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포리아(Aporia)는 그리스어로 ‘막다른 곳에 다다름‘이라는 뜻. 그러나 이정은 ‘사랑’이라는 난관에 부딪힌 딜레마를 함축하고 있다. 이정의 아포리아 시리즈는 롤랑 바르트의 책 ‘사랑의 단상(A Lover’s Discourse)‘을 모티브로 했다. 롤랑 바르트는 사랑에 빠진 이는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망을 갖게 되고, 진부한 사랑의 표현을 끝없이 소비하며 결국 사랑하는 대상이 아니라 ‘사랑을 사랑’하게 된다고 한다. 이렇듯 공허하게 되풀이되는 사랑의 언어들 이면에 깃든 공허함을 목도한 작가는 도시 속 화려한 네온조명을 매개체로 그 아이러니를 표현했다.
작가는 네온으로 ’Why‘, ‘I love you with all my heart’ 등의 텍스트를 제작해 풍경에 직접 설치한 다음 이를 촬영했다. 진부한 사랑의 문구들이 적막하고 황량한 공간과 만나 전혀 색다른, 동시에 통렬한 아름다움을 뿜어낸다. 현대인의 고독과 비애, 그리고 말로는 형언키 어려운 ‘사랑’의 딜레마를 색다르게 전하고 있는 것.
작가는 “관객들이 작품을 보며 자신만의 사랑의 단상에 잠기는, 짧고 강렬한 여행을 경험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02) 745-1644 www.oneandj.com>
이영란 기자/yr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