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샌드박스를 통과한다고 해서 사업이 탄탄대로를 달리는 것은 아니다. 전문성이 떨어지는 공무원들이 사업성을 검토하다 보니 실제 사업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대다수 업체들의 공통된 얘기다.
이동형 가상현실 체험 트럭으로 지난 3월 과기정통부 규제 샌드박스를 통과한 스타트업 브이리스VR의 김필주 대표는 4개월이 지난 요즘 규제 샌드박스 이야기만 꺼내면 한숨부터 내쉰다. 규제 샌드박스를 통과하면 정부에서 모니터링이라는 명분으로 규제를 씌워 사업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규제 샌드박스 이후 정부에서 VR 트럭을 전체이용가 콘텐츠로 학교 등 공공기관에서만 운영하도록 규제했다”며 “규제 샌드박스가 오히려 규제를 만드는 수단이 됐다”고 토로했다. 김 대표는 추가로 규제를 풀어달라고 또다시 규제 샌드박스 신청을 준비하고 있다.
규제 샌드박스를 정보통신기술(ICT) 테스트베드로만 사용하고 실제 사업으로 이어지도록 지원하는 데는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오토바이 배달통 디지털 광고로 규제 샌드박스를 통과한 뉴코애드윈드의 장민우 대표는 “차라리 샌드박스 제도를 안 하는 게 낫다”고 말한다.
장 대표는 “정부에서 기준도 없이 100대로 한정하는 바람에 사업성이 완전히 망가져 버렸다”며 “공장 건립 등 50억원이 투입됐는데, 100대로 제품으로 사업을 하려면 대당 5000만원으로 팔아야 하는 데 사실상 사업을 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공무원들이 실적 달성에만 급급해 사업성 검토 등은 전혀 하지 않고 있다”며 “규제 샌드박스 심의 내용에 대한 어떤 기준도 없는 상황에서 전문가가 아닌 공무원들의 경험에만 의존하다보니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 대표는 한국에서는 사업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아예 해외에 나가서 사업을 하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
택시 동승서비스로 규제 샌드박스를 통과한 코나투스 김기동 대표 역시 “규제 샌드박스가 테스트베드에 그치는 것이 아쉽다”며 “샌드박스라면 사업성을 증명하기 위해 다양한 방면으로 사업활동을 해봐야 하는 데 좁은 지역·적은 제품 수 등 극히 한정된 환경에서는 이를 실현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KT와 카카오는 공공기관 고지서를 모바일 메신저로 받아볼 수 있는 서비스로 규제 샌드박스를 통과했다. 하지만 규제 샌드박스의 두루뭉술한 내용 때문에 서비스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규제 샌드박스에서 고지서 인증 방법을 ‘공인인증서를 원칙으로 한다’고 설정해 놓았는데 이를 두고 행정기관마다 해석이 다르다”며 “이 때문에 몇몇 행정기관에서는 규제 샌드박스를 통과했다고 하더라도 승인을 해주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문제에 대해 전문가들은 공무원 사회에 만연한 보신주의와 성과주의를 해결해야 한다고 해법을 제시했다.
신민수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규제 샌드박스가 시장에서 일어날 부작용을 미리 모니터링하는 역할을 한다고 하더라도 지나치게 몸을 사리는 공무원들의 태도부터 바꿔야 한다”며 “위험부터 생각해 사업성이 제한받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일정한 샌드박스 허용 기준 없이 결정나는 경우가 많다”며 “이 때문에 업체들은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기 어려워져 많은 아이디어가 제대로 구현될 수 없다”고 말했다.
손승우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2년 동안만 규제 혜택을 받고 끝나는 것도 문제”라며 “2년 후에 규제 샌드박스 내용이 국회 입법으로 이어져 장기적으로 사업을 펼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현재는 그런 것이 보장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손 교수는 “그러다보니 기업들이 마음껏 사업을 펼치기도 어렵고 투자에도 어려움을 받는다. 이 때문에 규제 샌드박스를 통과했더라도 스스로 취소하는 기업들도 있다”며 “샌드박스를 허가 할 때 입법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해 비즈니스가 유지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채상우 기자/123@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