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현실주의
<동행하는 작품>
창가에 서 있는 소녀
기억의 지속
양 갈비를 어깨에 걸치고 있는 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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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이원율 기자]오늘, 살바도르 달리는 운명의 여인과 마주했다.
1929년, 스페인 카다케스의 별장. 달리가 부스스 눈을 떴다. 너무 설레 잠을 잘 수 없었다. 창문을 활짝 열었다. 이른 아침이었다. 바다의 소금 향이 코에 닿았다. 그는 흥얼대며 머리카락을 넘겼다. 손가락에 물엿을 묻혀 콧수염도 다듬었다. 별장을 둘러봤다. 희귀한 식물이 깔린 방, 코뿔소 뿔이 걸린 복도 등 공간은 완벽했다. 새와 도마뱀이 넘실대는 정원, 잔뜩 쌓아놓은 조개껍데기와 새하얀 지중해를 감상할 수 있는 테라스도 근사했다. 모두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줄 거야. 신난 달리는 소리를 꽥 지를 뻔했다. 멀리서 그의 파티 초대장을 받은 사람들이 보였다. 화가 르네 마그리트가 오는군. 영화감독 루이스 부뉴엘도 올 줄 알았어. 망원경을 든 달리는 베란다에 섰다. 오늘 손님들의 면면을 살펴봤다. 시인 폴 엘뤼아르까지 친히 행차하셨네! 그런데…. 그 옆에 있는 여성분은 누구야? 달리는 망원경을 그녀 쪽으로 더 갖다댔다. 그는 이제 그녀만 봤다. 풍성한 머릿결, 오밀조밀한 얼굴, 당당한 걸음에 눈을 떼지 못했다. 거짓말처럼 첫눈에 반해버렸다.
르네 마그리트, 데칼코마니 |
"구석진 어촌까지 오느라 고생 많으셨지요."
달리는 정문에서 허리를 바짝 숙였다. "마그리트 선생, 중절모가 멋있어요. 부뉴엘은 풍채가 더 좋아졌어!" 일일이 환영 인사를 건넸다. 달리의 눈은 그런 와중에도 엘뤼아르, 더 정확히는 그와 함께 온 정체 모를 여인을 찾고 있었다. "우리 엘뤼아르 선생! 천재적 시인께서 찾아와줘 고마워요." "내 예술 동지의 초대를 어떻게 거절할 수 있겠소." 엘뤼아르가 점잖게 웃었다. "선생 옆에 있는 분은 누구…?" 달리는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그는 침을 꼴깍 삼켰다. "갈라를 처음 보는가? 내 아내요. 인사하시게." 아, 역시나 그녀는 유부녀였다.
살바도르 달리 |
"제가 다섯 살 때였지요."
달리가 불쑥 입을 열었다. 식당에 빙 둘러앉아 만찬을 할 때였다. "개미에 덮여 썩어가던 박쥐를 입에 넣은 적이 있었는데 말입죠." 달리가 스테이크를 크게 썰어 입에 넣으면서 말했다. "아, 그리고 닭장! 벌레가 득실대는 닭장에서 한나절 있어 본 적도 있는데…" 그는 우물대며 횡설수설했다. "여보. 저 사람, 원래 저래요?" 달리의 맥락 없는 말에 입맛이 뚝 떨어진 갈라가 속삭였다. "아주 매력덩어리지?" 엘뤼아르는 대수롭지 않은 듯 킬킬댔다. 훗날 갈라는 그런 달리를 보고 "(산만한)탱고 댄서인 줄 알았다"고 회상한다. "이제 파티의 대미를 장식해보지요." 달리가 일어섰다. 식사를 막 마친 사람들을 재촉했다. "천재의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특별 전시관으로 가시지요. 천재가 누구일까요? 당연히 접니다!" 달리가 콧수염을 과시하듯 매만졌다. "다들 저기로…. 부인. 코뿔소 뿔이 있는 복도를 따라가시지요." 달리는 갈라가 자기를 스쳐 지나가자 뻣뻣하게 굳었다. "음식은 좋았어요." 갈라가 툭 던진 말에 어쩔 줄 몰라했다. 애써 억누른 사랑의 불씨가 다시 타올랐다. 눈치 빠른 갈라는 달리의 그런 마음을 알고도 모른 척 돌아섰다.
살바도르 달리, 비온뒤 격세유전의 흔적 |
살바도르 달리, 잠 |
"그날 제가 꾼 꿈은 정말 최고였어요."
