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까지 1.1조 달러 모을듯
연 5%대 중반 기대수익 가능
달러 강세 요인, 만기도 짧아
환손실·가격변동 위험 제한적
외화MMF 허용, 곧 상품 출시
고금리 시대라고 하지만 시장 금리가 꽤 떨어지면서 이제 5%대 이자를 기대할 저축을 찾기 어렵다. 눈을 해외로 돌리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것도 가장 안전하다는 미국 국채다. 조만간 미국에서 달러 품귀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환율을 살펴야 하지만 만기가 짧은 단기 국채여서 상대적으로 위험은 덜하다. 마침 우리 정부도 단기 달러 채권에 투자할 수 있는 MMF(머니마켓펀드)를 허용하기로 했다.
한동안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미국 정부와 의회의 부채한도 협상은 또다른 숙제를 남겼다. 텅 빈 연방정부의 금고를 다시 채우는 일이다. 연방정부는 올 초부터 부채 한도를 넘지 않기 위해 가진 현금을 몽땅 끌어다 썼다. 채권 발행도 미뤘다. 이에 미국 재무부는 7일(현지시간) 9월까지 현금 보유액을 정상 수준으로 되돌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어떻게 금고를 채운다는 것일까?
최근 JP모건은 올해 연말까지 연방정부가 1조1000억 달러의 단기(만기 1년 이하) 채권을 발행할 것으로 예상하면서 그 중 8500억 달러가 9월까지 시장에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 재무부가 시장 상황을 살펴 발행을 적절히 조정하겠다고 설명했지만 시장은 불안한 모습이다. 한꺼번에 대규모 단기국채가 발행되면 시장 유동성을 강력히 빨아들여 현금 부족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해 국내에서 벌어진 한국전력 발(發) 회사채 대란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적자가 큰 한전이지만 정부가 최대주주다. 덕분에 채권시장에서 한전채는 거의 국채 취급을 받는다. 한전채 금리가 오르면 다른 회사채 금리는 더 올라야 한다. 적자를 메우기 위해 한국전력이 대규모 채권을 발행해 시장 유동성을 빨아들여 다른 기업이나 기관의 현금이 부족해진 현상이었다.
정부가 대규모 국채를 발행할 때는 시장금리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중앙은행의 도움을 받는 게 보통이다. 2008년 금융위기와 2020년 코로나19 때에도 미국 정부는 단기에 대규모 국채를 발행하지만 연방준비제도(Fed)가 이를 받아주면서 시장 충격은 제한됐다. 당시는 연준이 기준금리를 내리며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할 때다. 지금 연준은 금리를 올리고 보유채권을 매각하는 긴축을 진행 중이다.
결국 시장이 소화해야한다. 현재 만기 1년 이하 미국채 금리는 5%를 넘는다. 한달 만기 5.05%, 6 개월 만기는 5.46%에 달한다. 시장의 호응을 받으려면 금리를 더 높여야 한다. 지난 3월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로 은행예금에 대한 불안이 높다. 단기국채 금리매력이 높아지면 예금을 인출해 투자를 하려는 수요가 더 커질 수 있다. 이는 다시 은행의 유동성 위험을 높이게 된다.
2019년 미국 정부와 기업들의 단기채 발행이 급증하면서미국 자금시장에서 유동성 부족 사태가 발생했다. 연준이 개입해 급한 불은 껐다. 단기 자금시장이 마비되면 멀쩡한 기업들도 부도가 나면서 자칫 금융위기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3월 SVB 사태 때도 결국 연준이 나서 은행들이 보유한 채권을 사주기로 했다. 이번에도 사정이 다급해지면 연준이 나설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미국의 물가와 고용지표는 여전히 강한 모습이다. 연내 기준금리 인하 기대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한 두 차례 이상 더 오를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린다. 정부 곳간 채워주느라 연준이 부득이 자금시장에 돈을 푼다면 기준금리를 더 높일 명분은 더 강해질 수도 있다. 국채보다 더 안전하게 여겨지는 게 연준 예금(overnight funds)이다. 기준금리를 높이면 국채 금리는 그 보다 더 높아져야 한다.
중앙은행이 긴축을 하는 과정에서 정부까지 달러를 필요로 하면 달러화 가치는 높아지게 된다. 상대적으로 원화가치가 높아질 확율은 낮아진다. 달러 채권에 투자해도 환차손 위험은 크지 않을 수 있다. 단기채권은 만기가 짧아 가격하락 위험도 적다. 가까운 만기까지만 보유하면 원리금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미국 단기채권 금리가 당분간 계속 오르더라도 큰 손실을 볼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연방정부의 금고 채우기는 분명 채권시장에는 부담요소이지만 이로 인해 금융시장에 큰 탈이 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언제까지 얼마를 채울 지 다 알려진 데다 시장불안을 방치할 만큼 정부가 어리석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단기금리가 상승하면 아무래도 기업이나 가계의 자금사정은 빠듯해지게 된다. 그만큼 경기침체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 증시에는 그리 썩 좋은 소식은 아닐 수 있다.
kyho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