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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휴먼다큐> 멈추지 않는 청춘,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명예이사장) 통일전도사
[헤럴드경제=신대원 기자] 대한민국은 성공한 나라다. 6·25전쟁의 잿더미에서 출발해 산업화와 민주화를 달성한데 이어 세계 경제·군사강국 10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원조 수여국에서 공여국으로 탈바꿈한 세계 유일의 나라라는 별칭은 대한민국이 성공가도에서 얻은 부수적인 훈장이다.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명예이사장(65·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룩한 대한민국이 나아갈 새로운 길로 일찍이 ‘세계화’, ‘선진화’를 제시했던 인물이다. 그런 박 명예이사장이 지난해 가을 대한민국의 또 다른 국가목표로 ‘통일’이라는 화두를 던지며 ‘선진통일전략’이라는 책을 세상에 선보였다.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대박론’이나 ‘통일준비위원회’ 구상이 나오기도 전이었다.

▶“통일 안 되면 북한은 중국에 넘어가”=통일이 민족적, 역사적 과제라는 점은 누구도 부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분단 70년이 돼가면서 다소 구태의연한 얘기처럼 여겨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통일이 반드시 돼야 한다’는 답변이 25%인 반면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는 답변이 31%로 나타났던 지난해 한 여론조사 결과는 통일에 대한 우리의 인식 수준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 때문에 이번 만큼은 ‘천하의 박세일’도 잘못 짚은 것 아니냐는 세평이 뒤따르기도 했다.

하지만 박 명예이사장은 1시간 넘게 진행된 인터뷰 내내 통일의 절박성과 당위성에 대해 열변을 토해냈다.

“지금까지는 대한민국이 분단 속에서 발전해 왔지만, 이제 통일은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됐습니다. 앞으로 5년, 10년 분단이 지속되면 북한은 중국의 변방속국이 될 것입니다. 북한이 중국의 변방속국이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38선은 휴전선이 아닌 국경선이 되고 중국의 항공모함이 동해로 진출하게 됩니다. 그러면 일본은 당연히 재무장하고 중국과 일본, 중국과 미국 사이에 신냉전이 시작되는 거죠. 대한민국은 지금과 같은 번영과 자존을 지킬 수 없게 됩니다. 잘못하면 1894년 청일전쟁 전으로, 중국의 변방으로 돌아갈 위험까지 있습니다.”

박 명예이사장이 통일문제에 천착하게 된 계기는 안식년이었던 2008년 미국에 가 있을 때였다. “워싱턴의 한 정책연구소에서 ‘북한을 중국의 관리하에 두어야 한다’는 보고서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이건 말이 안 된다. 우리 민족은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고 주변 국가들에게도 재앙이 된다고 하니깐, 그곳 전문가들이 ‘한국인들과 한국정부가 통일을 원합니까. 전혀 준비도 노력도 없지 않느냐’고 하더군요. 굉장한 충격이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박 명예이사장은 이후 한반도선진화재단에서 통일문제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그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과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 시대 개막에 따라 북한의 급변사태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북한은 지난 60년간 수령독재체제를 지속적으로 강화해왔고 핵과 미사일을 끊임없이 개발해 왔습니다. 경제적 실패와 정치적 탄압을 수반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입니다. 외통수로 가는 길인데, 결국 내부개혁은 어렵고 체제붕괴로 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박 명예이사장은 북한의 급변사태 가능성 증대와 중국의 부상에 따라 흡수통일에 대한 준비도 미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우리 사회에 흡수통일 반대론이 있는데 이것은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흡수통일은 선택이 아니에요. 북한이 스스로 체제를 유지 못해 실패하면 우리가 빨리 개입해서 북한을 안정시키고 발전시켜야 합니다. 우리가 흡수통일하지 않으면 중국이 흡수통일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박 명예이사장이 무조건적인 흡수통일만을 내세우는 것은 아니다. “북한이 개혁개방에 나선다면 남북이 단계적이고 점진적인 통일로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게 가장 바람직한 모습이죠. 하지만 현실적으로 북한 체제붕괴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합의통일과 흡수통일 모두 대비하는 게 합리적인 게 아니겠습니까.”

