리 등 25편 이상을 선보이겠다는 계획이다. CJ ENM 스튜디오스까지 출범하면서 CJ ENM은 스튜디오 드래곤, 엔데버 콘텐트와 함께 멀티스튜디오 삼각편대 체제를 구축했다.

CJ ENM의 다양한 콘텐츠가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 사랑받고 있는 배경에는 보편적이면서도 독창적인 코드를 잡은 덕분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민지은 경희대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는 “해외에서 콘텐츠가 통하려면 보편적이면서도 독창적인 코드가 필요하다. CJ ENM은 그런 면을 잘 캐치하고 한국적인 코드를 잘 부각해 해외 시장이 따라오도록 했다”고 분석했다.

홍경수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도 “CJ가 제작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인력을 스카우트해서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고 콘텐츠를 경쟁력 있게 만들면서 컨텐츠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며 “보편적이면서도 특수한 한국의 콘텐츠적인 특성을 잘 부각해서 제작했다”고 분석했다.

이현정 기자

ren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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