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사회에 대한 정교한 고민과 성찰, 통큰 양보, 참신한 발상, 살가운 감성언어, 노블리스 오블리제….
지난 9월 혜성처럼 정치권에 등장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기성정치인과는 전혀 다른 ‘남다른’ 행보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10ㆍ26 재보선 이후 한동안 교수 역할에 충실했던 안 원장은 14일 사재 1500억원을 전격 사회환원한다고 밝히면서 또 한번 대중여론의 중심에 섰다.
여야를 막론하고 신당설이 난무하고 안철수 신당이 뜰 것이란 관측이 파다한 상황이었지만, 안 원장은 이번에도 “다른 목적은 없다”며 선을 그었다.
안 원장은 사회 환원의 변을 편지(이메일)로 썼고, 거기에는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가치와 실천의 덕목이 조목조목 적혀 있었다. 강권하거나 실언하거나 지시하지 않는 대신 공감하고 수평소통하는 방식이다.
안 원장은 15일 오전 사재 1500억원 사회환원에 대한 입장을 들으려 몰려든 기자들 앞에서도 목소리를 최대한 낮췄다.
여러 질문들을 물리친 그는 “단지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던 일을 실행에 옮긴 것 뿐”이라며 선동의 언사대신 공감의 메시지를 던졌다.
‘비정치를 통해 정치를 말하는’ 특유의 화법은 그가 여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지난 10ㆍ26 이후 일관되게 유지해 온 방식이기도 하다. 안철수식 소통법은 편지라는 소통 방식도 그렇지만, 구사하는 언어 또한 기존 정치인들과 천양지차다. 그는 그동안 우리 사회의 리더들이 쏟아내던 판에 박힌 언어와 동떨어진 살갑고도 감성적인 언어를 구사한다. 이번에 쓴 편지에도 희망, 은혜, 영혼, 자아실현, 꿈, 덕목, 나눔 등 읽는 이들의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만드는 ‘감성 언어’로 가득했다. “언젠가는 같이 없어질 동시대 사람들과 좀 더 의미 있고 건강한 가치를 지켜가면서 살아가다가 ‘별 너머의 먼지’로 돌아가는 것이 인간의 삶이라 생각한다”는 그의 메시지는 그 어떤 설득의 언어보다 강렬했다.
10ㆍ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그는 스스로를 정치 지망생이 아닌 행정을 꿈꾸는 사람으로 규정했다. 정치에는 관심이 없다고 했다. 실제로 안 원장은 박원순 변호사의 출마 의지를 확인하고는 자신에게 쏟아진 50%의 지지율을 박 변호사에게 아낌없이 던졌다.
기성 선거판에서 볼 수없는 ‘대가없는 양보’ 는 오히려 정치 불신의 다수 여론을 안풍(安風)으로 끌어안는 힘이 됐다.
선거판세가 박빙으로 흐르던 지난 달 24일. 선거 사무실을 직접 찾은 안 원장은 박 변호사에게 조용히 편지 하나를 건넸다. 그는 박 후보를 지지해달라고 강권하는 대신 흑인 인권운동의 상징인 로자 파크스를 인용, 행동과 참여의 중요성을 공감의 방식으로 환기시켰다.
안 원장의 신선한 행보와 소통 방식은 일거수일투족을 선거 공학적으로 바라보는 기성 정치권의 해석자체를 무용지물로 만들고 있다.
그를 잘 아는 정부 관계자는 “(기성 정치권에서) 누구도 생각하지 않는 방식으로 소통하고 공감하기 때문에 기성 정치에 염증을 느낀 여론이 더 큰 관심과 기대를 갖는 것 같다”고 했다.
이와 관련, 정가에서는 현실 정치로 들어오면 거품이 드러날 것이라는 지적과 함께 정치 10단의 ‘감’을 지닌 새로운 정치상을 보여주고 있다는 여전히 평가가 엇갈린다.
<양춘병 기자@madamr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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