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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00만원짜리 명품백 왜 사?” 외국인, 한국서 ‘직구’ 하는 이 가방 [김유진의 브랜드피디아]
나이키 리유저블 백. [나이키]

[헤럴드경제=김유진 기자] “저게 유행이에요?” “공식 홈페이지에 없는데 어디서 사요?”

나이도 성별도 초월했다. 이젠 국적까지 초월할 기세다. 주어가 뭐냐고? 무신사 카탈로그를 찢고 튀어나온 차림새의 힙스터는 물론이요, 지하철에 몸을 실은 직장인, 새학기 짐 많은 자취생, 나들이가는 육아엄빠, 동네 마실 나온 할머니·할아버지까지 하나쯤 들고 다니는 나이키 쇼핑백 얘기다. 전국민이 너도나도 들고다녀 번화가에선 3초마다 보인다는 ‘신흥 3초백’으로 불린다. 300만원짜리 명품백이 부럽지 않다는 이 가방의 매력은 대체 뭘까.

델몬트 주스병 자리 노리는 이 가방 정체는…
나이키 리유저블 백을 리폼해 만든 크로스백. [커스텀와이즈]

2021년 한국 나이키 매장에 도입된 ‘나이키 리유저블 쇼핑백’은 구입한 물건을 담은 쇼핑백 용도로 제작됐다. 가장 작은 사이즈는 1000원, 큰 사이즈는 3000원이다.

단, 종이나 비닐봉투처럼 한번 쓰고 버릴 게 아니라 여러번 여러 용도로 사용하며 쓰레기가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라고 만든 '다회용'이다.

소비자들은 쌀 포대자루로 쓰이던 질긴 ‘타포린’ 소재의 나이키 쇼핑백에 열광했다. 타포린은 비에 젖지 않고 몇 번이고 재사용이 가능할 정도로 내구성이 뛰어나다. 때문에 튼튼해야만 하는 천막, 자동차 포장재 등으로 널리 쓰인다.

코스트코, 이케아 등 다국적 기업들도 일찍이 타포린 장바구니를 활용해왔다. 나이키는 기존 타포린 백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재활용 플라스틱을 활용한 타포린을 가방 소재로 활용했다. 다시 쓰는 플라스틱으로, 여러 번 쓸 수 있게 만든 ‘재활용의 재활용’이다.

나이키 스타일 홍대 매장에서만 제공하는 리유저블 백을 재활용한 아이패드 파우치. [아이디어스]

델몬트 유리병에 보리차를 따라 마시던 한국인의 DNA가 어디가랴.

도입 3년차를 맞이한 나이키 리유저블백의 인기는 폭발적이다. 누가 봐도 튼튼해보이는 소재, 깔끔한 디자인에 세련된 나이키 로고까지 새겼는데 거부할 이유가 없다. 미학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적당한 쇼핑백이 쉽게 버려지던 일회용 종이봉투와 비닐봉투를 대체하는 덴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이키 리유저블 쇼핑백의 인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최근엔 나이키 스타일 홍대 매장에서만 제공하는 희소한 디자인의 리유저블 쇼핑백이 중고 거래마켓에서 웃돈까지 얹어 팔린다. 나이키 고객들이 손으로 그린 나이키 스우시 로고들을 패턴화한 디자인이다. 유튜브를 열면 손재주를 살려 리유저블 쇼핑백을 메신저백이나 크로스백 스타일로 리폼하는 솜씨 좋은 유튜버들의 영상도 볼 수 있다.

태국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 중인 국내 나이키 리유저블 쇼핑백. [온라인 사이트 캡쳐]

한국 사람들이 너도나도 들고다닌 탓일까. 태국과 말레이시아 등에서는 해당 쇼핑백을 웃돈 얹어 직구하는 수요까지 생겼다. 한 태국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3000원짜리 쇼핑백이 2만원(550바트)에 팔리기도 한다. 국내에서도 나이키 오프라인 매장을 찾기 힘든 소비자들을 겨냥해 이 쇼핑백을 따로 파는 업자들까지 등장했을 정도다.

