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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식 미트볼 랩 남능을 느억맘으로 만든 소스에 찍어 먹는 모습. [123rf] |
술에 절어 해장국을 시켜만 먹다가 어느 날 집에서 소고기뭇국을 직접 끓여봤습니다. 그 맛에 반해 요리에 눈을 떴습니다. 산더미 같은 설거지가 기다리고 있지만 나를 위해 한 끼 제대로 차려먹으면 마음이 충만해집니다. 현실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한 끼에 만 원이 훌쩍 넘는 식비에 이왕이면 집밥을 해먹어야겠다 결심이 섰습니다. 퇴근 후 ‘집밥러’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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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커리와 ‘카레’, 중국 서민음식 ‘자장미엔’과 짜장면’
익숙한 음식들의 뿌리를 따라가 보면 납득이 가지만 케첩은 예외입니다. 토마토 케첩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엉뚱하게도 아시아의 액젓 소스가 등장하죠. 재료도, 만드는 방식도 너무나 다릅니다. 하나 비슷한 점이 있다면 튀김 요리를 찍어 먹는 소스로 제격이라는 것입니다. 이번 퇴근 후 부엌에서는 아시아의 액젓 ‘케치압(kê-tsiap)’이 미국을 대표하는 소스 케첩(ketchup)이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풀었습니다. 원조 케첩은 어떤 맛인지 케첩과 비교해볼 수 있는 레시피도 함께 소개합니다.
[음식 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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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생선 액젓인 느억맘. [신주희 기자] |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현지 식당을 방문하면 테이블 위에 갈색 액체 소스가 꼭 놓여 있습니다. 길거리 노점상부터 고급 식당까지 예외가 없습니다. 뚜껑을 열어보면 구릿한 냄새에 “상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드는 이 소스의 정체는 바로 ‘생선 액젓’입니다. 태국에서는 ‘남쁠라’, 베트남에서는 ‘느억맘’이라고 부릅니다. 이들 액젓은 케첩의 사촌 격입니다.
원래 케첩이라는 단어는 중국 푸젠성(복건성)의 방언으로 ‘생선 소스’를 뜻합니다. 푸젠성은 대만 맞은편에 있는 해안 지역으로 500년전 이곳은 중국 해상무역의 중심지였습니다. 동남아시아뿐 아니라 유럽까지 이곳에서 뻗어나갔습니다. 푸젠성에서 만든 배는 페르시아와 마다가스카르까지 항해했다고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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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남쪽 메콩강 지역 한 항구에서 베트남 노동자들이 물고기를 분류해 담고 있다. [123rf] |
교류가 활발한 곳이다 보니 푸젠성의 중국인들은 메콩강을 따라 내려가면서 베트남 어부들에게 이 생선 소스를 전파했다고 합니다. 이 소스가 오늘날 베트남의 멸치액젓 ‘느억맘’이 된 것이죠. 푸젠성의 케첩이 서양인들까지 사로잡은 건 17세기쯤이었습니다. 당시 새로 발간된 캔팅 크루 영어 사전에도 등장하죠. 1690년 사전에서는 ‘케첩(Catchup)’을 두고 ‘고급 동인도 소스’로 정의합니다. 네덜란드는 17세기 후반에 인도네시아에 식민지를 설립했는데 그곳에서 처음 케첩을 접하게된 것이죠.
네덜란드와 영국 상인들이 1600년경 향신료, 직물, 도자기를 찾아 동남아시아에 왔을 때 영국 선원도 케첩에 대한 맛에 눈 떴다고 합니다. 그렇게 18세기에 케첩은 중국 상인들 만큼이나 영국 상인들도 찾는 상품이었지요.
이는 영국 상인 찰스 로키어가 1703년에 썼던 저서 ‘인도 무역에 대한 설명(Account of The Trade in India)’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베트남, 중국, 인도를 여행하면서 아시아에서 돈을 벌 수 있는 교역 노하우를 기술했는데요.