달리가 자기 그림들 앞에서 연설하듯 말했다. "그 풍경을 화폭에 고스란히 담았어요. 끝내주지요?" 목에는 어느새 나비넥타이가 달려있었다. "달리, 아직도 스푼을 꼭 쥐고 자는가?" "당연하지요. 꿈속 세상에선 그게 연필이에요. 떨어뜨릴 때 쨍그랑하는 그 소리도 얼마나 좋은지요!" 엘뤼아르가 갈라의 어깨를 툭툭 쳤다. "거봐. 정말 웃긴 사람이야." 윙크했다. 그런데, 이제 갈라는 엘뤼아르의 말 따위 듣지 않았다. 갈라는 충격에 빠졌다. 살면서 이렇게 뒤죽박죽인 그림은 처음 봤다. 이성이라곤 찾을 수 없었다.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할 게 없고, 없어야 할 곳에 없어야 할 게 있었다. 문제는 이 정신 사나운 그림이 꽤 괜찮았다는 점이었다. 오색찬란한 화폭에는 천진난만함과 황홀함이 함께 있었다. 확실해. 이 자는 스타가 될 사람이야. 갈라는 달리를 달리 봤다. 그가 유명해질 것이라는 걸 누구보다 빨리 간파했다. 다시 보니 그의 허풍은 자신감으로 느껴졌다. 어색한 몸동작은 기품있는 예의로 여겨졌다. 희귀한 열대식물, 손바닥만한 도마뱀을 실컷 볼 수 있는 별장 곳곳은 유쾌한 재치로 와닿았다. 갈라는 격정적인 여인이었다. 그녀는 일을 저지르기로 마음을 먹었다. 더는 모른 척하지 않기로 했다. 갈라는 사람들 틈에 섞인 달리의 등을 간질였다. "달리 씨." "아, 부인. 그림은 괜찮았는지요." 달리가 또 기계처럼 굳었다. "그럼요." 갈라가 말했다. "저희, 조용한 데 가서 이야기 좀 할까요?" 주변 눈치를 보던 그녀가 말을 덧붙였다. 달리의 얼굴에 홍조가 피어났다. 그런 달리를 유혹하는 일이야 일도 아니었다.
살바도르 달리 |
달리는 1904년, 스페인 피게레스에서 출생했다.
달리는 눈 뜨자마자 부모의 감격 어린 표정과 마주했다. 그는 어릴 적부터 이들의 따뜻한 사랑을 받았다. 그런데, 달리는 커갈수록 부모의 말과 행동이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다. 결국은 이들의 속마음을 알아차렸다. 사실 달리에겐 형이 있었다. 그보다 3년 먼저 태어났다. 다만 달리와 달리 겨우 1년9개월을 살고 사망했다. 뇌막염이었다. 달리는 깨달았다. 부모는 허무하게 죽은 그 형을 잊지 못했다. 잊을 생각조차 없어보였다. "네 이름이 왜 살바도르인지 알아?" 부모가 어린 달리에게 물었다. "죽은 네 형 이름이 살바도르였어. 너는 형의 환생인 셈이지." '살바도르 달리'라고 쓰인 묘비 앞에서, 부모는 코흘리개 달리를 유리 접시처럼 조심히 다독였다. 아. 엄마, 아빠는 형에 대한 죄책감을 안고 나를 보는구나. 달리는 평생 애정결핍을 갖고 살게 된다.
파블로 피카소, 게르니카 [www.PabloPicasso.org] |
변호사인 달리의 아버지는 집에서 전시회를 열 만큼 미술에 조예가 깊었다.
달리는 그런 미술 애호가 아버지 덕에 예술과 친해졌다. 6살에 이미 유화물감으로 풍경화를 그릴 줄 알았다. 15살 때는 아버지를 흉내내 동네 극장에서 전시회도 개최했다. 달리에겐 온 가족이 함께 가는 여름 휴가지 일대 전시를 보는 게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그는 자연스럽게 예술가의 꿈을 꿨다. 분명 천재 예술가가 될 수 있으리라고 확신했다. 1922년, 달리는 마드리드에 있는 산 페르난도 왕립 미술학교에 입학했다. 그는 파블로 피카소의 그림을 공부했다. 가슴이 뛰었다. 같은 나라 출신의 23살 연상 화가가 내놓은 작품에는 그간 없는 새로움이 있었다. 현실에선 볼 수 없는 환상적인 분위기가 있었다.
살바도르 달리, 창가에 서 있는 소녀 |
파블로 피카소, The Old Guitarist [www.PabloPicasso.org] |
몽환적인, 그러면서 비현실적인 무언가….
달리는 자기도 그런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지루한 그림 말고, 재밌는 그림을 그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1925년의 어느 날, 달리는 여동생 안나 마리아를 모델로 세웠다. 마리아를 보고 쓱, 눈을 반쯤 감고 또 쓱, 눈을 완전히 감은 채 떠오르는 상상을 따라 다시 쓱…. 달리는 그렇게 선을 긋고 색을 칠했다. 그의 선은 차분했다. 색조도 담담했다. 굵은 하늘색 줄무늬 원피스를 입은 여동생이 창밖을 보고 있다. 얇은 하늘색 줄무늬 커튼이 여동생의 시녀처럼 양옆에서 나란히 하늘거린다. 창밖에는 사파이어처럼 반짝이는 낭만적인 바다가 펼쳐져 있다. 서정적인, 그러면서 환상적인 작품이다. 살면서 한 번쯤은 볼 수 있을 장면인 듯하면서도, 평생 단 한 번도 볼 수 없는 듯한 동화적인 분위기다. 피카소의 촉촉한 청색시대 시절 감성을 자기 것으로 완전히 녹여낸 듯도 하다. 제목은 '창가에 서 있는 소녀'였다. 그는 이 그림을 그 해 전시회에 내걸었다. 역시나 큰 반향이 일었다. "이 청년의 장래는 아주 밝군." 선배 화가들과 평단도 모두 인정했다. 피카소가 직접 찾아와 달리의 그림을 보고 갔다는 소문도 있을 정도였다.
