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의 최대 위성 플랫폼인 아스트로(ASTRO)에 가입된 친구 집에서 한국 시청자와 동시에 음악 프로그램을 시청한다는 것은 한국 대중문화 콘텐츠 소비 속도가 그만큼 빨라졌음을 의미한다.
실시간으로 K팝이 소비되는 건 ‘신한류’의 주요 특징이기도 하다. 배용준, 장동건, 이병헌, 원빈, HOT, 안재욱, 클론 등을 낳은 한류 1세대의 콘텐츠는 한국에서의 소비와 시차가 제법 났다. 한국에서 인기를 끌고 나면 한참 지나서 현지에서 반응이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최근 한류의 무게중심이 드라마에서 걸그룹 등 아이돌 가수가 중심이 된 가요와 공연으로 옮겨가고, 한류의 수용자층도 아줌마 외에 10~20대 젊은 층까지 다양해지고 있다. 뉴미디어에 익숙한 젊은 한류 팬들의 뜨거운 호응으로, 한국에서 만들어진 콘텐츠는 외국으로의 확산 속도가 더욱 빨라지고 있고, 소통 방식도 다변화되고 있다.
뉴미디어 시대에 음악과 드라마 등 대중문화 콘텐츠가 국경(border)을 넘는 방식은 단순히 드라마의 수출, 가수의 해외 진출이 전부였던 예전 방식과는 다르다.
대중문화의 공장인 미국에서조차 ‘동방의 할리우드’라 일컫는 ‘제3의 한류’는 전 세계 메이저 SO(종합유선방송 사업자) 채널, 세계적 UCC 사이트인 유튜브와 소셜네트워킹(SNS)을 통해 시차 없이 세계 팬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위성 플랫폼, 국경(border)을 손쉽게 넘다
국내 지상파방송사도 메이저 위성 및 케이블 플랫폼의 주요한 채널에 상당 부분 진출해 자사 콘텐츠를 방송하고 있다.
KBS의 경우 미국은 직접위성방송(DTH)인 에코스타(Echo Star)와 타임워너(Time Warner), 컴캐스트(Comcast), 콕스(Cox) 등 케이블방송에, 일본은 직접위성방송인 스카이퍼펙스티브이(Sky Perfex TV)와 제이콤(J:Com) 등 케이블방송에, 아시아에는 아스트로(ASTROㆍ말레이시아), 홍콩케이블(HK Cableㆍ홍콩), 스타허브(Star Hubㆍ싱가포르), SCTV(베트남), 스카이케이블(Sky Cableㆍ필리핀), 산사TV(Sansar TVㆍ몽골) 등 유명 채널에 자사 콘텐츠를 공급하고 있다.
250만가구가 가입돼 있는 말레이시아의 아스트로는 동남아에서 가장 큰 위성 플랫폼이어서 대부분의 방송사가 공짜로 콘텐츠를 제공한다. KBS도 처음에는 무료로 콘텐츠를 제공하다 1년이 지나면서 유료로 바꾸었고, 최근에는 200% 인상된 금액으로 콘텐츠 제공계약을 다시 체결하게 됐다.
“말레이시아의 10대 소녀들이 친구 집에 모여 KBS ‘뮤직뱅크’를 실시간으로 본다는 건 엄청난 한류 효과를 가져온다. 아스트로에서 방송되는 KBS 프로그램들의 시청률이 80개국 콘텐츠 중 10위권 내에 들 정도로 꽤 높은 시청률을 올리고 있다.”
KBS 권오석 콘텐츠정책국장의 이 말은 세계 유수의 위성 플랫폼에 경쟁력 있는 한국 프로그램을 공급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주고 있다. 한국 아이돌 그룹의 최신 음악을 동남아 청소년들이 금세 따라부르고 춤까지 출 수 있게 된 건 위성채널을 통해 직접 한국 가수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권 국장은 “단품 판매는 작품 1개 판매에 그치지만, 강력한 플랫폼에 둥지를 틀면 한국의 방송 프로그램과 출연자의 인지도를 높이기에 매우 유리하다”고 해외 채널 진출의 효과를 설명한 뒤 “이 같은 콘텐츠 정책은 해외에 한국을 알리고 지한파를 늘리며 한국 상품에 대한 매력으로 연결되는 ‘한류 선순환구조’에 큰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SNS, 팬덤의 진화
지구촌을 강타한 소셜네트워킹(SNSㆍSocial Networking Service)은 한류 산업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한류는 소셜네트워킹을 타고 세계 네티즌에게 빠르게 퍼져 나가고 있다. 한류 스타들은 직접 페이스북, 트위터, 미투데이 등을 통해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이야기들은 빠른 속도로 전 세계 네티즌과 공유된다. 중간 매체를 거치지 않고 직접 스타들이 팬들과 소통하게 됐다는 것은 대중문화계에서도 엄청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인터넷이 있는 곳이라면 이제 누구든 어디서든 한류 스타와 대화할 수 있고, ‘친구’가 되는 시대가 열렸다.
