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전대통령 1971년 설립 주도
IBRD 등 국제기구와 공동연구
세계 75대 선도 연구기관 명성
정부정책 설계 핵심브레인 역할
지난달 미 펜실베이니아대학의 ‘싱크탱크와 시민사회 프로그램’은 세계 75대 선도적 싱크탱크(연구기관) 가운데 하나로 한국개발연구원(KDI)을 선정했다. 특히 경제분야 연구에서는 중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기관들을 제치고 아시아지역 1200개 싱크탱크 가운데 1위에 올랐다.
KDI가 11일로 개원 40주년을 맞는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전문 연구기관을 세워 경제개발에 이바지하자”는 박정희 대통령의 의지로, 나라 살림살이가 넉넉지 않던 1971년에 서울 동대문구 홍릉에 KDI가 섰다. 미국 국제개발처(USAID) 지원금 13억원에 박 대통령의 사재 100만원이 보태졌다.
출범 초기에는 전문인력이 부족해 초대 원장인 김만제 전 부총리가 미국 주요 대학의 한국 학생들을 찾아다니며 설득해 연구원을 모집하기도 했다. 서울대 교수의 월급 세 배를 주는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사공일 한국무역협회장, 송병락 서울대 명예교수, 홍원탁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등이 그때 KDI의 맴버가 됐다.
경제 싱크 탱크로 한국 경제개발의 산실 역할을 40년 이어온 KDI가 11일로 개원 40주년을 맞는다. 하지만 최근 들어 민간경제연구소들과 경쟁하며 늘어나는 인력 이탈로 고민도 깊다. |
설립 직후에, 미 하버드대 부설 국제개발연구소와 공동으로 해방 이후 70년대 중반까지 한국 경제와 사회 발전을 연구한 ‘한국 경제·사회의 근대화과정 연구’ 총서를 발간하며 한국 경제 연구의 기틀을 쌓았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수립에도 참여했고, 당시 경제기획원이 주관한 3개년 연동계획과 경제운영계획의 작성에도 KDI의 ‘머리’가 동원됐다.
1980년대 들어서는 KDI의 행보는 더욱 넓어진다. 1986년 공정거래법 개정 시에는 관련 연구로 경제력 집중 억제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데 기초가 됐고, 국민연금제도 도입의 기초를 마련하기도 했다. 북한 연구를 본격화해 경제협력의 토대를 마련하기도 했다.
21세기 들어 KDI는 해외로 시선을 넓히고 있다. 세계은행(IBRD),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와의 공동 연구를 강화했다. 최근에는 30여개 개발도상국에 한국의 경제발전 경험을 전수하는 첨병 역할을 맡고 있다.
정ㆍ관계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해왔다. 정책의 밑그림을 그리고 조언하는 역할을 하면서 KDI 인사들이 자연스레 관으로 자리를 옮기는 일들이 많았다.
KDI 설립 이듬해인 1972년 7월 본관건물 개관식에서 박정희 대통령과 참석자들이 테이프 커팅을 하고 있다. |
정치권에서는 민주당 강봉균 의원이 제10대 KDI 원장을 지냈고, 한나라당 유승민, 이혜훈, 신지호, 유일호 의원 등이 KDI 출신이다.
KDI는 최근 들어 새로운 도전을 맞고 있다. ‘한국과 아시아를 대표하는 연구기관’이라는 명성과 함께 조직의 규모가 커지고 연구활동의 폭이 세계로 확장됐지만 ‘정부 현안에만 매몰되어 있는 것’ 아니냐는 연구기관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도 늘어난 상황이다.
최근 들어 늘어나고 있는 인력 이탈도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다른 국책, 민간연구기관들과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KDI를 떠나는 박사들의 숫자가 늘고 있다. 특히 2013년 세종시로의 이전이 결정되면서 연구인력이 상대적으로 처우가 좋은 기업이나 민간연구기관으로 자리를 옮기는 경우가 늘고 있다. 올해에만 5명의 연구위원들이 KDI를 떠났다.
홍승완 기자/swa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