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뜨거운 감자 분석해보니…
투자자 이익 침해땐해당국가에 제소 가능
유통법·상생법 저촉 우려
민주 “폐기 재협상해야”
노무현정부때 체결한 조항
81개 협정도 조항에 포함
한나라 “재재협상 불가”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 처리를 위한 여야 간 마지막 끝장토론도 무산됐다.
여야 간 물리적 충돌이 불가피해 보인다. 쟁점은 느닷없이 떠오른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ㆍInvestor-State Dispute)’다.
민주당은 ISD 폐기를 비준안 처리의 핵심 전제조건으로 제시했다.
ISD가 뭐기에 한 쪽은 지키려 하고, 다른 한 쪽은 없애려 하는 걸까.
한ㆍ미 FTA 국회 비준을 둘러싸고 전운이 감돌고 있는 가운데,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3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부여당이 ISD 등 핵심과제를 회피한 채 오직 G20 참석하는 대통령 체면만 생각한다”면서 “충분히 검토해서 내년 총선에 FTA 문제를 내걸고 국민의 뜻을 묻겠다” 고 이번 국회 처리 반대를 분명히 했다. 양동출 기자/dcyang@heraldcorp.com |
▶ISD가 뭐기에…=ISD는 기업이 상대방 국가의 정책 때문에 이익을 침해당했을 때 세계은행 산하 국제상사분쟁재판소(ICSID)에 해당국을 제소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ICSID 중재부(3명)는 한ㆍ미 양국이 1명씩 추천하고 나머지 1명은 협의를 거쳐 선정하되,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ICSID 사무총장이 추천토록 돼 있다.
민주당은 중재부의 구성요건이 세계은행 총재를 많이 배출한 미국에 유리해 미국 투자자가 한국 정부의 중소기업ㆍ소상공인 보호 조치 등을 문제 삼아 소송을 제기하면 우리나라의 공공정책이 무력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가령 골목상권 보호를 위한 유통법ㆍ상생법이나 최근 발의된 ‘중소상인적합업종보호특별법’ 등이 ISD에 적용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와 한나라당은 ISD는 원래 노무현 정부 때 체결된 한ㆍ미 FTA 원안에 들어 있고 다른 나라와 체결한 FTA에서도 포함된 일반적인 조항으로, 지금까지 관련 소송이 제기된 적이 없는 만큼 민주당의 주장은 기우라고 반박하고 있다.
문제는 ISD를 폐기하려면 미국과 협상을 다시해야 한다는 점이다.
한나라당은 “미 의회가 비준안을 통과시킨 만큼 재재협상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인 반면, 민주당은 “미국도 재협상을 요구했는데 우리라고 못할 이유가 없다”며 맞서고 있다.
▶2007년 협정 때 그냥 넘어갔던 민주당, 이번에는 왜…=민주당은 왜 참여정부 때 체결한 FTA 협정문에도 있던 ISD 조항을 지금에야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것일까.
민주당 김진표 원내대표는 지난 30일 기자간담회에서 “그때(2007년)는 자동차와 자동차부품 분야에서 미국으로부터 많은 양보를 얻어내는 대가로 ISD를 양보한 것”이라면서 “이명박 정부 들어와 (미국과) 재협상을 해서 자동차 분야에서 우리가 확보했던 이익을 양보해버렸다. 그렇다면 당연히 경제에 해가 될 우려가 큰 것부터 되찾아와야 한다”며 ISD 폐기를 주장했다.
민주당은 또 2006년 법무부가 정부의 공식 입장과 달리 ISD를 ‘사법주권 침해’라고 판단, 외교통상부에 삭제를 요청한 사실도 공개했다.
당시 법무부는 “기존에 체결한 협정의 상대국은 개발도상국이거나 제소 가능성이 낮은 국가였던 반면, 미국과 협정 체결 시에는 현실적으로 소송이 빈발할 것으로 예상되고 투자 분쟁 범위도 광범위하다”고 지적했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ISD가 전 세계 2500여개의 투자협정(BIT)에 대부분 포함돼 있는 글로벌 스탠더드이며, 우리나라가 체결한 85개 BIT 중 81개에도 ISD 조항이 포함돼 있다고 강조한다.
또 2006년 이후 한국의 대미 투자(203억달러)가 미국의 대한국 투자(88억달러)에 비해 크기 때문에 미국에 투자한 우리 투자자를 위해 더 필요한 조항이라는 점을 들어 민주당을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특히 지금까지 미국 투자자가 상대국 정부를 제소한 108건 중 패소는 22건이고 승소는 15건이어서 오히려 패소율이 높다는 것이다.
ISD를 둘러싼 여야 간 이견은 좁혀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29일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 김황식 국무총리, 임태희 대통령실장 등 당정청 고위인사 9명이 모인 자리에서 정부 측은 홍 대표에게 “한ㆍ미 FTA의 내년 1월 1일 시행에 차질이 없도록 31일까지 비준안을 처리해달라”고 요청했다. 결국 강행처리 외 대안이 없다는 얘기다.
신창훈 기자 /chunsim@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