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 미국 내 한국계 대형마트들이 국내 라면제조사들의 과거 담합으로 피해를 보았다며 집단소송을 낸 것에 대해 현지 법원이 소송 개시 결정을 내리면서 그 결과가 주목되고 있다. 원고 측이 제기한 배상액 규모가 총 8억달러(약 8774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소송의 향배가 국내 라면 업체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와 공정거래위원회, 법조계의 말을 종합하면 소송의 성패는 두가지 관문에 달려 있다.
첫째는 한국 법원의 판결이다.
현재 농심, 오뚜기 등 담합이 적발된 국내 라면제조업체 4곳은 공정위를 상대로 과징금 부과 취소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공정위는 2012년 이들 라면업체를 상대로 총 1354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는데, 업체들이 이에 반발하며 낸 소송이다. 1심인 서울고법은 공정위의 처분이 정당하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고, 현재 업체들이 상소해 대법원에 계류돼 있는 상태다.
내년 초쯤 결론이 내려질 것으로 보이는 이 소송에서 만약 원심이 뒤집혀 라면업체들이 승소한다면, 미국에서 진행될 소송 역시 라면업체들의 승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 미국의 대형마트들이 소송을 낼 때 근거로 댄 업체들의 담합사실은 없었던 일이 되고,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 처분 역시 취소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원심 그대로 라면업체들이 패소한다면 미국 법원의 판단이 중요해진다.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연방지방법원에 걸려있는 소송은 ‘모션 투 디스미스(Motion To Dismiss)’ 단계에 있다. 이는 집단소송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원고 측의 주장이 옳다는 가정 하에 그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를 제출하도록 하는 단계다.
소송을 제기한 미국의 대형마트들은 공정위의 처분과 그 처분이 정당하다는 한국 법원의 판단을 근거로 댈 것으로 보이지만, 문제는 공정위마저 미국 대형마트들의 주장에 반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소송이 처음으로 알려진 지난해 7월 공정위는 “이 사건의 경우 수출품목(라면)이 담합의 대상에 포함되었는지 여부, 그로 인해 미국시장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쳤는지 여부에 대해 추가적인 입증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공정위가 담합을 적발하고 과징금을 부과한 것은 국내에서 판매된 라면이지, 수출용 라면이 아니라는 것이다. 공정위 측은 “지난 2012년 라면 4사에 대한 담합 결정은 국내시장에 피해를 주는 담합을 적발한 것일 뿐”이라며 “수출품은 담합의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되고 관련 매출액에도 포함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국내 라면업체들은 현재 미국 현지의 로펌을 통해 법적 대응을 하고 있다. 업체 관계자는 “공정위가 수출품은 담합 대상이 아니라고 선을 그어줬지만, 좀더 적극적으로 대응을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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