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다인 17명의 회장이 모인 10일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 회의. 모처럼 참석한 이건희 삼성 회장이 재계 맏형으로서 정부를 향해 “노(No)”라는 표현을 대신했고, 첫 회의를 주재하고 나온 제33대 전경련 회장인 허창수 GS 회장의 발걸음은 한결 가벼웠다.
스포트라이트는 온통 이 회장과 허 회장에게 쏟아졌지만, 정작 이 날의 호스트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었다. 정 회장의 호스트다운 배려는 은연 중에 곳곳에서 드러났다.
이 날 회의는 몇년 만에 한남동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열려 장소 선정 배경부터 관심을 끌었다. 그동안 전경련 회의는 주로 롯데호텔에서 열렸다. 2009년 11월 정 회장이 호스트를 맡았을 때도 롯데호텔에서 열렸다.
전경련 관계자는 “정몽구 회장의 지시로 일주일 전에 하얏트로 잡은 것으로 안다”며 “여기서 현대차가 행사를 많이한다더라”고 했다.
하얏트 호텔은 이건희 회장 자택과 걸어서 5분 거리다. 이를 두고 정 회장이 이 회장이 쉽게 올 수 있도록 배려한 것 아니겠냐는 평이 나왔다.
정 회장은 이 날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정주영 명예회장 10주기 추모 사진전 개막식에 참석한 뒤 회의 시작 시간보다 40분즘 늦은 5시40분께 도착했다. 그는 회의장에 바로 들어가지 않고 김황식 국무총리가 도착한 6시25분까지 옆방에서 차를 마시며 기다렸다. 이 회장 역시 회의장 옆방에서 티타임을 갖고 김 총리 도착 뒤에 합류했다.
결과적으로 허 회장이 첫 회의를 부담없이 주재할 수 있도록 이 회장과 정 회장이 한 발 빠져 준 모양새가 됐다.
이 날 만찬은 시종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모듬냉채, 상어지느러미재비집 찜, 해삼전복 송이버섯, 불도장, 바다가재 마늘소스 찜, 활어찜 간장소스, 쇠고기볶음밥(자장면), 계절과일, 중국차로 이어진 1인분에 22만원 짜리 중국 정찬이 나왔고, 이 회장 등이 양껏 즐겼다는 후문이다.
건배주로 쓰인 화이트와인 외에도 식탁에는 호주산 레드와인 토브렉 런리그 2005년산이 나왔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은 와인 맛이 좋다고 따로 가격을 묻기까지 했다. 테이블에는 50만원 상당의 플라워 데코레이션이 놓여 재계 총수들의 만남에 조화로움을 더했다.
회의가 끝난 뒤 허 회장은 회의 분위기가 어땠냐는 질문에 “좋았어요”라고 밝게 답했다. 이 회장은 빙그레 미소 띤 표정으로 정문을 나섰다. 정 회장은 김 총리가 탄 차량을 배웅할 때 고개를 깊이 숙이며 호스트로서의 자세를 잃지 않았다.
<한지숙 기자 @hemhaw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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