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가 정치권의 복지공약에 대해 ‘대차대조표’까지 들고 나온 데에는 “선심성 공약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이르렀다”는 심각한 위기감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재정건전성이 정책 최우선 목표인 상황에서, 여야가 한목소리로 쏟아내는 복지 공약이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다. .
17일 기준으로 양당이 내세운 복지공약만, 새누리당(‘5+5 공약’) 35개, 민주통합당(‘3+3 공약’) 30개에 달한다.
재정부가 당별 중복공약을 감안해 들어갈 돈을 추산해본 결과 순수한 복지공약에만 적어도 연간 43조원에서 많게는 67조원의 ‘추가’ 재정이 필요하다. 5년기준으로 추산해보면 220조원에서 340조원에 달한다.
유력하게 거론되는 공약들의 상당수는 연간 조단위 이상의 추가 재정이 필요하다. 예컨데 ‘기초수급 부양의무자 기준의 단계적 폐지안’은 4조원이 넘게 들어가고 ‘소득하위 70% 이하에 대한 반값등록금 지원안’도 2조원, 사병 봉급 인상도 1조6000억원이 들어간다.
올해 국가 예산은 지난해 대비 16조원이 늘어났다. 이 가운데 복지지출이 늘어난 것이 6조2000억원이다. 현재 정치권이 요구하고 있는 것은 올해 증가액의 7~11배나 된다.
정치권이 우리의 재정상황이나, 재원마련 대책, 실천가능성, 지속가능성에 대한 검토없이 안만 쏟아낸다는게 정부의 입장이다.
우리나라의 복지 수준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이고, 성장 일변도의 정책으로 경제 규모에 비해 복지정책이 소홀했다는 비판에는 정부도 동감한다. 하지만 하루 아침에 이를 OECD 수준으로 높이기는 어렵다.
김동연 재정부 2차관은 “대규모 복지공약의 재원을 마련하려면 증세 또는 국채발행이 불가피한데 증세는 당연히 국민들에게 조세부담으로 돌아가고, 미래세대에게 현재 세대의 부담을 전가하는 결과로 이어질 뿐”이라라고 비판했다.
이미 국내외 많은 연구가 우리나라의 장기 재정건전성의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급속한 고령화와 연금제도의 성숙, 저성장 사회의 진입 등으로 가만히 있어도 복지지출과 국가채무가 빠르게 늘 것이라는 분석이다.
조세연구원에 따르면 현행 복지제도 수준만 유지된다고 해도 국내총생산(GDP)대비 공공사회분야 복지지출은 2009년 9.6% 수준에서 2050년에는 20.8%까지 늘어난다. 국민들의 조세부담율이 현행으로 유지된다고 가정할 경우에 국가채무도 2009년 기준 33.5%에서 2050년 137.7% 수준으로 증가한다. 그대로 있다가는 유럽에서 발생하고 있는 재정위기가 불과 몇십년뒤에 우리에게도 반복될 수 있는 상황이다.
물론 정부도 정치권의 복지 요구를 모두 무시하겠다는 입장은 아니다. 정부의 복지 방향과 원칙에 맞는 정치권의 요구에 대해서는 재정부 2차관을 팀장으로 하는 TF를 통해 주기적으로 검토하고 이를 예산안이나 중기재정 계획에 포함하겠다는 계획이다. 필요한 경우에는 각부처 1급으로 구성되는 범주처 복지 TF도 수시로 운영키로 했다.
김 차관은 “‘일을 통한 탈 빈곤’, ‘근로의욕 고취를 통한 일자리 복지’, ‘보육’, ‘근로희망 사다리’ 등 정부의 복지 방향과 원칙에 맞는 정치권의 요구에 대해서는 적극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홍승완 기자/swa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