필립 할스먼, Dalí Atomicus |
달리는 소질을 증명했다.
그는 앞으로 이런 그림만 그려도 평생 먹고 살 수 있었다. 하지만 달리는 이 정도 몽환적 분위기로는 만족하지 못했다. 그는 더 특이한 걸 원했다. 더 기상천외한 걸 바랐다. 그래야 속이 편할 게 분명했다. 사실, 달리라는 인간 자체가 파격의 연속이었다. 그가 지금껏 행한 괴상한 짓(?)을 보면 어떻게 저런 차분한 그림을 그렸는지 외려 궁금해진다.
달리는 어릴 적부터 괴상했다. 그는 금색 왕관과 망토를 두른 채 여장을 했다(달리 : 잠깐 여자가 되고 싶었어요!). 가위를 들고 할머니의 긴 머리카락을 싹둑 잘랐다(달리 : 그냥 참을 수 없었어요!). 계단에서 일부러 구르기도 했다(달리 : 중력을 실험하고 있어요!). 정체 모를 알을 주머니에 잔뜩 넣고 다니는가 하면, 화장실이 아닌 복도에 배설물을 남기기도 했다. 달리는 학생 때도 유명했다. 좋게 보면 댄디가이, 나쁘게 보면 관심병이었다. 그는 긴 머리를 멋스럽게 손질했다. 구레나룻은 얼굴 끝까지 올 기세였다. 코트, 스타킹, 특이한 향수 등 모든 게 그 시절 흔한 감성은 아니었다. 달리의 이런 괴짜 행동은 죽을 때까지 이어지게 된다. 달리는 늘 죽은 형을 떠올렸다. 지독한 트라우마였다. 그는 세상이 자신을 죽은 형이 아닌, 살아있는 동생으로 봐줬으면 했다. '형이라면 저러지 않았을 텐데?'가 아닌, '형이 아니니 저러는구나!'라는 생각을 해줬으면 했다. "나는 결코 죽은 형이 아니며, 살아있는 동생이란 점을 증명하고 싶었다." 언젠가 달리는 이런 말도 했다. 그렇기에 이상한 행동에 더 집착했다. 그러다보니 기행(奇行)은 어느새 삶의 근간이 돼버렸다.
살바도르 달리 |
통통 튀는 달리의 학교생활은 아슬아슬했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어느 날, 교수가 학생들을 모아 성모 마리아의 조각상을 보여줬다. '보이는대로' 그리라는 과제를 냈다. 모두가 성실히 임했다. 조각상을 캔버스에 갖다 붙인 양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달리만 그러지 않았다. 달리가 그린 건 그가 광고지에서 본 저울이었다. "자네는 학교가 장난인가?" 교수는 어이가 없었다. "교수님. 그게 아니라요. 저 또한 다른 이들처럼 성모 마리아를 볼 수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저한테 보이는 건 저울뿐이었습니다." "왜 하필 다른 것도 아닌 저울을 본 건가?" "음…. 글쎄요." 달리는 쫓겨나듯 물러나야 했다. 이 밖에도 달리는 여러 기괴한 행동, '학생들을 선동하고 있다'는 식의 소문 등으로 여러 번 경고를 받았다.
안달루시아의 개 포스터 [Les Grands Films Classiques] |
기어코 일이 터졌다.
1926년, 달리는 졸업을 코앞에 두고 이뤄지는 졸업 면접시험을 거부했다. "제가 면접장에 앉은 교수 세 분보다 뛰어나잖아요. 근데 왜 그들 앞에서 면접을 봐야 하는데요?" 발칙한 이유였다. 달리는 결국 퇴학 처분을 받았다. 훗날 달리는 자서전을 통해 "학교 체제에 염증을 느꼈다. 교수들이 내 그림을 평가할 자질이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퇴학 당한 게 아니라 자퇴했다"고 주장한다. 그래도 달리가 학교에서 얻은 것 또한 있었다. 그는 이곳에서 스페인의 국민 시인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훗날 함께 영화 '안달루시아의 개'를 작업하는 부뉴엘과 친해졌다. 삼총사란 말까지 따라왔다. 달리는 자기만큼 개성 강한 이들의 작품 덕에 기상천외한 작품을 만드는 데 더 용기 낼 수 있었다.
살바도르 달리, 바르셀로나의 인형 |
살바도르 달리, 달빛 아래 정물화 |
'그곳'은 예술의 성지였다.