300만원짜리 명품도 쇼핑백 행세…타포린백 ‘유행 아닌 유행’이 반가운 이유
명품 브랜드 보테가베네타의 300만원대 '브라운백' 실착 사진(왼쪽)과 상세사진. [보테가베네타]

물건을 산 뒤 받은 듯한 쇼핑백 형태의 가방은 최근 명품 브랜드에서도 종종 모방하는 스타일이다.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보테가베네타가 최근 출시한 ‘종이가방’ 스타일의 '브라운 백'을 보자. 얼핏 보면 물건 사고 받은 쇼핑백을 재사용하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속은 전혀 다르다. 종이 쇼핑백처럼 보이는 이 가방의 실제 소재는 100% 어린 송아지의 가죽이다. 가죽을 종이처럼 보이기 위해 수차례 화학적 가공도 거쳤다. 가격은 미디움 사이즈 324만원, 스몰 사이즈가 243만원이다.

발렌시아가(Balenciaga) 트래시 파우치 실착 사진(왼쪽)과 상세사진. [발렌시아가]

지난해 발렌시아가(Balenciaga) ‘2022 겨울 컬렉션’에 등장한 ‘트래시 파우치(Trash Pouch)’는 어떤가.

겉모습만 언뜻 보면 까만 쓰레기 비닐 봉지다. 송아지 가죽으로 제작한 이 가방엔 입구를 끈으로 조여서 여밀 수 있는 드로우스트링(drawstring)이 달려있고, 발렌시아가 로고가 쓰레기 봉투 느낌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희미하게 각인돼 있다. 가격은 1790달러(한화 약 232만원)다.

보테가베네타와 발렌시아가 가방은 왜 쇼핑백으로 제공되는 종이가방과 비닐봉투를 모방했을까. 저렴함을 모방하는 명품 디자인 속엔 틀에 박힌 명품 이미지를 탈피하고픈 욕망이 숨어있다. ‘비싼 척’ 하지 않는 '무던함'이야말로 이들 디자인이 추구하는 무드 중 하나다.

나이키 리유저블 쇼핑백을 비롯된 다회용 ‘진짜’ 쇼핑백들도 무던함으론 뒤지지 않는다. 일부러 꾸미거나 숨길 필요없는 자연스러움을 주무기로, 럭셔리 브랜드가 탐내던 무심함에 단숨에 도달한다. 무려 100분의 1에 불과한 가격으로, 환경까지 지키면서.

돈도 안 되는 쇼핑백, 나이키는 왜 튼튼하게 만들었을까?
‘RAD(Recycle and Donation)’ 프로그램으로 수거한 나이키 그라인드가 사용된 피갈레 농구장(Pigalle Duperré Basketball Court). 나이키 RAD 매장은 전 세계에 300여개가 있다. 그중 10분의 1인 31개가 한국에 있다. 나이키는 2025년까지 주요 소재의 50%를 친환경 소재로 대체해 50만 톤의 온실가스 감축 효과를 달성할 계획이다. [나이키]

“가장 지속가능한 옷은 이미 옷장 안에 있다”. 환경운동가들이 입이 닳도록 하는 말 중 하나다. 나이키 리유저블백 속에 담긴 철학도 이와 같다. 버리기 전에 다시 사용하는 ‘리유즈’(Reuse, 재사용) 만큼 지속가능한 소비도 없다.

최근 발행된 ‘2022 나이키 임팩트 리포트에 따르면, 지난해 나이키가 생산한 의류 및 신발 가운데 절반은 재생 폴리에스터 소재를 사용한 제품이다. 이를 위해 지난해 국내 나이키 매장에서 수거한 옷과 신발이 30t(의류 10t·신발 21t)이 넘는다. 이중 일부는 기부하고 나머지는 재활용했다.

