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금리 8개월째 동결 성장둔화 경제 발목 우려…조직 새바람 긍정적 평가도 빛 바래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금리의 덫’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은 수장으로서 그의 행보는 안팎의 인정을 받는 편이다. 지방인재 등용과 순혈주의 타파 등으로 조직에 새바람을 불어넣었고 수요와 공급 그래프의 균형에 환호하는 공허한 경제학자 집단이란 비난도 수그러들었다. 그는 요지부동 한은조직을 1도 틀어놨다고 평가받는다. 하지만 김 총재의 업적은 금리 앞에서 빛을 잃는다. 통화정책 방향을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가 열리는 날이면 김 총재는 왜소해 보인다.
성장과 안정 사이에서 기준금리 인상에 소극적이란 얘기를 들은 지 오래다. 김 총재는 금리 정상화(인상)를 외친다. 하지만 이 외침은 8개월째 공허한 메아리로 되돌아오고 있다. 요즘 금통위 회의는 과거보다 빨리 끝난다. 금리조정 여지가 줄어들어 논쟁이 벌어질 까닭이 없으니 이런 상황을 이해못할 것도 아니다. 지난 9일도 만장일치였다.
그렇다면 누가 이렇게 만들었을까. 사실 금리 정상화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지난해 물가가 치솟을 때 한은은 기준금리에 손대지 않았다. 시장은 금리인상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한은은 동결을 선택했다. 성장둔화가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는 김 총재의 머리에서 떠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한은은 정상화의 기회를 스스로 놓쳤다. 금리정책을 펼 공간은 더욱 좁아졌다.
한은의 독립성은 통화정책으로 나타난다. 올려도 욕먹고 내려도 욕먹는 게 금리다. 김 총재는 동결도 중요한 정책수단이란 입장이다. 그러나 이제 올리지도 못하고 내리지도 못하는 상황이 돼 버렸다. 모든 게 더욱 더 불확실해졌다.
여기에다 금통위원 1명의 공석은 벌써 2년이 다 돼 간다. 김 총재는 “금통위원 임명은 대통령의 권한”이라고 항변한다. 하지만 그런 항변이 금통위 의장의 역할을 자유롭게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빈방을 그저 바라본 결과로, 오는 4월 금통위원 7명 중 5명이 한꺼번에 교체되는 사태를 초래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통화정책의 연속성에 공백은 불가피해졌다. 금통위원 연임설이 솔솔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시장은 이제 ‘연내 기준금리 동결’이란 분석까지 내놓는다. 현 경제상황대로라면 김 총재도 현 스탠스를 유지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4월 총선이 끝나면 대선정국으로 접어든다. 정치권 입김이 더욱 강해질 때다.
조동석 기자/dscho@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