지나가는 모든 이가 시인 혹은 소설가, 화가 같았다. 잉크향과 물감 냄새가 거리에 둥둥 떠다녔다. 프랑스 파리였다. 퇴학 통지서를 받은 직후 달리는 이 매력적인 도시에 발을 디뎠다. 달리는 우상 피카소와 드디어 만났다. 달리는 피카소의 소개로 호안 미로 등 동시대 입체파 화가들과 친해졌다. 이 시기에 달리는 '바르셀로나의 인형', '달빛 아래 정물화' 등 입체파 느낌이 가득한 그림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에게선 입체파 또한 무언가 부족했다. 그의 폭발하는 개성을 담기에는 이 화풍이 너무 딱딱하게 느껴졌다. 달리는 붓을 든 채 훨훨 날고 싶었다. 어떤 규범도 없이, 누구의 통제도 없이 자유롭게 헤엄치고 싶었다. 그런 달리는 그에게 너무나 완벽한 세계와 마주했다. 초현실주의였다. 이쯤 그의 손에는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책 '꿈의 해석'이 들려있었다. 초현실주의는 다다이즘을 계승한 사조였다. 다다이즘은 세계대전 등 전쟁과 학살의 현장에서 탄생했다. "그렇게나 이성과 도덕을 외쳤는데 결과가 이따위 폐허라니"라는 절망 속에서 꽃을 피웠다. 다다이스트들은 결론 내렸다. "그렇다면 이제는 이성도, 도덕도 믿지 않겠다"고. 초현실주의자들은 이들이 외친 반이성의 방(房)을 열면, 그 안에는 꿈과 무의식이 득실대리라 생각했다. 딱딱한 현실과 뻣뻣한 의식이 빚은 게 고작 전쟁이라면, 이젠 말랑한 꿈과 자유로운 무의식에 희망을 걸 수밖에 없겠다고 판단했다. 즉, 초현실주의자들에게 '초현실'이란 인류에게 제안하는 새로운 행성이었다. 이성이 조종하는 방황하는 칼날을 피할 대피소였다. 이제 이들의 사명은 확실했다. "예술은 (현실과 의식을 피해)무의식으로 들어갈 수 있는 통로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이는 프로이트의 말이기도 했다.
살바도르 달리, 임신한 여성이 된 나폴레옹의 코, 독특한 폐허에서 멜랑콜리한 분위기 속 그의 그림자를 따라 걷다 [Fundacio Gala-Salvador Dali] |
달리는 초현실주의 세계에서 물 만난 고기였다.
그가 '창가에 서 있는 소녀'에서 떡잎을 보였듯, 그는 꿈결 같은 그림을 그리는 데 타고난 재능이 있었다. 달리는 당시 초현실주의 사조의 수장인 앙드레 브르통과 의기투합했다. 1929년, 초현실주의 클럽에 정식 가입했다. 이제 달리는 잘 때 숟가락을 쥐고 잤다. 큼직한 팔걸이의자 옆에는 항상 이젤과 캔버스가 있었다. 그의 손가락 틈 사이로 숟가락이 쨍그랑하고 떨어지면 벌떡 일어났다. 어디에 홀린 사람처럼 곧장 그림을 그렸다. 그가 잠에서 깨기 직전까지 꿈속에서 본 풍경을 표현했다. 달리가 그의 상징인 콧수염을 기르기 시작한 일 또한 이쯤부터였다. 이는 조국의 전설, '17세기 회화의 거장'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콧수염을 따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디에고 벨라스케스, 자화상 |
살바도르 달리, 구운 베이컨 조각과 함께 있는 부드러운 자화상 |
그날따라 무척 피곤했다.
지독한 편두통에 머리도 아팠다. 결국 극장 약속을 취소했다. 달리는 홀로 집에 있었다. 섰다가, 앉았다가, 눕기를 반복했다. 두통이 약해지는 자세를 연구했다. 배가 고팠다. 그는 실험을 미뤄두고 부엌으로 갔다. 식탁 위에 챙 넓은 접시가 있었다. 그 안에는 아주 숙성 잘 된 까망베르 치즈가 줄줄 녹고 있었다. 달리는 잠시 멈춰 그 모습을 살펴봤다. 손가락을 쑥 찔러넣어 맛을 봤다. 갑자기 머릿속에서 종이 울렸다. 꿈에서 본 여러 장면이 마구 뒤섞였다. 달리는 허기도 잊고 작업실로 달려갔다. 햇살이 내리쬐는 해안 절벽을 그린 그림 앞에 섰다. 달리는 새로운 사물을 덧바르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참기가 힘들었다. 이를테면, 까망베르 치즈처럼 끈적하게 흘러내리는 무언가…. 이날 그는 더 이상 편두통을 느끼지 않았다.
살바도르 달리, 기억의 지속 |
그림에선 늦아침의 강한 빛을 받는 암벽과 바다를 볼 수 있다.
