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을 앞둔 지난달 29일 여성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32)씨가 경기도 안양시 자신의 월셋방에서 차가운 주검으로 발견됐다. 재능을 인정받았지만 장편영화 데뷔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생계난에 시달리다 병고와 기아로 결국 쓸쓸한 죽음을 맞았다.
무명 영화 시나리오 작가인 최 씨의 사연이 알려져 영화계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는 가운데, 영화인들의 열악한 근로조건을 보여주는 조사결과가 발표됐다.
이에 따르면 배우와 감독, 스태프 등 한국영화산업 종사자들은 연간 약 1.5편의 제작에 참여해 5개월쯤 일하고 1000만원이 갓넘는 연봉을 손에 쥐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타 배우는 영화 한편으로 대박 수입을 올리지만, 그 뒤에는 `배고픔'에 허덕이는 무명 영화인들의 눈물이 숨어 있는 것이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지난해 8~9월 인터넷설문 및 촬영현장, 영화사 방문을 통해 400명(응답 30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년간 영화인들이 참여하는 작품은 평균 1.45편, 고용기간은 5.27개월, 임금은 1013만원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년도인 2009년 영화산업협력위원회가 조사발표한 ‘참여작품 1.64편, 고용기간 6.35개월, 연봉 1221만원’보다 모두 줄어든 수치로, 한국영화가 제작비를 감축하면서 영화인들의 평균적인 근로조건이 악화된 것으로 분석됐다.
영진위는 영화인들의 복지실태 조사와 국내외 예술인 관련 복지제도를 검토하여 영화인들의 실업기간 생활지원 및 은퇴 후 노후대비를 위한 상호부조 방안을 찾아보고자 이같은 내용을 담은 연구보고서 ‘영화인 공제회 설립 및 운영방안’를 최근 발표했다.
영진위의 조사대상에는 주연부터 조ㆍ단역, 대역등 연기자와 영화사대표나 연출, 촬영, 조명, 녹음 등 각 분야 감독ㆍ팀장급부터 수습(막내)까지 스태프가 고루 포함됐다.
전체의 71.2%는 영화계 활동 이외의 경제적 활동을 통해 부족한 수입을 충당했다. 결국 3명 중 2명은 ‘투잡족’인 셈이고 지난 2008년 조사한 한국영화산업 종사자 총 1만9098명을 토대로 추산하면 ‘전업’ 영화인은 6000명이 채 되지 않는다.
연기자(배우)를 제외한 영화인들의 연봉은 더욱 열악해 850만원으로 조사됐으며, 그 중에서도 팀장급 이하 영화스태프의 수입은 687만원이었다. 최근 국세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9년 탤런트ㆍ배우의 연평균 수입은 3300만원으로 나타났다.
시나리오 작가 최씨가 생전 겪은 생활고는 많은 영화인들이 안고 있는 어려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기획단계부터 일을 하게 되는 시나리오ㆍ연출 부문 스태프들은 전체 영화인들의 평균보다 적은 연간 1.24편에 참여하는 반면 고용기간은 5.19개월로 나타났다. 시나리오 작가는 대부분 영화사에서 계약금 중 일부를 받고 작품이 실제로 촬영, 제작이 되야 나머지 잔금을 받는 형식으로 임금을 지급받는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영화인들의 81%가 계약금과 잔금 형태로 임금을 지급받으며 전체의 91%가 작품별 또는 단기 고용되는 비정규직이었다.
설문조사에서 영화인들은 임금과 관련한 불만 사항으로 정당한 보상을 주지 않는다는 점과 잔금에 대한 체불 발생가능성을 지적했다. 영진위는 보고서에서 “직급별·팀별 임금 가이드라인과 표준 고용계약서 등의 마련 및 사용 의무화를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또 보고서는 “영화계의 열악한 처우로 인해 역량있는 숙련 인력이 영화제작 현장을 이탈하고 있다”며 공적 지원이 함께 이뤄지는 영화인 공제회의 각종 상호 부조제도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형석 기자/suk@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