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정책 파장은
수입물가 상승 등 변수“경제에 부담 안되게 추진”
김중수 한은 총재 밝혀
이제 분위기는 ‘물가 목표 4%는 달성하기 어렵다’는 쪽이다. 정부나 한국은행이나 에둘러 말하지만 좀 세게 표현하자면 ‘포기’다. 기획재정부의 고위 관계자도 “이렇게 환율이 오르는데 물가대책회의를 한다는 게 참 고통스럽다”고 말한다. 사실 환율이 하루에 30원 가까이 치솟는 상황에서 물가대책회의는 무의미하다.
정부는 23일 오전 정부과천청사에서 신제윤 재정부 제1차관 주재로 물가관계 차관회의를 했다. 물가 대응을 위해 정부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물가 상승에 큰 영향을 미치는 품목들의 수급 상황을 점검하는 정도다.
무엇보다 수입물가 걱정이 크다. 돈(원화)의 가치가 떨어진 만큼 오르게 돼 있기 때문이다. 수입물가는 일정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올 들어 우리나라의 수입물가 상승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정부는 이달부터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대로 떨어질 걸로 기대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가 35개월 만에 최고치인 5.3%나 오른 것은 기상 악화 등 계절적 요인 때문이었고, 이달부터는 농산물 가격이 안정을 찾으면서 물가도 진정 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금융 시장을 패닉 상태로 몰아넣고 있는 최근의 ‘환율 쇼크’는 정부의 이런 기대를 한 방에 날려버렸다.
물가 불안심리를 차단하려면 기준금리를 올려야 한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기준금리 인상은 한국 경제 전체를 건 모험이라는 게 한은 김중수 총재의 생각이다.
김 총재는 이날 국제통화기금(IMF)ㆍ세계은행(WB) 연차총회 참석차 미국 워싱턴을 방문한 자리에서 ‘경제에 무리를 주면서까지 물가 상승률 목표치를 달성하지는 않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금융 시장 불안이 실물경제 침체로 이미 전이된 상황에서 기준금리를 올리면 경제 주체들의 투자심리가 망가져 경기 위축을 더욱 가속화할 우려가 있다는 판단이다. 일종의 ‘자살행위’라는 것이다.
그는 지난 22일 워싱턴 소재 한미경제연구소와 한국경제연구회가 공동으로 개최한 포럼에서 “우리나라 수출은 선진국에 대한 직ㆍ간접적인 의존도가 높다”며 “글로벌 금융 불안과 선진국의 성장세 둔화가 지속될 경우 우리나라의 성장률도 상당 폭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 총재는 지난 8일 기준금리 동결 결정을 내린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올해 물가 목표치 4%를 달성하기가 어려워졌다”고 인정했다. 금융 시장 불안이 계속돼 원화 값이 더 떨어진다면 물가 잡기를 위해 정부와 한은이 내놓을 수 있는 정책 대응 수단은 없으며, 있다 해도 무용지물이다. 정부와 한은이 사실상 물가를 포기했다는 얘기가 시장에서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신창훈 기자/chunsim@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