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법무부 장관이 18일 국회에서 주승용 국회부의장, 유인태 국회 사무총장 예방을 마치고 이동하고 있다. [연합] |
[헤럴드경제=좌영길 기자] “연좌제가 조국을 죽이기 위해 125년 만에 부활 조짐을 보이고 있다.”(김경협 더불어 민주당 의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 조국 청문회인지 또는 장관 후보자 조국의 딸과 아내의 청문회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대한민국 헌법은 연좌제를 금지하고 있다.”(정성호 민주당 의원)
“후보자가 증언할 수 있는 사안을 가족을 불러내 증언하라 이렇게 하는 것은 정치적 연좌제에 해당하지 않느냐.”(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
조국(54) 법무부장관 임명 과정에서 여러 차례 등장했던 ‘연좌제’라는 말은 검찰 수사 상황에서도 꾸준히 언급되고 있습니다. 연좌는 쉽게 말해 ‘다른 사람의 잘못으로 내가 불이익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헌법 제13조 3항은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해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합니다. 연좌제 금지는 원래 형사처벌에 관한 영역에서 논의됐습니다.
사극을 보면 죄인을 처형할 때 ‘삼족을 멸한다’는 표현이 종종 나오는데, 연좌제의 대표적 사례입니다. 형벌을 부과한 뒤에 그 일족이 훗날 정치적 보복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친족까지 모두 벌하던 게 연좌제였습니다. 현재는 비단 형사처벌 뿐만 아니라 신분적 불이익도 포함하는 개념이 됐습니다. 가령 가족 중에 사상범이 있다는 이유로 특정 공무원직에 임명되지 못하게 했던 것도 연좌로 볼 수 있습니다.
조 장관 임명 과정이 없었다면, 배우자 정경심 동양대 교수나 딸이 검찰 수사선상에 오르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사모펀드 투자 과정에서 횡령 등의 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구속된 조 장관의 5촌 조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은 연좌제에서 금지한 불이익을 받고 있는 것일까요. 반대로, 딸이나 배우자, 5촌의 잘못 때문에 장관임명이 무산될 뻔 했고 검찰 수사 상황 때문에 처지가 곤란해진 조 장관은 어떨까요.
윤석열 검찰총장(왼쪽)이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만나 환담하는 장면. [연합] |
결론부터 말하자면, 둘 다 연좌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우선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조 장관 배우자나, 5촌 조카 등은 모두 ‘자신의 잘못’에 대한 혐의를 추궁당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잘못’으로 불이익을 당하는 연좌가 아닙니다. 조 장관의 조카는 이미 구속이 됐고, 정 교수 역시 사문서 위조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둘 다 ‘남이 저지른 잘못’이 아니라 ‘본인이 한 행위’로 검찰 수사를 받았습니다. 딸 역시 위조된 표창장을 의학전문대학원 입시에 자신이 제출한 과정을 의심받아 수사를 받고 있습니다.
반대로 조 장관의 관점에서는 어떨까요. 아직 검찰 수사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조 장관이 위법행위를 한 사실이 있는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조 장관이 잘못이 없었고, 배우자만 다른 범죄혐의가 더해져 기소된 경우 이를 이유로 만에 하나 사퇴를 하게 된다면 그것은 연좌일까요. 장관은 임기도, 정년도 없는 정무직입니다. 장관이 아니라, 정년이 있는 법무부 일반 공무원이 배우자가 처벌을 받았다는 이유로 해임된다면 이것은 연좌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장관은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사퇴시킬 수 있는 자리입니다. 형사처벌 뿐만이 아니더라도, 정치적 유불리를 따져 언제든지 물러나게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대통령이 내리는 수많은 정치적 결단 중 하나일 뿐입니다. 임명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채용이 결정된 일반 공무원이 다른 사람의 잘못으로 임용이 취소된다면 연좌겠지만, 조 장관의 경우는 그렇지 않습니다. 국무위원 임명은 정치적 행위이고, 인사 검증 과정에서 나온 가족 관련 의혹으로 임명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불이익’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대선후보도 아닌데, 조국 장관에 대한 의혹제기가 과하다는 면은 일리가 있습니다. 언론 보도 중에서는 장관 적격 여부와 무관한 내용들도 분명 있었습니다. 하지만 인사검증 과정에서 ‘정경심 교수나 딸이 장관후보자냐’는 식의 논리로 의혹을 상쇄하는 게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번 사건은 조 장관의 5촌 조카인 조범동 씨가 사모펀드 운용 과정에서 주가조작을 시도하고, 회사 자금을 빼돌린 사실이 뼈대를 이루고 있습니다. 여기에 조 장관의 배우자 정경심 교수가 부적절한 금전거래를 한 정황이 나와 진실규명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조 장관은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이자,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을 지냈습니다. 지금까지 권력형 ‘게이트’로 불린 수많은 사건은 고위공직자 본인이 아니라 친족이나 배우자, 자녀가 잘못을 저질렀던 경우가 더 많습니다.
지난해 3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전 의원이 서울 서초동 중앙지검에 출석한 모습 [연합] |
검찰의 직접 수사 기능은 축소해야 합니다. 이번 사안에서도 검찰 수사가 지나치게 전방위적으로 이뤄진 점은 비판을 통해 견제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장관 후보자의 임명 문제가 걸렸다는 이유로 검찰 보고 범죄 혐의를 방치하라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이 사건은 검찰이 자체 첩보를 수집한 게 아니라, 국회에서 고발을 하면서 시작됐습니다. 정말 조 장관의 배우자가 이 일에 실제 관여를 했는지, 그렇다고 한다면 어느 정도인지는 곧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입니다.
“국회가 제시한 탄핵소추사유는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했다는 주장이 아니라, 친구 최순실 씨가 헌법, 법률을 위반한 행위다. 최순실의 행위를 대통령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은 연대책임이나 조선시대 연좌제에 불과하다.”
2017년 2월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변론에서 김평우 변호사가 펼친 ‘연좌제’ 주장이었습니다. 하지만 헌재는 최순실의 사익추구에 대통령의 권한이 개입됐기 때문에 더 이상 직무수행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파면 결정을 내렸습니다.
조국 장관을 박 전 대통령과 동등하게 비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연좌제’라는 표현이 사전적 의미가 아니라 정치적 수사로 쓰일 수도 있습니다. 다만 권력자의 주변에는 항상 거기에 기대 부당한 이득을 취하려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아들이나 배우자, 친형은 물론이고 심지어 학교 동문이나 아주 먼 친척뻘만 되더라도 각종 ‘게이트’의 주연으로 등장했던 수많은 전례가 있습니다. 권력자가 선하다고 해서 주변 사람까지도 그런 것은 아닙니다. 권력은 견제받아야 하고, 남용될 부작용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합니다. 정당한 의혹제기까지 ‘연좌제’ 개념을 가져와 막아버린다면, 앞으로 다른 사건에서도 견제가 어려워질 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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