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사찰 내용을 몰랐다는 설명이 나왔다. 이번 사건과 관련돼 간접으로나마 대통령의 입장을 전한 것으로 대통령을 가장 측근에서 보좌했던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 측 설명이란 점이 눈길을 끈다.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 측 관계자는 17일 헤럴드경제와의 통화에서 “민간인 불법사찰 내용과 (임 전 실장) 재임기간과는 상관이 없다. 하지만 실장으로 부임해서 보고 받은 내용을 정확히 알고 있다. 실장 재임기간 중에 대통령에게 확인했을 때도 대통령이 몰랐다고 한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대통령이 독대를 할때는 다 기록으로 남게 돼 있다. 이영호 전 비서관이 비선으로 대통령을 독대했을 것이란 문제와 관련해 (임 전 실장이)기록 내용까지 확인했는데 독대 기록이 없다고 한다”고 덧붙였다.
임 전 실장 측 설명이 사실이라면 일단 이번 사찰 문제와 관련해 대통령의 직접적인 연관 가능성은 낮아지는 셈이다. 이는 이영호 전 고용노사비서관이 단독으로 사찰건을 진행했거나, 대통령의 최측근인 다른 핵심인사가 이 전 비서관을 통해 사찰건을 진행했을 가능성을 높인다. 박영준 전 국무차장이 유력하게 지목되는 이유다.
청와대 관계자도 사견임을 전제로 “(지원관실 관계자들은) 청와대에 보고하기 위해 작성했다고 하는데, 실제 보고된 게 아니라 중간에 누군가가 그렇게 조작을 했을 수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전 비서관이 대통령에 보고할 것도 아니면서 지원관실 실무자에게는 마치 대통령에게 보고되는 것처럼 믿게했을 가능성이다. 이 경우라면 박 전 차장과 이 전 비서관 등이 대통령에게 과잉충성하는 과정에서 사찰팀을 운용했다는 뜻이 된다.
하지만 박 전 차장과 이 전 비서관 두 과잉충성파의 사찰팀 운용이라고 단정짓기에는 아직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2010년 7월 검찰이 불법사찰 건을 수사할 때 증거인멸에 나선 주체와, 올 초 장진수 주무관에서 관봉 형태로 된 5000만원의 출처로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거론된 점이다. 즉 지원관실의 보고라인에서도 배제된 민정수석실이 굳이 사찰의혹을 덮으려 한 이유다. 증거인멸에 민정수석실이 거론되던 시기의 민정수석이 지난 해 법무부장관으로 ‘영전’된 점도 의혹을 키우고 있다. 박 전 차장과 이 전 비서관이 과연 민정수석실을 움직일 정도까지 힘이 있었느냐는 의문도 생긴다.
가능성은 여러가지다. 먼저 정말 이번 사찰에 대통령이 관련돼서 민정수석실이 증거 없애기에 나섰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사찰팀을 실제 운용한 주체가 대통령에 버금가는 권력의 실세라면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는 것을 막기 위해 민정수석실까지 움직였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특히 사찰문건에는 야권 인사들은 물론이고 여권의 일부 친이계 인사까지 포함됐다는 점도 주목할만한 부분이다.
홍길용ㆍ손미정 기자/kyho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