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 삼성정밀화학 등 13개 화학비료업체가 농협중앙회 비료입찰에서 가격을 밀약한 사실이 들통났다. 농부들 주머니에서 쌈짓돈을 챙긴 대가로 과징금만 828억2300만원을 물게 됐다.
하지만 이들 업체는 16년간 약 1조6000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것으로 추정돼고 있어 이에 비하면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지적도 일고있다.
국내 화학비료 시장은 1조1천536억원 규모. 남해화학(점유율 42.4%), 동부(19.9%), 풍농(10.9%) 등 상위 7개 업체의 시장점유율이 90% 이상인 점을 고려하면 업계 전체가 밀약에 가담한 셈이다. 피해는 농민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됐다.
2010년 6월 공정위 조사가 시작된 이듬해 농협중앙회의 맞춤형 화학비료입찰에서 낙찰가는 전년보다 21%나 낮아졌다. 농민의 화학비료 부담액은 1022억원 감소한 것이다. 비료업계가 16년 동안 1조6000억원 가량 부당이득을 챙긴 것으로 추산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15일 “1995년부터 2010년까지 농협중앙회와 엽연초생산협동조합중앙회가 발주한 화학비료 입찰에서 사전에 물량과 투찰가격을 짠 13개사에 담합금지명령과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과징금은 업계 1위인 남해화학이 502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삼성정밀화학(48억원), 케이지케미칼(42억원), 풍농(36억원), 조비(18억원), 동부(17억원), 협화(10억원) 순이다.
이렇게 고구마줄기 캐듯 업체들 전체가 단속에 적발된 데는 공정위 현장조사가 시작되자 업체 중 한 곳이 자진신고자 감면(리니언시)를 신청했기 때문이다. 이 업체는 과징금을 최대 100% 면제받게 된다.
이들은 매년 농협중앙회의 화학비료 희망수량 경쟁입찰 또는 연간단가구입찰(최저가 낙찰후 나머지 업체는 같은 금액으로 지역조합에 납품토록 하는 방식)에서 품목별 낙찰물량을 배분해 투찰가격을 미리 짰다.
희망수량 경쟁입찰은 예정가격을 벗어나지 않는 단가의 입찰자 가운데 최저가격입찰자부터 차례로 수요물량에 도달할 때까지의 입찰을 낙찰자로 정하는 방식이다.
2004년 21-17-17비료군의 경우 남해, 동부는 합의물량 44만톤을 남해가 66%, 동부가 34% 나누기로 합의하고 투찰가격을 짰다.
연초조합이 발주한 최저가 낙찰방식의 연초비료 입찰에서는 동부를 낙찰자로 정한 다음 물량을 점유율에 따라 배분하고 동부에 주문자생산방식(OEM)으로 납품하는 수법을 썼다.
남해, 동부는 16년간 21-17-17비료의 입찰을 독점했고 요소비료는 삼성정밀화학까지 가세해 15년간 가격과 물량을 담합했다.
13개 업체는 이런 짬짜미를 통해 농협과 연초조합이 정한 최고가격의 99%에 맞춰 낙찰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공정위는 “이번 조치로 화학비료 시장의 밀약 관행이 풀려 실질적인 가격경쟁이활성화되기 바란다. 농민의 비료가격 부담이 낮아지고 업계의 경쟁력이 강화돼야 한국의 농업경쟁력이 되살아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윤정식 기자@happys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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