그는 간장과 케첩 등 동양의 소스에 대해 "가장 좋은 케첩은 통킹에서 온 것", "케첩은 중국에서 만드는데 값이 매우 싸다. 나는 이보다 더 수익성 있는 상품을 모른다"고 했습니다. 베트남의 통킹만에서 만드는 생선 젓갈이 특산물이었으며 주요 무역품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액젓 ‘케첩’은 꽤나 비쌌기 때문에 영국 요리사들은 직접 케첩 레시피를 개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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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섯으로 만든 케첩. [위키미디어 커먼스] |
영국인들은 호두, 버섯, 굴 등을 이용해 케첩을 만들었습니다. 작은 생선으로 만든 케첩보다 어두운 색에 덩어리가 많았다고 합니다. 버섯 케첩은 제인 오스틴이 가장 좋아하는 소스로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케첩이 빨간색 옷을 입게 된 건 케첩이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 가면서부터 입니다. 최초의 토마토 케첩은 1812년 필라델피아의 원예가인 제임스 미즈의 책에 등장합니다. 레시피에서는 식초 대신 브랜디를 넣었는데 이 때문에 유통기한이 오늘날보다 짧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토마토 케첩을 상업화하기 위한 관건은 ‘보존 기간’이었습니다. 발효한 액젓과 달리 소금, 식초가 거의 들어가지 않아 금방 상해버리기 일쑤였죠. 19세기 초에는 중소 식품기업들이 토마토 케첩을 생산했지만 재료 보관 기술이 형편없어 곰팡이가 피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프랑스 요리책 저자 피에르 블로는 급기야 토마토 케첩을 두고 "더럽고, 썩었다”고 지적했습니다.
부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업들은 벤조산나트륨(식품 보존제)을 첨가했는데. 인체에 유해한 수준의 벤조산나트륨을 첨가했다는 이유로 케첩은 소비자들에게 외면 받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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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식품화학박사인 하비 워싱턴 와일리. |
이렇게 오명을 썼던 케첩은 미국의 식품화학박사인 하비 워싱턴 와일리 덕에 구사일생합니다. 1876년 와일리는 이제 막 케첩 공장을 운영하기 시작한 피츠버그 출신의 헨리 J. 하인츠와 손을 잡습니다. 케첩 브랜드 이름으로 모두가 아는 그 이름입니다. 하인츠는 와일리 박사와 함께 새로운 레시피를 개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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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J. 하인츠와 1890년대 출시된 토마토 케첩 빈티지. [하인즈 페이스북 캡처] |
이 레시피에는 토마토의 펙틴이라는 천연 방부제가 더 많이 함유되어 있습니다. 또 식초 배합량을 크게 늘려 부패 위험을 대폭 줄였습니다. 그렇게 하인츠는 벤조산나트륨에서 자유로운 케첩을 생산하기 시작했고 세계적으로 대성공을 거두게 됐습니다. 그의 성공 덕분에 이제 아시아의 액젓 케첩은 토마토 케첩으로 탈바꿈했습니다.
동남아 음식에서 액젓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국물요리에 한 스푼 넣으면 감칠맛을 높여주는가 하면 라임즙, 설탕을 넣고 새콤달콤한 소스로 먹기도 합니다. 이 찍어 먹는 소스를 베트남어로 ‘느억 쩜’이라고 하는데요. ‘느억’은 한자어 약(渃)으로 물을 의미합니다. ‘쩜’은 잠(蘸)에서 나온 말로 ‘담그다, 찍다’라는 뜻이죠. 베트남식 만두 튀김인 ‘짜조’를 찍어 먹거나 분짜를 먹을 때 등장합니다. 짜조와 함께 원조 케첩과 토마토 케첩을 같이 곁들여보았습니다.
▶재료 : 돼지고기 뒷다리 다짐육 300g , 부추 한 줌, 피쉬 소스, 당근 1/3, 양파 1/2, 라이스페이퍼, 레몬즙, 후추, 다진마늘 1t, 알룰로스
1. 채소를 다져 줍니다.
2. 베트남식 액젓 1T, 레몬즙 2T, 알룰로스 2T, 물 약간을 섞고 다진 마늘과 당근을 넣어서 소스를 만듭니다.
3. 다진 고기에 후추, 액젓 2T, 다진 채소를 넣고 잘 섞어줍니다.
4. 따뜻한 물에 라이스페이퍼를 3~5초 담근 뒤 고기소를 넣고 말아줍니다. 이때 양 끝을 접은 뒤 나머지를 말아줍니다. 만든 짜조는 서로 달라붙지 않게 기름을 발라줍니다.
5. 180도로 맞춘 에어프라이기에 넣고 15분간 구워줍니다. 뒤집어서 한 번 더 구워줍니다.
프라이팬에 구울 경우 기름 온도를 180도까지 올린 뒤 튀겨줍니다.
짜조를 만들 때 라이스페이퍼 끼리 잘 들러붙기 때문에 조리가 쉽지 않은 편에 속합니다. 만두보다는 만들기 간단하지만 수고로운 편이기 때문에 대량 생산해두고 냉동실에 쟁여두는 게 편합니다. 짜조와 함께 토마토 케첩을 곁들여봤는데요. 짜조는 느억쩜 소스에 찍어 먹었을 때 간이 골고루 배어 더 맛있게 즐길 수 있습니다.
jooh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