물기가 없는 땅은 사막처럼 메말랐다. 이곳은 달리의 고향과 맞붙은 스페인 북동부 해안이었다. 왼쪽에는 관 모양 상자와 올리브 나무가 있다. 근처에는 사람의 옆모습 같은, 그게 아니라면 끈적한 바다 동물 같은 형상이 널브러져 있다. 이 기묘한 풍경에서 눈길을 사로잡는 건 따로 있다. 힘 빠진 까망베르 치즈처럼 축 늘어진 시계들의 모습이다. 하나는 상자에 얹어졌고, 하나는 나무에 걸려있고, 또 하나는 괴생명체 위에 놓여있다. 주황색의 정상적인 회중시계도 볼 수 있다. 다만, 이 위에는 검은 개미들이 잔뜩 모여있다. 이 낯선 해변은 어디인가. 기이한 덩어리는 무엇인가. 시계는 왜 녹고 있는가. 죄다 미심쩍다.
살바도르 달리, 기억의 지속(일부) |
달리는 그림에 데페이즈망(dépaysement·낯설게 하기) 기법을 썼다.
낯익은 대상을 예상치 못한 공간에 배치하는 기법이다. 가령 까망베르 치즈가 화성의 분화구에 있는 모습, 마르셀 뒤샹이 버뮤다 삼각지대 위 뗏목에서 체스를 두는 모습 등 낯선 장면을 표현해 보는 이들에게 강한 인상을 안기는 식이다. 그 충격을 동력 삼아 꿈과 무의식의 세계로 내달릴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다. 그림에선 달리의 개인사도 볼 수 있다. 달리는 자기는 보지도 못한 형의 죽음, 이에 대한 부모의 과한 집착 등으로 범벅인 과거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시계는 그런 과거를 안은 채 부식되는 듯하다. 달리는 병적으로 벌레를 무서워했다. 그런 벌레들이 올라탄 시계는 괴짜로만 보이는 그의 무의식 속 불안과 공포를 표현하는 듯하다. 달리는 그의 꿈과 무의식을 활용해 가장 '초현실스러운' 작품을 만들었다. 제목은 '기억의 지속'이었다.
살바도르 달리, 볼테르의 흉상 |
1931년, 달리는 이 그림을 초현실주의 클럽이 미국 뉴욕에서 전시를 할 때 내놓았다.
최고의 화제작이었다. 달리는 이제 국제적 명성을 갖는 예술가였다. 가장 잘나가는 초현실주의자였다. 하지만 달리는 여전히 조마조마한 문제아였다. 문명의 물질주의가 전쟁을 불렀다고 본 당시 초현실주의자 대부분은 공산주의를 신봉했다. 그런데, 달리는 자기 혼자 자본주의를 열심히 찬양했다. 독재자를 옹호하는 듯한 말도 했다. 실없이 입을 열던 그인 만큼, 그게 진심인지 조롱 내지 농담인지 알 수 없었다. 동료들은 그런 달리를 견디지 못했다. 1934년, 달리는 초현실주의 그룹에서 쫓겨났다. 그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한 마디를 내뱉었다. "내가 초현실주의 자체인데!" 달리는 주눅 들지 않고 열심히 움직였다. 2년 후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자 이탈리아로 피했다. 얼마 뒤 제2차 세계대전이 터졌을 땐 미국으로 피신했다. 스페인 내전의 참상 알리기에 힘 쏟은 작가 조지 오웰이 달리를 두고 "쥐새끼처럼 도망친다"고 할 만큼 바쁘게 돌아다녔다. 그런 달리 옆에는 한 여성이 있었다. 그가 첫눈에 반했던 운명의 여인, 갈라였다. 어떻게 된 걸까.
살바도르 달리, 갈라의 초상화 |
"썩 유쾌하지 않은 어린 시절이었군요."
"그런가요? 하하!" 다시 1929년, 달리 주최의 파티장. 달리와 갈라가 마주 보며 말을 이어갔다. "형만 찾던 부모가 원망스럽지는 않았어요?" 갈라가 달리의 손등 위로 손바닥을 올렸다. "당신은 여전히 아기 같아요. 우리는, 이제 더는 헤어지지 않을 거예요." 갈라가 속삭였다. 갈라가 던진 회심의 일격에 달리는 녹다운이었다. 그사이 달리 또한 특유의 천진난만함으로 갈라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한다. 25살 달리, 35살 갈라 사이 인연은 이제 시작이었다. 눈 맞은 둘은 얼마 뒤 파리에서 열린 달리의 개인전 중 사실상 동반 도주했다. 그리고 1934년, 갈라는 엘뤼아르와 이혼했다. 이제 달리와 갈라는 자타공인 연인이었다. 두 사람의 스캔들에 예술계가 들썩였다. 4차원의 달리, 팜파탈 기질의 갈라는 분명 독특한 조합이었다. 둘은 모두의 우려를 깨부수고 찰싹 붙었다. "내 어머니보다, 내 아버지보다, 피카소보다, 그리고 심지어 돈보다도 나는 갈라를 더 사랑한다. 그녀는 나를 치유했다." 달리는 갈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달리는 관음증 환자, 갈라는 노출증 환자니, 궁합이 썩 잘 맞나보오." 사람들은 이런 분석까지 내놓았다.
살바도르 달리, 양 갈비를 어깨에 걸치고 있는 갈라 |
달리는 이제 갈라를 모델로 놓고 초현실주의 그림을 그렸다.
