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정자들에 이용만 당하지는 않아
주체적 여성으로서 욕망에 충실
[헤럴드경제=신소연 기자]초선은 미모를 이용해 시대를 호령했던 두 영웅, 동탁과 여포 사이를 이간질한 인물이다. 특히 선 굵은 남성 영웅 서사 위주인 삼국지에서 초선은 등장 자체로 환영을 받을만큼 인기가 많았다. 덕분에 그는 가공의 인물임에도 서시, 왕소군, 양귀비 등과 함께 중국의 4대 미녀로 꼽히고 있다.
초선이 권력자들 사이에서 이용당하는 해어화(解語花)로서가 아닌, 주체적 인간으로서 욕망하는 여성으로 다시 태어났다. 작가 박서련의 신작 ‘폐월; 초선전’을 통해서다. 중국 후한 말 어지러운 정국 속에서 초선이라는 여인의 삶을 위정자들의 시각이 아닌, 그녀의 시선으로 좇아간다. 이 작품은 지난 6월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여름 첫 책’에 선정, 선공개된 후 이번에 정식 출간됐다.
때는 십상시들이 황실을 장악하고 부정부패를 일삼던 후한 말,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져 사람을 잡아먹는 지경에 이른다. 이름도 없는 무명의 소녀는 ‘살고싶다’는 욕망에 부모에게서 도망쳐 나와 길거리 거지 패거리에 들어간다. 먹고 살겠다는 일념 하에 민간 구휼을 베푸는 태평도에 들어간 그녀는 이 종교를 믿는 황건당들의 반란이 황실 군대에 의해 진압되자 무리들과 도망가다 홀로 황야에서 살아남는다. 당시 군대의 좌장이었던 왕윤에 의해 발견된 그녀는 ‘충신의 후손’이라는 거짓말로 그의 양녀가 된다.
초선이 왕윤의 양녀이든, 아니면 가기(家妓, 개인의 집에 두었던 기생)가 됐든 간에 소설은 동탁과 여포를 만나기 전 그녀의 초반 인생을 촘촘히 따라간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초선이라고 짓고, 왕윤이 황건당의 잔당을 소탕할 때도 공을 세운다. 자신을 사지에서 살려준 아버지에 대한 애틋함이 사랑이라는 걸 깨닫고는 왕윤에게 아버지가 아닌 지아비로 섬기고 싶다는 발칙한 고백을 하기도 한다. 스스로 자신을 규정하고, 독립적으로 생각하며 감정에 솔직했던 초선은 당시 여인상으로서 기대하기 힘든 캐릭터라 할만 하다.
하지만 그녀의 인생의 메인 이벤트(?)라 할 만한 동탁과 여포와의 인연은 의외로 분량이 적다. 여포와의 인연이 시작되는 장면이나 높은 권세로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는 동탁이 어떻게 초선을 먼저 갈구하게 됐는지, 둘의 갈등은 어떻게 전개됐고 그 과정에서 초선이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했는지 등에 대한 서사가 예상외로 간단히 나온다. 아마도 위정자들이 짜놓은 판 안에 자주적 주체로서 초선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초선의 마지막은 다양한 버전의 삼국지의 내용처럼 왕윤을 따라 자살을 하지도,여포의 첩이 되지도, 조조가 거두어 관우에게 하사되지도 않는다. 함께 자결하자는 왕윤을 손길을 뿌리친 그녀는 세상으로 나간다. 작가는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 대해 “이리하여 이야기의 필요로 발명된 여자는 살아서 이야기를 빠져나간다. 나의 초선은 살아남는다”고 말했다.
폐월;초선전/박서련 지음/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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