▶“세월호, 한국 부실 총체적으로 드러난 참사”=박 명예이사장은 우리사회의 현안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먼저 세월호에 대해서는 짧은 시간동안 고도의 압축성장을 겪으면서 쌓인 부실이 총체적으로 드러난 참사라고 진단했다.

“크게 세 가지 문제점이 드러났다고 봅니다. 먼저 빠른 성장을 해오는 과정에서 불공정한 특권적 유착의 거미줄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는데 이게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드러나게 됐습니다. 다음으로는 근면·성실·정직이라는 우리 사회의 직업윤리와 노동철학이 대단히 후퇴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사회 각 분야의 지도자 리더십이 표류하는 것 아닌가 느껴졌습니다.”

박 명예이사장은 이러한 문제의 해법으로 다소 생소한 개념인 ‘선비민주주의’를 제시했다. “서구로부터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제도는 도입했지만 아직 정신은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민족 고유의 선비정신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선비는 순수 우리말로 정치적 도덕적 지도자를 의미합니다. 선비정신은 금욕(禁慾)과 선공(先公)입니다. 이러한 선비정신을 중심으로 선비민주주의와 선비자본주의를 만들어 나가야, 지금의 인기영합주의(포퓰리즘)와 천민자본주의를 극복하고 우리나라를 ‘선진통일강국’으로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박 명예이사장이 우리 사회의 문제 해법으로 제시하는 또 하나의 개념은 ‘공동체 자유주의’다.

“인류발전의 원동력은 개인의 존엄과 창의를 중요시하는 자유주의입니다. 그런데 자유주의가 무책임한 이기적인 방향으로 폭주하면 공동체가 깨지게 됩니다. 따라서 자유주의는 반드시 공동체에 대한 배려, 공동체에 대한 책임도 함께 가야합니다. 공동체를 소중히 하는 자유주의, 즉 ‘공동체자유주의’는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자 국민통합의 원리입니다.”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이 1997년 15대와 2002년 16대 대선에서 연거푸 패배한 이후 보수의 새로운 이념으로 부각된 ‘공동체 자유주의’는 이후 이명박, 박근혜 정부 출범의 토대가 됨으로써 국민들로부터 검증도 받았다.

지난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 지지를 선언했던 박 명예이사장은 집권 2년차를 맞은 박근혜정부에 대한 쓴 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박 대통령이 그동안 국가적 아젠다, 시대적 아젠다는 대단히 잘 잡아왔습니다. 특히 ‘통일대박론’이나 ‘국가개조론’은 아주 시의적절하고 중요한 문제제기였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종합적인 후속조치가 신속하고 체계적으로 나왔어야 하는데 이 부분에서 더듬거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는 “통일대박론의 경우 제대로 진행되려면 먼저 국민들에게 왜 통일이 대박인가 설명하고, 어떻게 통일을 대박으로 만들 것인가, 정부가 할 일은 무엇이고 국민들이 준비해야 것은 무엇인가 구체적으로 국민들에게 설명하고 호소해야 합니다.”고 조언했다.

▶멈추지 않는 박세일의 발걸음=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원, 서울대 법대 교수,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사회복지수석,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의연구소 이사장, 국회의원 등 전문 연구원과 대학교수, 청와대 핵심참모, 시민운동가, 정치인으로서 다방면에서 굵직한 족적을 남긴 박 명예이사장이지만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의 분신처럼 인식되던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은 지난 2월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자리를 넘겨줬다. 하지만 재단 명예이사장으로서 대학과 지방자치단체 등 불러주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찾아가 통일전도사 역할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강연이 없는 날이면 반포 개인연구실로 나가 선진통일과 선비민주주의와 관련된 각론 연구에 여념이 없다.

“공부를 하는 이유는 현실을 바꾸고 개선하기 위해서가 아니겠습니까. 현실과 관계없는 공부는 허학(虛學)일 수밖에 없습니다. 농민이나 근로자들이 땀을 흘릴 때 편안히 앉아서 책만 읽었으면 뭔가 국가와 사회발전에 적극적으로 기여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박 명예이사장의 말은 고려말 조선초라는 난세에 자신의 학문을 현실에서 타협없이 구현하고자 했던 정도전을 연상케했다. 우리 시대 대표적인 경세가(經世家)로 꼽히는 박 명예이사장의 대한민국의 새로운 길을 제시하려는 고민과 통일에 대한 열망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shind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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