만족스러운 듯 눈을 지긋하게 감은 갈라가 화폭의 거의 반을 차지하고 있다. 갈라의 어깨에는 양갈비가 얹어졌다. 배경은 이성과 문명이 낳은 전쟁에 할퀴어진 폐허 같다. 식당의 흔적 따위 찾아볼 수 없다. 자신이 초현실주의 자체라고 말한 달리가 그 지위를 갈라와 나누기로 한 걸까. 이에 따라 행복해보이는 갈라를 초현실주의, 쑥대밭이 된 배경을 초현실주의 이전 시대로 표현한 걸까. 해석이 난무했다. "갈라의 어깨에 왜 하필 양갈비를 얹었어요?" 1934년 미국 뉴욕에서 이 그림을 선보인 달리는 이런 질문을 받았다. "저는 갈라를 좋아해요. 양갈비도 좋아해요. 그러니 그 둘을 함께 그리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요?" 답변 또한 초현실주의 같았다. 제목은 '양 갈비를 어깨에 걸치고 있는 갈라'였다.
살바도르 달리, 다가오는 밤의 그림자 |
달리의 그림이 그렇듯, 둘 사이도 특이하긴 했다.
사랑에는 여러 유형이 있다지만, 이들의 사랑은 그 넓은 틀에서도 아슬아슬했다. 달리는 때때로 갈라의 아기였다. 갈라는 그런 달리의 엄마처럼 행동했다. 달리는 세상 앞에서 더 어리광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는 지하철을 탄다는 생각만으로 비명을 질렀다. 남들과 이야기하다가도 자기 말에 빵 터져 종일 웃어댔다. 한번은 달리와 갈라가 은행에 함께 간 적이 있었다. 달리는 수표를 현금으로 바꾸던 중 갑자기 수표를 꽉 쥐곤 놓지 않았다. 달리는 은행원이 수표를 씹어먹을 것 같다며 칭얼댔다. 은행원은 당황했다. 갈라는 그제야 달리를 다독였다. 은행원은 수표를 씹어먹는 사람이 아니며, 설령 그렇다고 해도 현금을 받을 수 있다고 타일렀다. 이렇듯, 달리는 점점 더 갈라에게 의지했다. 갈라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는 의사의 가운에 매달려 서럽게 우짖기도 했다. 그가 갈라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여 그린 그림이 '다가오는 밤의 그림자'였다.
살바도르 달리, 갈라의 발, 입체적 작품 [Fundacio Gala-Salvador Dali] |
갈라는 예측 불가능한 달리의 매니저 일을 나름 성실하게 수행했다.
가령 그림 마감일이 다가오면 달리를 작업실에 가둬둔다거나, 새로운 기행을 고민하는 달리에게 열과 성을 다해 고민한 여러 아이디어를 주는 식이었다. 주변인들에게 "달리는 갈라가 없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둘은 시간이 나면 기상천외한 저녁 파티도 열었다. 이들이 연 '마법의 숲에서 보내는 초현실주의자의 밤' 파티에는 소나무 2000그루, 호랑이와 기린 등 동물 10마리, 신발 1200켤레, 할리우드에서 공수한 가장 큰 침대 등이 있었다고 한다. "저는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입니다. 아, 지금은 '아비다 달러스'(Avida Dollars·달러에 걸신들린)로 불리곤 하지요." 달리는 샤넬 등 명품 드레스를 입은 갈라와 등장해선 자기를 이렇게 소개하곤 했다.
살바도르 달리, 메이 웨스트 방 |
"망치 같은 것 들고 있는 분 없어요? 도와주세요!"
1936년, 영국 런던에서 열린 국제 초현실주의 박람회. 강연장 연단 위에 오른 달리가 몸부림쳤다. 사색이 된 그는 곧 숨이 넘어갈 듯했다. 등장은 참신했다. 마이크를 쥔 달리는, 방열모자가 달린 헬멧, 옛날 잠수복 차림으로 등장했다. 한 손에는 당구채, 또 다른 손에는 러시아 사냥개 두 마리의 목줄을 쥔 채였다. "역시 달리!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방문객들은 환호했다. 달리는 곧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인제야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달리의 완벽한 복장에는 딱 하나, 신선한 공기가 들어올 숨구멍이 없었다. 말을 할수록 숨이 막혔다. 그는 고통에 버둥댔다. 처음에는 퍼포먼스인 줄 알았다. "저거, 진짜인데?" 뒤늦게 이상함을 느낀 사람들이 달려왔다. 손톱과 주먹, 심지어 망치로 헬멧을 부수려고 했지만 너무 단단했다. 누군가가 멍키 스패너를 들고 나사를 풀지 않았다면 정말 죽을 뻔했다. 기가 차는 해프닝이었다.
살바도르 달리 |
항상 예상 밖 사건사고를 몰고 다닌 달리는 어딜 가도 슈퍼스타였다.
