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단독] 경찰청·소방서·지자체도 당했다…예방 사각지대 놓인 ‘국산 둔갑 납품’
국회 기재위 소속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실
원산지 속인 부정납품, 4년여간 50건 적발
총 3541억원 규모…단속에도 매년 반복
“이벤트성 MOU…사후적발 아닌 예방 필요”
경찰청에 부정납품 사례로 적발된 중국산 저가 장갑·가방 등 물품 자료사진 [관세청 제공]

[헤럴드경제=김진 기자] #. 경찰청에 ‘국내산’으로 납품된 교통·방한장갑과 가방 등 17만여점이 ‘저가 중국산’이었다는 사실이 올해 관세청에 적발됐다. 납품업체는 원산지표시 라벨을 제거하고 경찰청을 속인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액 규모는 약 18억원 상당으로, 해당 업체 대표는 대외무역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넘겨졌다.

2023년에는 약 59억원 상당의 베트남산 근무복 12만여점이 같은 수법으로 공공기관과 지방자치단체에 납품되다 덜미가 잡혔다. 2021년에는 베트남, 중국 등에서 수입된 근무복 158만여점이 정부·공공기관·군부대로 흘러들어간 사실이 적발됐다. 공공기관에 납품된 사회복무요원 근무복 35만여점도 베트남산이었던 것으로 같은 해 드러났다. 두 사건의 피해액은 각각 678억원, 100억원에 달했다.

이른바 ‘택갈이’ 수법으로 원산지를 속인 물품을 공공기관에 납품하는 사례가 매년 끊이지 않고 있다. 17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여당 간사인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실이 관세청으로부터 제출받은 ‘공공조달 물품 부정납품 단속 실적’ 자료에 따르면 2020년부터 올해 7월까지 적발된 사건 수는 총 50건으로 집계됐다. 사건금액은 총 3541억원이다. 연도별로 살펴보면▷2020년 6건(약 634억원) ▷2021년 15건(약 1224억원) ▷2022년 11건(약 1244건) ▷2023년 7건(약 298억원) ▷2024년 1~7월 11건(약 141억원)이다. 같은 기간 실제 원산지는 중국이 37건(70%)으로 가장 많았고, 베트남이 12건(23%)으로 뒤를 이었다.

올해 부정납품 사례는 경찰청 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적발됐다. 포장박스를 바꾸거나 원산지 스티커를 제거한 ‘중국산 소방용 랜턴’ 7304여점(약 16억원 상당)이 소방서에 부정납품됐다. 베트남·중국 등에서 수입된 의류 30만점(약 186억원 상당)도 국산으로 둔갑해 공공기관에 흘러들어간 것으로 드러났다.

국민 세금이 쓰이는 공공조달 부문에서 반복되는 부정납품 사례는 품질·안전 문제와 더불어, 국내 중소기업과 그 근무자들의 일자리에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꾸준한 지적을 받아 왔다. 이에 관세청은 지난해 3월 조달청과 업무협약(MOU)을 맺고 그해 말 ‘공공조달 부정납품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했다. 관세청 수입자료와 조달청 등이 입수한 조달 계약자료를 연계한 두 기관의 합동 단속이 실시되면서 적발 건수가 크게 늘어났다는 게 관세청의 설명이다.

문제는 정부 대응이 ‘사후 적발’에 집중됐다는 점이다. 이는 적발 업체에 대한 형사처벌, 과징금 부과 등의 조치에도 불구하고 매년 같은 유형의 사례가 반복되는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부정납품 업체에 대한 ‘공공조달 입찰 제한’이나 ‘부당이득 환수’가 실시되고 있지만, 검찰의 기소 판단이 완료된 후에나 가능한 만큼 선제적인 예방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박 의원실이 조달청으로 추가 제출받은 ‘부정납품 관련 상세 조치내역’ 자료에 자료에 따르면 관세청과 조달청의 MOU가 체결된 이후 입찰 제한이나 부당이득 환수가 이뤄진 사례는 단 2건에 불과하다. 각각의 부당이득 환수 금액은 같은 기간 누적된 피해액에 한참 못미치는 약 2391만원, 약 9218만원이다. MOU에 명시된 조달청 공정조달관리 시스템과 관련해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와 관련해 박 의원은 “저가의 외국산 물품이 국산으로 둔갑해 공공기관에 부정납품되는 사례가 매년 반복되고 있다”며 “관세청·조달청이 ‘보여주기식’, ‘이벤트성’ MOU를 체결할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긴밀한 교류를 통해 사후 적발이 아닌 예방적 차원에서 공정한 납품행위가 이뤄질 수 있도록 협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회 기획재정위 여당 간사인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 [의원실 제공]

soho0902@heraldcorp.com

연재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