현재 트위터 등에서 가장 많은 팔로어를 자랑하는 연예인 대부분은 아이돌 스타다. 국내에선 슈퍼주니어의 동해가 팔로어 32만명으로 1위를 기록한 가운데, 김희철(3위ㆍ28만4000명), 최시원(4위ㆍ28만3000명ㆍ이상 슈퍼주니어), 닉쿤(5위ㆍ26만7000명ㆍ2PM) 등이 최상위권을 형성하고 있다.
지난해 9월 미국 로스앤젤레스 스테이플스센터에서 SM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들의 합동 콘서트가 열렸을 당시, 공연 전 북미 지역의 소녀시대, 슈퍼주니어, 동방신기 등 SM타운의 연합 팬클럽 회원 2000여명은 자발적으로 모여 공연장 인근에 위치한 LA컨벤션센터에서 팬클럽 단합대회를 했다. 이날 팬클럽 행사는 한 20대 미국인 여성 팬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화제가 되면서 팬들의 자비를 들여 마련한 것. 당시 SM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2000여명의 팬이 자발적으로 모였다는 얘기를 듣고 우리도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궁극적으로 SNS는 해외 시장 진출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 절감 효과를 가져왔다.
과거 국내 기획사들은 해외 진출을 위해 현지 에이전트와 음반유통사, 공연기획사 등과 직접 접촉하고 프로모션에 막대한 비용을 투자했다. 그 과정에서 겪는 시행착오나 기회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아이돌 그룹 엠블랙의 소속사 제이튠캠프의 한 관계자는 “유튜브나 공식 트위터 등을 통한 프로모션 효과는 가수들이 직접 현지를 방문해 홍보 활동을 벌이는 것보다 훨씬 클 뿐 아니라, 현지 반응을 실시간으로 체크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스마트폰, 태블릿PC의 빠른 보급으로 인해 접근성은 더욱 편리해졌다.
▶유튜브, 시간ㆍ공간을 넘어선 한류의 소통 창구
한국 아이돌 스타와 관련한 UCC는 언제나 유튜브(YouTube.com)의 최고 인기 동영상 코너 상단을 도배한다.
지난 2008년 원더걸스의 ‘노바디’를 시작으로 소녀시대의 ‘지(Gee)’는 아시아 및 미주 대륙을 넘어 유럽에서도 폭발적인 조회 수를 기록했다. ‘Gee’의 뮤직비디오는 현재까지 유튜브에서만 3300만건의 조회 수를 기록 중이다.
SM엔터테인먼트 김영민 대표는 “SM의 다양한 콘텐츠가 유튜브를 통해 시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전 세계 팬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결국 유튜브의 힘은 소녀시대가 이미 일본에 진출하기도 전에 수만명의 팬이 일본 내에 결성되는 효과를 낳았을 뿐 아니라 일본 진출 쇼케이스에만 2만2000명이 몰려드는 결과를 가져다줬다.
동방신기가 일본에 진출할 때만 해도 일본에서 길거리 콘서트부터 시작해 거의 원점(?)에서 인지도를 쌓아나갔지만, 소녀시대와 카라 등의 걸그룹은 일본에 진출하기 전 이미 그들이 부른 노래와 뮤직비디오의 유튜브 조회 건수가 수백만건을 기록한 상태였다. 그래서 소녀시대의 쇼케이스는 갑자기 3회로 늘어났다.
유튜브에는 현재 일명 가요계 ‘빅 3’로 불리는 SM, YG, JYP엔터테인먼트는 물론이고 30여개의 국내 기획사들이 협약을 맺고 자신들만의 채널을 개설해 운영 중이다. 또 MBC는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스타오디션-위대한 탄생’의 오디션을 유튜브를 통해 진행하는 등 한류 팬들의 소통 창구로 이용하고 있다.
서병기ㆍ홍동희 기자/wp@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