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녹여줘. 화끈해 더 뜨겁게(걸스데이 ‘달링’ 중)’
한편의 ‘부조리극’이 국회에서 선보여질 뻔 했다. 국회 본청 2층 입구에서 세월호 특별법 처리를 촉구하는 유가족들의 단식 농성이 진행중인 가운데 불과 100여m 떨어진 곳에선 ‘화끈한 열린음악회’가 올려질 뻔 했던 것이다.
열린음악회는 오는 17일 제헌절을 기념해 열릴 계획이었다. 지난 14일부터는 무대가 국회 앞뜰에 설치되기 시작했다. 세월호 유가족 수십명이 단식 농성 중인 바로 옆이었다. 다행히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이 제동을 걸었다. ‘유족들 옆에서 풍악을 울리는 게 말이되냐’는 지적이었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이를 받아들여 행사를 취소했다.
그러나 반쯤 이미 쌓아올려졌던 무대가 철거되는 데 사용된 비용은 고스란히 국민 세금으로 메워지게 됐다. 현장 관계자는 “통상 2억원의 무대 설치비 가운데 70% 정도는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전했다. 부조리함에 반응하는 무딘 감성을 가진 국회 관계자들 탓에, 1억원이 훌쩍 넘는 세금이 허공에 떠버린 것이다.
의원들이 국정에 힘쏟느라 감이 무뎌져 문제가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린 것이라고 이해하려 했다. 그러나 제반 상황엔 이해하기 힘든 구석이 많다. 예컨대 세월호 유족들이 국회에 찾아온 것은 일요일인 지난 13일 밤이었다. 14일 아침 출근하는 데 전에 없던 의경들이 본청 주변에 배치돼 있었다. 세월호 유족들의 본청 진입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유족 옆에서 ‘풍악’을 울리는데 무감했던 감성에 비해, 본인들의 안위를 위한 행동에는 얼마나 기민했던가.
당초 16일 본회의 통과가 예정돼 있었던 세월호 특별법 처리는 결국 무산됐다. 새누리당이 ‘기소권과 수사권’을 가지는 진상조사위원회에 대해 ‘삼권분립의 원칙에 위배된다’며 강력히 반대한 때문이다. 유가족위원회는 기소권과 수사권을 가진 강력한 진상조사위를 요구하고 있다. 특별법 공전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잘못된 판단으로 억대 혈세를 날리고, 세월호 특별법조차 처리하지 못하는 국회 현장에서 이에 책임이 있는 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 우리는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능력이 극히 떨어지는 사람을 가리켜 ‘싸이코패스’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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