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맡으셔도 됩니다. 부담 갖지 마세요”
지난 4월 초 특위 구성이 한창이던 때 한통의 전화가 모 국회의원에 걸려왔다. 국회 비상설 특별위원회 위원장직을 맡을 것을 권유하는 전화였는데, 해당 의원은 ‘내용을 잘 모른다’며 고사했다. 그러나 그는 ‘부담 없다. 회의가 많지는 않다’는 얘기에 위원장 직을 수락했다. 국회가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받겠다’며 공언하고 나섰지만 유독 특위만은 예외로 남겨두고 있어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정쟁 도구’ 전락한 특위= 여야는 2013년 국회 운영과 관련, 예산재정개혁 특위, 허베이스피리트호유류피해대책 특위, 평창동계올림픽및국제경기대회지원 특위, 사법제도개혁 특위 등 모두 6개의 특위를 구성키로 합의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특위가 제대로 활동하긴 어려울 전망이다.
우선 방송공정성 특위는 여야 입장차가 워낙 크다. 방송특위는 지난 3월 정부조직개편안 처리가 난항을 겪자 새누리당이 방송 공정성 확보 차원에서 제안한 것인데, 시작부터 녹록치 않다. 지난 15일 첫 회의가 여당 의원들의 ‘회의 시간 통보가 없었다’며 회의에 전원 참석치 않아 무산됐다. 2차 회의에서도 간신히 위원장을 임명하는 데 그쳤다. ‘방송특위’는 말 그대로 ‘난국 타개용’ 특위로 전락할 형편이다.
사개특위도 여야 입장차가 크다. 핵심 의제였던 ‘검찰개혁’ 방안 때문인데 새누리당은 검찰 개혁을 사개특위에서 다뤄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민주당은 법사위 논의가 맞다는 주장을 되풀이 하고 있다. 허베리스피리트호유류피해대책 특위 역시 구체적인 결과물을 꺼내놓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올해 1월 법원의 배상 판결이 있었지만 피해 보상을 위해선 재원마련 방안까지 논의돼야 하지만, 경기 불황 등으로 인해 절충점 마련이 쉽지 않은 탓이다.
정치쇄신특위는 말그대로 ‘옥상옥’ 형편이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각각 정치쇄신 방안을 발표하면서 국회차원의 정치쇄신특위는 입지가 좁아졌다. 새누리당은 정치쇄신 안으로 ‘국민소환제’ 도입을 꺼내들었고, 민주당은 국회의원 영리업무 겸직 금지 등 자체적인 쇄신안을 마련해둔 상태다.
▲여야는 ‘특위 한통속’= 이미 수차례 ‘특위 무용론’을 겪으면서도 ‘비상설 특위’가 여전히 운영되고 있는 것은 여야 모두 ‘손해볼 것 없다’는 의원들의 인식 때문으로 풀이된다. 뭔가 하고 있다는 ‘생색내기용’, 위원장직 자리 ‘나눠먹기용’, 운영 ‘예산 따먹기용’인데 여야만 합의하면 이를 견제할 마땅한 수단이 없다는 것 역시 비상설 특위 남발의 원인으로 꼽힌다.
지난해 설립됐던 사개특위 등 8개 특위가 운영기간 동안 열었던 평균 회의 횟수는 3회에 불과했다. 회의 시간도 99분밖에 되지 않았다. 특히 남북관계 특위와 민간인불법사찰조사특위는 단 한차례만 회의가 열렸다.
그런데도 예산은 20억8175만원이 투입이 됐다. 8개 특위가 운영됐으니 개별 특위에 투입된 예산은 2억5000만원 가량이다. 위원장에게는 매달 활동비로 500~700만원 가량의 운영비가 지급이 되고, 600만원 가량의 예산은 각 위원들의 특별활동비로 제공 된다. 특히 배정된 예산은 회의가 몇번 열렸는지, 결의문 채택 등과는 관계 없이 일률적으로 지급된다.
국회 관계자는 “특위는 특별 사안이 생겼을 때 예외적으로 만드는 위원회다. 그러나 1년에 단 두세번 2시간도 안되는 회의를 열어 무엇을 논의하겠냐”며 “여야 모두 돈되고 자리도 되는 특위에 너그러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홍석희기자ho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