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질임금은 3.5% 줄었는데
돈 들어가는 건 죄다 올라
56%“ 식비가 가장 부담”
세계 8대 교역대국의 오명
“내년 살림살이 더 악화”
3년만에 부정적 전망 우세
올해 대한민국 서민 가계는 그야말로 사면초가였다. 실질임금이 지난해보다 무려 3.49%나 줄었기 때문이다. 먹거리 가격부터 공공서비스 요금까지 전방위적으로 물가가 오르면서 가계 살림은 여느 때보다 쪼그라들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를 넘는 고공행진을 기록했음을 감안하면 월급은 제자리걸음을 한 반면 돈 들어갈 부분은 모두 오른 셈이다. 올 한 해 지속된 물가불안이 가계에 미친 고통은 한국소비자원이 내놓은 ‘국민 소비의식 조사 결과’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국민소득 2만달러가 넘고 무역 1조달러를 달성한 세계 8대 교역대국인 나라, G20 멤버인 나라에서 당장 하루하루 먹는 게 부담인 ‘후진국’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소비자원에 따르면 우리 가계의 56%는 12개 지출 분야 가운데 ‘식생활비 부담’이 가장 크다고 대답했다. 대한민국호의 고질병인 교육비(43.4%)나 턱없이 비싼 집값으로 인한 ‘대출이자비용’(24.0%)보다도 훨씬 더 높은 수치다.
1년 전과 비교해 살림살이가 나아졌다고 느낀다는 응답자는 실제로 13.5%에 불과했고, 가계부채가 늘었다는 응답자는 34.0%였다.
우리나라의 실업률이 고용현황을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함을 감안하면 물가상승과 실질임금 하락으로 인한 실제 가계고통지수는 수치로 드러난 7.5보다 높을 수 있다.
올해 실업률인 3.5%는 세계경제가 활황이던 2006~2007년 수준이다. 은퇴 후 생계를 위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창업을 한 50대 이상 자영업자가 늘어난 탓에 수치가 좋았을 뿐이다. 지난 10월 50대 고용률은 72.9%로 2000년 63.5%보다 9.4%포인트 늘었다. 같은 기간 15세 이상 연령층의 고용률이 56.2%에서 59.9%로 3.7%포인트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두 배가 넘는 수치다. 한창 사회활동을 시작해야 할 청년들의 체감실업률은 20%를 넘는다.
LG경제연구원 이근태 연구위원은 “물가상승률이 높았는데 임금증가율은 미미했다. 50대 이상 자영업자가 많이 늘어나 경제 사정이 안 좋으면 가계 운영에 큰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내년도 상황도 과히 좋지 않다. 국제유가가 비교적 하향안정화 양상을 보이고 농산물 가격 하락으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올해보다 둔화할 것으로 보이나, 이미 허리띠를 바짝 졸라맨 가계의 숨통이 트이게 하기에는 역부족일 것으로 보인다.
최근 한국갤럽이 국내 만 19세 이상 남녀 1624명으로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 결과에선 내년 살림살이가 더 나빠질 것이라는 응답(28%)이 좋아질 것이라는 응답(18%)보다 훨씬 우세했다. 부정적인 전망이 좋아질 것이라는 긍정적인 전망을 앞지른 것은 같은 조사에서 3년 만에 처음이다.
한은의 소비자동향조사(CSI)에서도 가계수입전망CSI가 전월보다 3포인트 떨어진 95를 기록했다. 6개월 내 수입이 늘어날 것이라고 한 소비자가 줄어든 것이다.
내수 활성화를 통해 글로벌 경제위기를 돌파하겠다는 정부 입장에서는 반드시 들여다봐야 할 대목이다.
<홍승완 기자> / swa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