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이 쓴 한국사 소설…철저한 취재로 극복
영국인 작가 다니엘 튜더가 22일 서울 정동1928아트센터에서 기자 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 |
[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다니엘 튜더의 장편소설 ‘마지막 왕국’은 고종의 둘째 아들 의친왕 이강(1877~1955)과 그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뼈대로 소설적 상상력으로 엮어낸 작품이다.
다니엘 튜더는 서울에 거주하며 집필하고 있는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전 서울특파원이다.
튜더 작가는 22일 서울 정동1928아트센터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자료조사와 집필에만 5년이 걸린 616쪽에 이르는 이 소설 출간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역사적 인물들을 새롭게 조명하고 독립운동의 이야기들에 관심이 높아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600쪽이 넘는 벽돌책이지만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등장해 펼치는 보편적인 인간의 성장 스토리라서 심심하지 않게 읽으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작가는 100여 년 전 미국, 일본, 러시아 등 강대국의 치열한 패권 경쟁의 한복판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던 비운의 왕국 조선의 모습과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해 몰락하는 왕가의 비참한 현실을 소설적 상상력으로 풀어냈다.
의친왕 이강과 여성 독립운동가 김란사(낸시 하), 김원식 등 매력적인 인물들이 펼치는 꿈과 좌절의 이야기들은 격동의 한국 근대사와 일제강점기 초반 독립투쟁사들을 더 생생히 다가오게 만든다.
작가가 의친왕의 이야기를 처음 접한 것은 기자로 일하던 때 의친왕의 아들인 황실문화재단 이석 이사장을 통해서였다.
“이석 선생은 미국 불법체류 경험에 사업 실패(도 했고), 노래를 발표해 스타가 되기도 했으며, 베트남전도 참전하는 등 파란만장하게 사신 분이에요. 당시 그런 내용을 기사화했고, 그분과 가문의 이야기들을 소설화하면 어떨까 생각을 했는데 5년 전에 본격적으로 결심을 했습니다. 늘 창조적인 일을 해보고 싶었거든요.”
이강은 을미사변을 계기로 미국인 선교사 언더우드의 집으로 피신했다가 그곳에서 언더우드 부부의 양아들인 김원식을 만나게 된다. 김원식에게 자극받은 이강은 미국 유학을 떠나게 되지만 무한히 주어진 자유를 주체하지 못하고 방탕한 생활을 한다. 그러다가 여성 유학생 낸시 하(김란사)를 만나면서 다시금 조국의 앞날을 고민하게 된다.
작가는 의친왕 이강이 여러 단점과 약점에도 불구하고 성장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던 사람이라고 말했다.
“인생사를 보면 관계 맺기가 어려운 사람이었어요. 술 좋아하고, 여성들과 짧은 연애도 많이 했지만, 독립운동가들과 대화하면서 목적도 생겼죠. 저는 이강을 성장하는 사람으로 봤습니다.”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로 미 웨슬리언대를 졸업한 조선 최초의 여성 미국 유학생이었던 김란사(1872~1919) 역시 작가가 소설 속 캐릭터 구축에 공을 많이 들인 인물이다.
“이 책으로 특히 빛을 비춰드리고 싶은 인물이 김란사입니다. 정말 부당하게 역사에서 잊힌 인물이라고 생각해요. 많은 분이 제 책을 보시고 김란사에 대해 더 알고 싶다고 생각하신다면 좋겠습니다.”
튜더 작가의 부인이며 이날 기자간담회의 사회를 맡기도 한 임현주 MBC 아나운서는 “작가가 숨겨진 독립운동가가 발굴됐으면 계속 좋겠다는 말을 평소 많이 했다”고 거들었다.
한국의 역사를 소재로 한 소설을 외국인이 쓴다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작가는 치밀한 자료조사와 인터뷰 등 소설의 뼈대를 위한 사전 취재를 방대하게 진행했다고 한다.
작가는 이번 책을 자신의 모국어인 영어로 집필해 한국어판을 먼저 내놨다. 현재 영미권 출판도 타진하고 있으며, 이르면 내년 영어판도 출간될 예정이다.
think@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