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빨 같이 솟은 산봉우리 무딘 창 끝 같고/늙은 소나무와 등나무는 바람서리 이겨내고/아득히 나부끼는 깃발마다 절들이 널려있고/천둥치면 번개는 푸른 하늘을 가리네’
매월당 김시습이 노래한 도봉산은 세상을 등지고 방랑을 시작한 그의 인생이 시작된 곳인 만큼 바라보는 풍경도 예사롭지 않다. 예나 지금이나 많은 이들이 즐겨찾는 도봉산과 큰 품에선 하나인 북한산을 노래한 시들은 옛 선비들의 유람등산기뿐만 아니라 현대 문인들에게서도 적지 않게 발견된다. 40년 도봉산길을 밟아온 전직 언론인 표재두 씨가 펴낸 ‘도봉만필’(한솜)은 오랜 세월 벗하며 오르내린 도봉산과의 대화이자 역사 이야기다.
산을 오르며 느끼는 고요한 깨달음과 세상사를 바라보는 시선, 자연과 산이 주는 맛과 멋을 담아내는 데 그치지 않고 단단한 흙길과 향내나는 오솔길, 파삭한 길들 위에 흩어진 역사의 흔적들을 찾아내 정성스레 보듬는 발굴자의 깊고 따뜻한 손길이 느껴진다. 조선시대 묘에선 찾아보기 힘든 노비 금동의 묘와 세종의 증손자 강녕군과의 연, 연산군묘를 비롯한 왕실의 수다한 묘들이 자리한 사연들은 600년을 넘나드는 시간여행으로 이끈다.
도봉산의 사계는 저자의 시흥과 어우러져 우리의 눈과 귀를 맑고 환하게 열어주며 산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과 끈끈한 직장 산악회에 얽힌 일화 등은 정겹다.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묘미는 글쓰기에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흐름이 끊김이 없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방식의 끝없이 이어지는 이야기는 무엇보다 편하다.
도봉만필 ┃ 표재두 ┃ 한솜
이윤미 기자/ 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