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4%와 7%의 임대차 경제학
월세전환이율 6~12%대은행이자보다 배이상 높아
강남→경기남부→강북으로
반전세-월세 빠르게 확산
과도한 월세·교육비 부담
젊은층 주택구입 기회박탈
베이비부머엔 고정수입 창구
은퇴늘면 월세시장 더 확대
전세대란으로 불과 몇개월새 5000만원이 올라 2억원으로 전세 시세가 형성된 아파트를 두고 집주인과 세입자가 옥신각신한다. 집주인은 “5000만원을 돌려줄테니 1억원만 보증금으로 내고 나머지는 월세로 70만원씩 내고 재계약하라”고 제안한다. 세입자는 “5000만원을 그냥 올려줄테니 2억원 전세로 하자”고 사정한다.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는 반전세ㆍ월세 트렌드가 낳은 낳은 풍경이다. 연 4%의 은행이자로 1억원의 연간 수익은 400만원, 이마저도 15.4%의 소득세를 제외하면 339만원이 고작이다. 하지만 5000만원을 돌려주고 월세를 꼬박꼬박 70만원씩 받으면 세금 한푼 내지 않고 연간 840만원을 버는 ‘더블장사’다. 집주인은 반전세(보증부월세)가 두말이 필요없는 최선의 선택이다. 하지만 매월 수십만원의 세를 내야하는 젊은층들은 사실상 자본축적의 기회를 잃어 평생 홈리스 신세로 살아야 할 공산이 크다.
임대시장의 급변화는 세대간, 계층간 갈등을 증폭하는 시한폭탄으로 비화할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반전세를 살고 있는 직장인 이모씨(42)는 “한 달에 수십만원 씩 월세를 지출하고, 교육비와 생활비 등을 제하면 어떻게 돈을 모으고, 내 집은 어떻게 마련하느냐”고 울분을 토했다. 또 다른 직장인 조모씨(33)는 “베이비 부머가 은퇴해 너도 나도 반전세와 월세로 전환한다면 젊은 세대들만 봉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손재영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전세는 내집 마련을 위한 목돈축적의 징검다리”라며 “최대한 지출을 통제해도 충분한 동기부여가 되기 때문에 강제저축의 기능을 담당해왔다”고 설명했다.
한상삼 주거문화연구소 소장은 “자가소유는 삶의 안정과 직결되기 때문에 보편적 욕구”라며 “일찌감치 내집마련의 기회를 박탈당한 젊은층은 무기력과 패배주의에 빠지기 쉽다”고 말했다.
강남 3구에서 시작된 반전세ㆍ월세가 경기 남부를 관통한후, 서울 강북으로 빠르게 북상하고 있다. 집값안정과 저금리로 인해 ‘완전 전세’ 가 3~4년내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전세대책이 아니라 월세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촉구했다. 박현구 기자/ phko@heraldcorp.com |
임대인의 입장은 정반대다. 월세로 생활비를 충당하는 박모씨(49)는 “향후 집값이 오를 가능성도 높지 않은데, 낮은 금리 속에 전세 보증금을 받아 아파트의 감가상각비용, 매년 지출하는 재산세 등 보유세, 노후화에 따른 수리 비용 등을 집 주인이 일방적으로 부담하면 그게 자원봉사와 무엇이 다르냐”고 반문한다. 세입자가 집주인에 대해 갖는 심리적 불평등이 전통적으로 뿌리깊고, ‘월세시대’에 대한 준비는 없지만 강남ㆍ서초ㆍ송파 등 강남 3구에서 확산되고 있는 반전세ㆍ월세는 경기 남부를 평정하고, 한강을 넘어 강북으로 빠르게 북상하고 있다.
임대차시장의 지각변동은 서막에 불과하다. 서정렬 영산대 교수(부동산금융학과)는 “노후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다주택자 중 상당수를 차지하는 베이비부머 세대가 퇴직하면서 월세시장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 세계적으로 한국에만 유일하게 존재하는 ‘완전 전세’ 형태는 향후 2~3년내 사라질 것이라는 의견도 많다.
선진국에 진입할수록 저금리 기조가 유지되고,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줄어든 탓이다. 특히 수도권 내 월세전환율(보증금을 월세로 바꿔내는 비율)은 6~12%대로 3%후반~4%초반인 시중은행의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보다 배 가까이 높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을 주문한다. 30~40대가 소득의 상당부분을 주거비로 할당하면 가처분 소득의 감소→소비감소→장기불황의 늪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사회학과)는 “경제와 사회의 질적 향상을 위해서라도 임차인들이 수긍할 수 있는 적정한 월세률 등 임대 보호 제도의 강화를 골자로 하는 해법이 시급하다”고 고 조언했다.
현행 연소득 3000만원 이하에게만 적용되는 월세 세액공제는 물론, 임대주택 제도를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정순식ㆍ김민현 기자/ su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