2차 대전 이후 달리는 꽤 오래 미국에 머물렀다. 그와 함께 작업하고 싶은 사람은 줄을 섰다. 달리는 그림, 영화, 사진, 연극, 춤 등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그는 기업 로고를 그려주고, CF에 관여하고, 영화 미술감독 격으로 엄청나게 돈이 많이 드는 장면을 짜내기도 했다. 달리는 모든 순간을 즐겼다. 평생을 관심에 굶주린 채 살아간 달리는 그에게 쏟아지는 조명을 두 팔 벌려 받아들였다. 그는 이제 고급 레스토랑에서 친구들과 밥을 먹곤 그림을 그려 값을 지불할 만큼 유명세를 만끽했다.
살바도르 달리, atomic leda |
살바도르 달리, 성 안토니우스의 유혹 |
달리가 스페인으로 돌아온 건 1948년이었다.
그는 이때부터 종교적 색채가 진한 그림을 즐겨 그렸다. 성모 마리아의 잉태, 최후의 만찬, 예수의 십자가 처형 등에 매달렸다. 물론 다른 작업도 이어갔다. 공연 설계부터 무대 연출, 천장화 제작 등 실력을 마음껏 발휘했다. 당연히 이상한 짓도 끊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보는 사람마다 "수염 하실래요?"라며 담뱃갑에서 수염을 꺼내 권유했다. 달리가 존 레넌 부인이자 그처럼 특이한 행동으로 유명했던 오노 요코에게 가짜 수염을 판 일화는 익히 알려져 있다. "수염 한쪽이요. 1만 달러에 살게요." 요코는 달리에게 제안했다. 그저 호기심이었는지, 뭘 해도 주목받는 그가 부럽고 얄미워 그랬는지는 알 수 없다. 달리는 거금에 솔깃했다. 하지만 달리는 요코가 마녀(!) 같았기에, 수염을 주면 마법을 걸 것으로 생각했다. 달리는 마당에서 마른 잔디 한 줄기를 잘랐다. 거기에 물감을 칠한 후 선물했다. 이를 받은 요코가 감쪽같이 속아 돈을 보냈다는 설, 알고도 재치에 속은 척해줬다는 설, 펄쩍 뛰며 성질을 부렸다는 설 등이 있다.
살바도르 달리와 갈라 |
살바도르 달리와 갈라 |
달리는 그간 자신을 감당해준 갈라에게 선물을 줬다.
스페인 카탈루냐 북부에 있는 지로나의 성 한 채였다. 갈라의 허락 없이는 그 성에 가지 않겠다는 말도 했다. 1968년, 성의 주인이 된 갈라는 달리 없는 자유를 즐겼다. 성안에서 젊은 남자들과 함께 자유롭게 연애했다. 갈라가 가장 아낀 애인은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에서 예수 역을 맡은 제프 팬홀트였다. 당시 둘의 나이 차는 43살이었다. 달리는 애가 탔다. 그래도 약속은 약속이었다. 한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었다. 그의 건강은 급격히 나빠졌다. 편두통이 또 고개를 들었다. 우울증과 망상증, 신경쇠약이 함께 따라왔다. 달리는 작품 활동을 지속했다. 하지만 갈라와 떨어진 후부터 그는 이미 반쯤 죽은 삶이었다. 시간은 늘어진 시계처럼 맥없이 흘러갔다. 1980년, 달리는 붓을 잡기 어려울 만큼 팔을 떨었다. 중풍으로 수전증이 온 탓이었다. 2년 후 갈라가 87살 나이로 죽었을 때 달리는 아이처럼 흐느꼈다. 그렇게 그는 나머지 반의 삶도 내려놓은 듯했다. 달리는 거의 침대에서 생활했다. 그러다 화재 사고로 치명적 화상을 입었으나 끝내 살았다. 1988년, 그는 마지막으로 병원에 실려갔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때 달리가 요청한 건 TV였다. 자기가 곧 죽는다는 소식의 뉴스를 봐야한다는 것이었다. 끝까지 관심을 갈구하던 그는 다음 해 1월 사망했다. 사인은 폐렴과 심장병 합병증이었다. 나이는 84살이었다.
살바도르 달리, 공으로 그린 갈라 |
살바도르 달리 |
"내 시계가 어디 있어?"
달리의 유언이었다. 달리에게 시계는 인생의 파노라마였다. 시계는 죽은 형을 떨쳐내기 위한 과거와의 단절, 대안 예술로써 초현실주의를 향한 믿음, 세속적 성공을 안겨준 증표 등 복합적 상징물이었다. 그는 여러모로 드라마 같은 삶을 살았다. "모든 교회의 종을 울릴지어다! 허리를 구부리고 밭에서 일하는 농부들이여, 지중해의 북풍에 뒤틀린 올리브 나무처럼 굽은 허리를 바로 세울지어다! (…) 보라, 살바도르 달리가 태어났도다." 달리가 자신의 호적 신고를 하던 날에 대해 쓴 글이다. 어쩌면, 그가 남긴 가장 초현실주의적 작품은 그때부터 이미 시작됐을지도 모른다.
〈참고자료〉
살바도르 달리, 살바도르 달리, 이마고
달리 나는 천재다, 살바도르 달리, 다빈치
Salvador Dali at Home, de Burca, Jackie, Frances Lincoln
〈후암동 미술관 현대미술 편 읽는 순서〉
1) “벌거벗은 女로 우릴 조롱” 욕이란 욕 다 먹었다[후암동 미술관-에두아르 마네 편] - 최초의 모더니스트 (2023. 6. 24.)
