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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리스 삼킨 고객정치…한국은?
과잉복지 주고 票 구걸

수십년간 관행처럼 고착화

국민들은 심각성 불감증


한국도 장밋빛 복지소모전

내년 총선·대선 앞두고 경종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그리스 총리의 국민투표 번복 소동 이후, 그리스 재정위기를 바라보는 세계의 다양한 시선들이 하나로 고정됐다.

무기력한 경제 펀더멘털도 문제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질병은 집권욕에 사로잡혀 기형적 복지 과잉을 부채질한 정치 시스템이라는 지적이 그것이다. ▶관련기사 3면

파판드레우 총리는 패배가 자명한 조기 총선을 회피하기 위해 디폴트(채무 불이행)의 벼랑 끝 위기에 선 나라 경제를 국민투표라는 러시안 룰렛에 몰아넣더니, 국내외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뚜렷한 명분도 없이 국민투표를 불쑥 철회했다.

아테네 하로코피오 대학의 정치학 교수인 토마스 말루타스는 3일 언론 인터뷰에서 “그리스의 위기는 경제위기와 정치위기가 결합한 것이며, 이는 수십년 동안 지속해온 ‘고객정치(peladiaki-gatastasi)’ 때문”이라고 통탄했다.

고객정치는 정치인이 유권자들에게 뭔가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표를 얻는 극단적 포퓰리즘의 한 형태로, 그리스에서 오래전부터 통용돼온 개념이라고 한다.

이런 정치도 있냐 싶겠지만 강 건너 불이 아니다. 불과 열흘 전에 치러진 10ㆍ26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무상급식을 둘러싼 여야 정치권의 복지 소모전이 없었다면 애초부터 탄생하지 않았을 잉여의 산물이다.

올 상반기 이후 물가는 치솟고 수출 길은 좁아들면서 한국 경제에 빨간불이 켜졌지만 정치권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여야의 관심은 오로지 내년 총선과 대선의 표심 선점이었고, 이들이 택한 수단은 유권자들에게 막대사탕을 쥐어주는 복지확대 공약들이었다.

정부 관계자는 “OECD 회원국들에 비해 우리나라의 복지 여건이 취약하다는 점을 십분 감안하더라도 정치권이 ‘묻지마 재원’ ‘미래 세대 떠넘기기’ 등을 남발하는 것은 한국판 고객정치에 다름 아니다”고 지적했다.

기획재정부는 3일 발표한 ‘2011년 거시경제안정보고서’에서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연구 결과를 인용, 현재의 조세부담률과 복지제도를 그대로 유지한다고 해도 미래 세대의 재정부담이 현재 세대의 2.4배 수준에 달한다고 밝혔다.

상황이 이런데도 기성 정치권은 내년 총ㆍ대선을 겨냥한 ‘한국판 고객정치’의 페달에 더욱 가속도를 내고 있다.

실제로 국가적 현안인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작업에 다걸기해도 모자랄 판에 여의도 국회는 지금 복지정책 토론회로 열병을 앓고 있다. 내년 선거정국을 앞두고 복지확대에 대한 국민적 기대감을 벌써부터 잔뜩 부풀리고 있는 것이다.

지난 1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복지 세미나를 시작으로 4일 오전 10시에는 ‘한국 보육의 미래’라는 주제로 한나라당이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오후에는 민주당이 복지 바통을 이어받아 ‘공보육 실천 주체, 정부 지원 어린이집의 역량강화 방안 모색 토론회’를 연다.

고영선 KDI 연구본부장은 “복지정책 확대 그 자체보다는 일반 국민의 삶이 윤택해지는 것이 중요하다. 예컨대 대학 등록금을 반으로 깎아주더라도 대졸자들의 취업난 해소에는 별 도움을 주지 못한다”면서 “어렵지만 올바른 해결책을 선택할 것인지, 쉽지만 국민부담만 증가시킬 해결책을 선택할지는 정치문화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양춘병ㆍ양대근 기자/y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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