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홍석희ㆍ원호연 기자] “한나라당이 이렇게 하시면 안된다. 전부 로펌 로비 받아 가지고..” (박영선)
말로만 ‘전관예우 방지법(변호사법 개정안)’이 만들어지던 지난 2011년 4월 28일.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 회의에선 고성이 오갔다. 특위 위원장인 한나라당 이주영 의원은 “그런 쓸데 없는 얘기를 해서 오해를 불러일으킨다”고 맞받았고, 박 의원은 “근거가 있다. 사실이다.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회의는 정회됐고, 몇차례 진통 끝에 이 법안은 두달 뒤 누더기가 돼 통과됐다.
2014년 5월 현재 당시 특위 위원장을 맡았던 이 의원은 해양수산부 장관이 됐고, ‘로펌 로비’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던 박 의원은 새정치민주연합의 원내대표가 됐다. 안대희 전 총리 내정자에 대한 전관예우 논란이 일자, 박 원내대표가 일성으로 ‘안대희 방지법’을 내놓은 것도 이같은 연원이 있는 셈이다.
안 전 총리 내정자가 별다른 제재 없이 하루 1000만원이 넘는 돈을 긁어 담을 수 있었던 것은 있으나 마나한 전관예우 방지법 탓이 크다. 현행 변호사법은 판사와 검사직에서 물러난 뒤 퇴직하기 전 1년간 근무했던 곳에서 1년 동안 사건을 맡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안 전 총리 내정자는 대법관을 끝으로 공직에서 물러났다. 대법관은 전국이 관할지고 이는 곧 ‘관할지가 없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근무했던 곳’이란 단서 조항 탓에 안 전 총리 내정자는 아예 이 법안 적용 바깥에 서 있었던 셈이다. 다만 1년간만 쉬면 된다.
이같은 변호사법은 타 법안과의 형평성에도 어긋난다. 현행 공직자윤리법은 퇴직관료는 퇴직일부터 2년간, 퇴직 전 5년 동안 소속 부서의 업무와 관련이 있는 민간기업에 취업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퇴직 판ㆍ검사의 재취업 기간 제한인 1년보다 두 배 이상 길다. 있으나 마나한 전관예우 방지 조항이 논의되는 과정에선 엉뚱한 문제제기도 나왔다.
국회 회의록 시스템에 따르면 관련 2011년 5월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에서 당시 한나라당 박준선 의원은 개업지 제한과 관련해 “지검ㆍ지법을 이렇게 묶어 규정 하는 것은 헌법적 문제가 있다. 과도한 제한”이라했다. 당시 박 의원의 발언은 ‘판사냐, 검사냐’에 따라 서로 입장이 다를 수 있는데, 이를 한 데 묶어 법안을 만드는 것은 문제가 있다라는 지적이었다. 주성영 의원도 박 의원의 주장에 동조했다. 이에 대해 박영선 의원은 “집단적 이기주의를 대변하고 있다”고 여당 의원들을 몰아세웠다.
국회가 이처럼 허술한 전관예우 방지 조항을 만들 수밖에 없었던 데에는 국회에 율사출신 의원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다는 점과 무관치 않다. 현행 변호사법 초안이 완성된 사개특위 위원 17명 가운데 12명이 판ㆍ검사 등 율사 출신이다. 지난 18대 국회의원 299명 가운데 율사 출신은 51명이나 된다. 19대 들어선 43명이다. 전국 변호사 수를 고려했을 때 법조계가 국회에서 500배 이상 과대 대표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법안은 구멍투성이고, 대법관 출신 인사들이 퇴임후 한 해 동안 벌어들일 수 있는 돈은 수십 억원대다. 대법관 출신 현역 변호사 수는 30여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간혹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는 대법관(전수안·김영란·조무제) 얘기는 미담 기사가 된다. 미국은 판사 종신직을 유지하고 있고, 전직들은 현직 판ㆍ검사와 전화 통화조차 못하도록 금지하고 있다.
ho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