‘RAD(Recycle and Donation)’ 프로그램으로 수거한 나이키 그라인드가 사용된 마드레이라 놀이터(Madureira Playground). 나이키 RAD 매장은 전 세계에 300여개가 있다. 그중 10분의 1인 31개가 한국에 있다. 나이키는 2025년까지 주요 소재의 50%를 친환경 소재로 대체해 50만 톤의 온실가스 감축 효과를 달성할 계획이다. [나이키]

나이키 RAD(Recycle and Donation) 매장은 전 세계에 300여개가 있다. 그중 10분의 1인 31개가 한국에 있다. 지난 해 서울 강남, 홍대, 압구정 등 14곳이던 국내 RAD 매장이 올들어 31개로 2배 이상 대폭 늘었다.

RAD 프로그램으로 회수한 헌옷과 신발은 30년째 운영 중인 ‘나이키 그라인드’ 업사이클링 프로그램을 통해 다시금 생명력을 얻는다. 고무·가죽·EVA 폼 등을 수집해 잘게 갈면 다시금 나이키 운동화, 매장 내 가구의 원료로 쓸 수 있는 재생 그라인드 소재로 변신한다.

나이키 크레이터 임팩트. 아웃솔에 재활용 소재를 활용된 모습. 잘게 간 그라인드가 한눈에 보인다.[나이키]

외부 협력사에 제공하는 그라인드 소재는 스포츠 코트, 놀이터, 바닥재, 스케이트 보드, 핸드폰 케이스 등 다양한 제품으로 재생산 되기도 한다.

나이키는 의류 유통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이달 17일 국내 이천 물류센터에 태양광 발전 시스템도 설치했다. 매년 약 272MWh의 재생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는 태양광 시스템으로 기존 연간 에너지 소비량을 11% 절감하고, 140톤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축할 것으로 기대된다. 연내 전기차 충전기 설치로 직원들의 전기차 사용도 독려할 예정이다.

팔아야 하는 자, 막아야 하는 자…‘패션 산업’ 영원한 딜레마
칠레 북부 아타카마 사막에 위치한 알토 오스피시오의 라 물라 마을 근처에 버려진 대량의 의류 폐기물. [AP]

패션업계는 왜 지속가능한 경영에 주목할까. 그간 의류 산업은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지목돼 왔다. 특히 발빠른 유행을 접목한 SPA 브랜드는 의류 생산·유통·폐기 전 과정에 걸쳐 화학물질과 탄소를 배출하는 ‘악의 축’으로 비판받았다. 패션과 환경은 태생부터 만들어진 대립구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글로벌 의류 브랜드들이 너도나도 ESG 경영에 열을 올린 지는 꽤 됐다. 그럴 싸한 이미지를 쌓아 더 많이 팔아보겠다는 장삿속일수도, 글로벌 선두 기업의 순수한 책임감일수도 있다. 다만, ‘소비가 죄악이 되지 않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이들의 목적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계속 팔기 위해선, 계속 사도 버틸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칠레 북부 아타카마 사막에 위치한 알토 오스피시오의 라 물라 마을 근처에 버려진 대량의 의류 폐기물. [AP=연합]

환경을 생각한다는 패션 브랜드가 말하고픈 진심은 이런 게 아닐까. “이왕 또 살거면 우리 브랜드 제품으로 사주면 좋겠어. 다 쓰고 가져오면 재활용도 해줄게. 근데, 옷장이 이미 가득하다면…가끔씩은 참아줘도 괜찮아.”

제품이 판매자의 손을 떠나는 순간, 소비자의 윤리가 시작된다. 더 살 것인가, 덜 살 것인가. 이것을 살텐가 저것을 살텐가. 지갑을 여닫는 순간 만날 직면하는 딜레마다. ‘나는 어떤 소비에 적합한 사람인가’를 먼저 알아야 ‘더 사라’ 혹은 ‘또 사라’고 부추기는 유행의 홍수 속에서 중심을 잡을 수 있다.

kace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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