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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해’, 처절한 사투가 남기는 여운이란?
영화 ‘황해’는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임에도 2주만에 200만 관객을 동원하고 있다. ‘추격자’의 나홍진 감독 작품답게 역시 센 영화였다. 요즘 용어로 ‘레알 소름 돋음’이다. 밑바닥까지 뽑아내는 감독의 치열함이 엿보인다. 지독하다는 말이다.

한국의 액션 스릴러 영화는 언제부턴가 극도로 살벌해졌다. 망치와 스패너, 개와 소 뼈다귀까지 동원해 폭력을 행사한다. 여기에 공권력은 무력할 뿐이다.

압도적인 스케일과 강렬한 액션을 보여주는 ‘황해’는 남자들이 떼죽음을 당한다. 그렇게까지 많은 사람을 죽일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적어도 잔인한 장면을 두고 장난을 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순수 폭력’이라 할 수는 없지 않을까?

택시운전수, 살인자, 조선족, 황해 등 4개로 나누어진 챕터 속에 한 남자의 고고한 드라마를 담아 내며 지금껏 본 적 없었던 한국 영화의 새로운 도전과 성과를 담고 있다. 

구남(하정우)은 옌벤에서 택시를 운전하며 구질구질한 일상을 살아간다. 한국으로 돈 벌러 간 아내는 6개월째 소식이 없고, 돈을 불리기 위해 마작판에 드나들지만 항상 잃을 뿐이다. 사채 빚은 계속 쌓여가는데, 살인청부업자 면가(김윤석)로부터 한국에 가서 누군가를 죽이고 오면 큰 돈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게 된다.

밀항선을 타고 황해를 건너 서울로 간 구남은 자신이 죽여야 하는 대상이 눈앞에서 죽임을 당하는 광경을 목격한 후 살인자 누명을 쓴 채 경찰에 쫓기게 된다. 청부살인을 의뢰했던 버스회사 사장이자 국내파 조폭 두목 태원(조성하)은 증거 인멸을 위해 구남을 없애려 하고, 옌벤에 있던 면가 또한 황해를 건너와 아내의 생사를 확인하고 있는 구남을 쫓는다.

그렇게 해서 벌어지는 서울 조폭팀과 옌벤 조폭팀의 사투는 지독하고 엄청난 볼거리고 서스펜스다. 트레일러 한 대를 무참히 망가뜨리는 부산 부두에서의 자동차 추격 장면들을 보고나면 힘이 빠질 정도다. 태원이 마지막 버스 종점에서 추격전을 벌이다 피투성이가 된 채 죽는 장면은 무려 33일 동안 찍었다고 한다.

김윤석이 연기하는 면가는 말투가 잘 들리도록 조선족 톤을 약간 수정했지만 조금도 어색하지 않았다. ‘타짜’의 아귀나 ‘황해’의 면가나 너무 잘 어울리는 옷을 입었다. 뼈속까지 거칠어 보이는 김윤석, 평범한 소시민이 큰 일에 연루되는 변화를 서늘하게 보여주는 하정우, 겉모습과는 너무 다른 내면을 지닌 조성하 모두 A급 고급연기를 선보인다. 극사실주의 연출을 선보인 나홍진 감독이 영화 속에 불확실한 상태로 숨겨둔 코드들을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초기에 등장하는 구남의 내레이션은 개병(광견병)으로 시작한다. 미친 개가 죽어 땅에 묻어주자 사람들이 시체까지 꺼내먹었다는 이야기는 이후의 섬뜩함을 예고한다.

결국 사람을 죽이려는 건 이중으로 얽힌 치정에 의한 것이다. 이를 위해 사람들은 수단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달성하려 한다. 문제를 해결해주려는 도움의 손길 없이 세상은 비정하기만 하다. 구남을 통해 조선족의 힘든 현실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평범한 한 개인, 구남이 빚 갚으려고 큰 일을 저지르다가 도리어 마지막에 포말처럼 사라지는 장면을 보면서 관객은 허무함과 모호함, 차가움을 느낄 것이다. 이런 게 인생일까?

서병기 대중문화전문기자/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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