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없이 본능적으로…연기의 백미
‘조각같이 예쁘지는 않은 얼굴’ 장점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언니!”
‘영업용 멘트’를 술술 내뱉는 것 같은 가식적인 톤인데, 은연중 애정이 깃들었다. 언니를 부르는 그의 얼굴은 잔머리 굴리는 소리를 내는 듯 묘한 표정인데도 전하는 말은 지나치게 솔직하다. 그가 조력자인지, 아니면 배신자인지 가늠이 안 된다.
오는 7일 개봉하는 영화 ‘리볼버’에서 배우 임지연(34)은 이처럼 캐릭터에 잘 어울리는 애드리브로 술집 마담 ‘윤선’ 역을 소화했다. 그의 ‘날 것’ 연기가 숨 막히는 긴장감으로 채워진 영화의 톤앤무드를 확확 바꾼다. 무엇보다 전직 형사 ‘수연’ 역을 맡은 전도연의 절제미와 정반대의 ‘케미’(궁합)를 선보이면서다. 계산하지 않은, 본능에 내맡긴 임지연의 연기가 작품의 맛을 살렸다.
영화 ‘리볼버’에서 술집 마담 ‘은선’ 역을 맡은 배우 임지연. 영화 스틸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
드라마 ‘더 글로리’와 ‘마당이 있는 집’에서 각각 송혜교, 김태희와 찰떡같은 연기 호흡을 보여 ‘여배우 컬렉터’라는 별칭을 가진 임지연이 이번엔 전도연과 만났다. 전도연과의 인연은 그의 대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재학 당시 ‘한예종 전도연’을 자처하고 다녔던 임지연은 “(전도연 배우와) 인물 대 인물로 만날 수 있어서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임지연과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가졌다. 그는 “전도연 선배와 (본부장 역의) 김종수 선배가 ‘그냥 네 모습을 보여주라’고 해서 ‘그래, 내려놓고 한번 놀아보자’ 했다”며 “노력의 방향성이 달라질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전했다. ‘대본을 수백 번 읽고 달달 외워야만 한다’고 믿은 그간의 고정관념을 처음으로 깬 배경이다.
영화 ‘리볼버’에서 술집 마담 ‘은선’ 역을 맡은 배우 임지연. 영화 스틸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
“‘난다 긴다’ 하는 선배들 사이에서 얼마나 잘 해보고 싶었겠어요. 그런데 현장의 에너지를 그대로 느껴보자는 마음으로 용기 내 연기했어요. 알을 깨고 나온 기분이었습니다. 저 자신한테 ‘셀프 칭찬’도 많이 했고요.”
첫 등장부터 ‘깨발랄’ 포즈를 취하거나 위스키를 거침없이 물병에 담아 얼음과 섞는 장면 등에서 개방적이고 털털한 그의 실제 성격이 묻어난다. 그의 사실상 인생 첫 애드리브도 이번 영화에서 나왔다. 임지연이 극 중에서 시도 때도 없이 부르는 “언니”는 시나리오에 없던 대사다. 일명 ‘향수 뿌린 미친 개’로 불리는 앤디 역의 지창욱과 싸우면서 주고받은 대사도 마찬가지다. 그는 “현장의 공기와 상대 배우가 주는 에너지에 동물적으로 반응했다”며 “전적으로 오승욱 감독님을 믿었기 때문에 주저 없이 연기할 수 있었다”고 했다.
영화 ‘리볼버’에서 술집 마담 ‘은선’ 역을 맡은 배우 임지연. 영화 스틸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
이날 만난 오 감독도 “임지연이 전도연과 영화 ‘배트맨과 로빈’에서 나오는 관계로 나오면 안 봤던 모습을 그릴 수 있겠다 싶었다”며 “영화에서 ‘난 딱 요만큼만 언니 편이에요’라고 말할 때가 임지연 연기의 백미”라고 말했다. 오 감독은 “이 장면에서의 표정과 연기는 전적으로 임지연에게 맡겼는데, 그 복합적인 감정을 잘 소화했다”고 덧붙였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임지연의 직관적인 연기는 그간 무명의 설움을 딛고 다져온 그의 내공이 있어 가능했다. 독립영화에 주로 출연하던 그는 영화 ‘재난영화’(2011)로 데뷔했고, 영화 ‘인간중독’(2013)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다.
이어 드라마 ‘불어라 미풍아’(2016)에서 순진무구한 탈북여성 역할로 첫 주연을 맡으면서 연기력을 서서히 인정받았다. 이윽고 악역 중 악역을 제대로 소화한 드라마 ‘더 글로리’로 단숨에 그의 이름 석 자를 대중들에게 제대로 각인시켰다. 그의 연기 인생 10여년 만에 이룬 쾌거다.
영화 ‘리볼버’에서 술집 마담 ‘은선’ 역을 맡은 배우 임지연. 영화 스틸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
임지연은 “한 작품 한 작품씩 거치며 언제 힘을 주고 빼야 하는 지 알게 됐다”며 “한편으로는 내 얼굴을 사랑할 줄 알고 내 매력이 뭔지도 찾았다”고 말했다. ‘더 글로리’의 연진 역을 했을 때만 해도 입술이나 눈썹의 움직임까지 세세한 모든 것을 철저하게 계산해 연기했던 그였다.
그에게 스스로 꼽는 매력이 무엇인지 묻자 “조각같이 예쁘지는 않은 얼굴”이라며 망설임 없이 답했다. 너무 예쁘지 않은 외모 덕택에 악한 역도, 선한 역도, 순진한 역도, 털털한 역도 모두 소화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송혜교 언니는 그림같이 예쁘지 않나요? 저는 그렇지는 않지만 다양한 색깔이 있는 얼굴이라 굉장한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유튜브 ‘핑계고’에 출연해 ‘라면 5개를 먹는 먹성’이라고 말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그는 “저는 완전 대식가다. ‘먹방’을 제대로 보여드리려고 작정하고 있다”며 개구쟁이 같은 미소를 지었다.
임지연은 코미디 장르 작품에 대한 욕심도 드러내 보였다. 그는 “유쾌하고 재치있고 가벼운 코미디 연기를 보여드릴 때가 된 것 같다”며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기회가 되면 하고 싶다”고 의욕을 드러냈다. 현재 그는 차기작으로 조선시대 배경의 사극 드라마 ‘옥씨부인전’ 촬영을 한창 진행 중이다.
dsu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