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스랄라 사망 후 불안 고조…내부 충돌 우려도
29일(현지시간) 레바논 베이루트 남부 교외에서 이스라엘이 헤즈볼라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를 표적으로 실시한 공습 현장을 주민들이 확인하고 있다. [AFP] |
[헤럴드경제=김현경 기자]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가 이스라엘의 연이은 공습으로 초토화되면서 레바논 전체가 혼란에 빠졌다. 헤즈볼라의 약화로 자국 내에서 분열과 충돌이 일어나고, 이스라엘의 득세 속에 피란길에 오르는 국민이 더 늘어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커지고 있다.
29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레바논은 약 일주일간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남부 지역이 황폐화되고 수백 명이 사망했으며 수만 명이 피란처를 찾아 떠났다.
나지브 미카트 레바논 총리는 이날 긴급 내각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이스라엘이 일주일 전 공습을 시작한 이후 최소 11만명이 피란했다. 이 수치는 며칠 안에 100만 명에 달할 수 있다”며 “이는 레바논 역사상 최대 규모의 피란민 이동”이라고 밝혔다.
미카트 총리는 “남부와 동부 베카 지역에서의 대규모 피란 물결을 잊으면 안 된다”며 이같이 말했다고 AFP통신, 알자지라방송 등이 전했다.
상황 완화를 위한 노력에 대한 질문에 그는 “외교적 해법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답했다.
국제 구호 단체 머시 코프(Mercy Corps)의 라일라 알 아민 레바논 담당 이사는 레바논 내 상황에 대해 “재앙이다”며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정부가 대피소를 마련할 수단이 없다는 점”이라고 블룸버그에 말했다.
이는 이스라엘이 헤즈볼라의 수장 하산 나스랄라와 이 조직의 지휘관급 20명 이상을 제거하며 승리감에 도취된 모습과 대조적이다.
이날 이스라엘 신문들은 일제히 “새로운 중동”을 대서특필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나스랄라의 죽음으로 가자지구의 하마스부터 예멘의 후티 반군, 시리아와 이라크의 동맹군에 이르는 반이스라엘 민병대 네트워크인 “이란 ‘악의 축’의 중심, 핵심 엔진이 무너졌다”고 선언했다.
이스라엘 싱크탱크 미스가브 국가안보·시온주의 전략 연구소의 전 고위 관리 및 선임 연구원인 코비 마이클은 블룸버그에 “이스라엘은 게임의 규칙을 바꿨다”며 “헤즈볼라가 마비되면 전체 (저항의) 축이 마비된다. 이란은 취약하다”고 말했다.
헤즈볼라는 지난 20년 동안 레바논 정치를 지배해 왔다. 하지만 최근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헤즈볼라의 전쟁 능력이 상당히 약화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 미국 당국자는 앞서 CNN에 “(이스라엘군의 잇단 공습으로) 헤즈볼라는 아마도 20년 전으로 돌아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레바논 내의 헤즈볼라 반대 세력 사이에서도 헤즈볼라의 약화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특히 헤즈볼라를 32년간 이끌어 온 나스랄라의 죽음으로 긴장이 더욱 고조됐다. 헤즈볼라가 지난 28일 그의 사망을 확인했을 때 헤즈볼라의 거점인 베이루트 남부의 건물에서 총성과 외침, 비명이 터져 나왔다.
많은 레바논 국민들은 지난 2008년과 2021년처럼 헤즈볼라 지지자들과 헤즈볼라 반대 세력 간의 거리 충돌이 재현될까 우려하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나스랄라의 반대 세력은 일단 조용히 사태를 관망하고 있다. 한 반대 그룹은 지지자들에게 나스랄라의 사망에 대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게시물을 올리거나 공개적으로 발언하는 것을 자제하라고 당부했다.
레바논 군대는 이날 시민들에게 “우리나라 역사상 위험하고 민감한 시점에 시민 평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행동에 말려들지 말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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