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 공공 추진 반신반의 분위기
반대파엔 명분, 찬성파엔 협상력
정부 “예정대로 2차 후보지 이달말 발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이 불거지면서 공공재개발 예비후보지 주민들의 공공재개발 불신이 커지는 모양새다. 정부는 당초 계획대로 이달 말 공공재개발 신규 예정구역을 발표할 예정이다. 지난 17일 찾은 서울 마포구 아현1구역 내 공공재개발 정책을 설명하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사진=김은희 기자] |
[헤럴드경제=김은희 기자] “안 그래도 공공이 추진하는 게 미심쩍었는데 이번 LH 사태를 보니까 화가 나서라도 싫어요. 끝까지 반대할 겁니다.” (서울 마포구 대흥5구역 주민 A씨)
“LH가 못 미덥기는 하지만 공공사업이라도 해야 하는 상황이니 해야죠. 그래도 임대비율 같은 조건 협상에선 우리가 큰 목소리를 낼 수 있지 않을까요.”(아현1구역 주민 B씨)
정부가 공공재개발 사업을 계획대로 수행하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힌 가운데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 사태로 추진 동력에 타격이 불가피해 보인다. LH 사태가 공공재개발을 반대하는 주민에게는 반대 명분이, 찬성하는 주민에게는 협상력 카드가 되는 모양새다. 이달 말 2차 사업 후보지를 발표하더라도 향후 사업 추진에는 난항이 예상된다.
지난 17일 공공재개발 예비후보지인 서울 마포구 대흥5구역과 아현1구역 현장을 둘러보니 공공개재발 추진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LH를 언급하자 주민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특히 공공재개발을 반대해온 주민들의 목소리는 격했다.
대흥5구역에서 만난 주민 C씨는 “LH 신뢰도까지 떨어진 상황에서 우리가 얻는 이득이라고는 추진이 빠르다는 것 뿐인데 과연 제대로 진행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차라리 민간 건설사와 진행하는 게 나은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C씨를 포함한 주민 백여명은 최근 공공재개발 신청을 철회해달라는 민원을 마포구청에 접수했다. 민원 내용은 이달 초 마포구와 서울시가 실시한 자체 설명회에서 서울시 측에 전달됐다고 마포구청은 설명했다.
지난 17일 찾은 서울 마포구 대흥5구역의 모습. [김은희 기자] |
서울 마포구 대흥5구역 내 공공재개발을 반대한다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는 모습. 현재 해당 플래카드는 철거된 상태다. [헤럴드경제 DB] |
아현1구역에 사는 D씨는 “민간사업이 어렵다고 하니 ‘울며 겨자먹기’로 공공재개발에 손을 들어주긴 했는데 믿고 맡길 수 있겠냐”고 혀를 찼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업 후보지로 선정된다 한들 주민 설득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 공공재개발 최종 후보지도 주민 3분의 2 이상 동의를 얻어야 사업 추진이 가능하다.
이런 분위기속에 그간 민간사업 진척이 더뎠던 만큼 공공사업으로라도 하루빨리 재개발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규제 완화, 사업기간 단축 등의 인센티브가 사업성 확보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일부는 이번 LH 사태로 기부채납 조건 완화, 용적률 상향 등 향후 협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보이기도 했다. 실제 아현1구역 입주민 커뮤니티에는 ‘LH 의혹으로 3기 신도시 공급이 지연되면 공공재개발 조기 공급 필요성이 대두되고 이는 LH의 협상력 약화로 이어져 반사이익을 얻을 것’이라는 내용의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다만 임대비율 축소 등의 주민 요구가 관철될 경우 공공성 훼손 지적을 피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공공재개발 1차 사업을 비롯한 다른 공공사업과의 형평성 논란도 예측된다.
지난 17일 찾은 서울 마포구 아현1구역의 모습. 아현1구역에는 영화 ‘기생충’의 촬영장소로 유명한 돼지슈퍼가 포함돼 있다. [사진=김은희 기자] |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공공 주도 사업은 청렴성이나 공정성을 기저에 깔고 진행하는데 지금은 사업 주체인 LH의 비리가 만천하에 드러나며 사업 전제부터 흔들리고 있다”며 “공공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면 낮게 책정된 주민 동의율마저 나오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다음달 7일 치러지는 서울시장 보궐선거 결과도 향후 공공재개발 추진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사실상의 사업 권한을 가진 서울시장 자리를 야권 인물이 꿰찰 경우 공공재개발 추진에도 악재가 될 수 있다. 여기에 야권 후보들이 일제히 민간 재개발 활성화를 내세우고 있어 사업지들이 민간으로 노선을 갈아탈 가능성도 제기된다.
정부는 이달 말 2차 사업 후보지를 발표할 계획이다. 현재 공모에 참여한 신규·해제구역 56곳을 대상으로 사업성 등을 살펴 30여곳을 추렸으며 추가 검토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반대 민원이 들어오고는 있으나 공식적으로 공모 신청을 철회한 사례는 없다”며 “사업에 차질이 없도록 진행하겠다”고 전했다.
ehkim@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