2)“11살 연하女와 비밀연애, 자식도 낳았다고?”…10년 숨겼다 ‘들통’[후암동 미술관-폴 세잔 편] - 현대미술 창시자 (2023. 7. 1.)
3)“나체女에 웬 아프리카 가면?” 얼빠졌다 조롱당한 그의 ‘반전’[후암동 미술관-파블로 피카소 편] - 희대의 반항아 (2023. 5. 20.)
4)“내 이름은 로즈” 여장남자된 30대男 전말…‘빅픽처’ 있었다[후암동 미술관-마르셀 뒤샹 편] - 열정의 탐험가 (2023. 6. 10.)
5)시뻘건 내 피와 교감해보겠나…울든, 기절하든 그대 마음[후암동 미술관-마크 로스코 편] -교감의 마술사 (2023. 6. 17.)
6)“관음男-노출女가 만났네요” 조롱…둘은 ‘환상의 짝꿍’이었다[후암동 미술관-살바도르 달리 편] - 위대한 쇼맨 (2023. 7. 8.)
7)“죽일거야” 그녀가 쏜 3번째 총알이 몸 관통…죽다 살아났지만[후암동 미술관- 앤디 워홀 편] - 위대한 악동 (2023. 6. 3.)
8)“흑인의 삶 어때?” 무례한 공격들…마돈나도 반한 27살男 무너졌다[후암동 미술관-장 미쉘 바스키아 편] - 자유의 반군 (2023. 5. 27.)
〈후암동 미술관 이론 편 읽는 순서〉
1)천사가 이렇게까지 운다고? 무섭게 왜 그래[후암동 미술관-조토 편] - 르네상스 선구자(2022. 7. 2.)
2)뻥 아냐, 600년전인데 이 정도 ‘입체 그림’ 있었다[후암동 미술관-마사초 편] - 원근법 선구자(2022. 8. 27.)
3)세계서 가장 유명한 이 ‘레이저 눈빛’, 그것은 사랑?[후암동 미술관-얀 반 에이크 편] - 유화 선구자 (2022.5.21.)
4)‘레드벨벳’도 춤추게 한 이 화가의 정체…"악마의 아들? 나 원 참" [후암동 미술관-보스 편] - 초현실주의 선구자 (2022.5.28.)
5)아리따운 금발 여인, 외간남자 목을 베고 있는거야?[후암동 미술관-카라바조 편] - 바로크 선구자 (2022.6.11.)
6)아름다운 여인, 끌어안고 난리난 옆 커플이 부러워[후암동 미술관-와토 편] - 로코코 선구자(2022.10.8.)
7)맨몸 여인들, 전쟁 뛰어들어 “그만!” 사자후…싸움 막았다[후암동 미술관-다비드 편] - 신고전주의 선구자 (2022.10.15.)
8)표류 D+13, 왜 몰랐지? 뗏목 위 널린 게 먹을건데[후암동 미술관-테오도르 제리코 편] - 낭만주의 선구자 (2022.5.14.)
9)“천사요? 데려오면 그려드리죠” 이놈의 똥고집[후암동 미술관-귀스타브 쿠르베 편] - 사실주의 선구자 (2022.5.7.)
10)“관상가 양반 아니었어?” 조선의 ‘얼굴’, 몰랐던 사실[후암동 미술관-윤두서 편] - 사실주의 특별 편 (2022. 11. 19.)
11)벌거벗은 이 여자, 뭐 때문에 빤히 쳐다보나[후암동 미술관-에두아르 마네 편] - 인상주의 선구자(2022. 4. 23.)
12)“못 그렸는데 폼만 잡아” 욕먹던 이 그림, 3300억이요? [후암동 미술관-클로드 모네 편] - 인상주의 선구자⑵ (2022.4.30.)
13)‘점투성이’ 수상한 커플 정체는? [후암동 미술관-조르주 쇠라 편] - 신인상주의 선구자 (2022. 6. 25.)
14)반 고흐 최애작, 별밤·해바라기 아닌 ‘이 사람들’ [후암동 미술관-빈센트 반 고흐 편] - 표현주의 선구자 (2022.6.4.)
15)이 ‘사과’ 때문에 세상이 뒤집혔다, 도대체 왜?[후암동 미술관-폴 세잔 편] - 근대 회화 선구자(2022. 7.9.)
16)‘생각하는 사람’ 진짜 정체, 남모를 사정도 있었다[후암동 미술관-오귀스트 로댕 편] - 근대 조각 선구자 (2022. 10. 22.)
17)화끈한 키스, ‘이 여성’ 사르르 녹아내리다[후암동 미술관-구스타프 클림트 편] - 분리파 선구자 (2022. 8. 13.)
18)나체 여인, 어쩌다 사자 득실대는 정글 한복판에[후암동 미술관-앙리 루소 편] - 근대 초현실주의 선구자 (2022. 7. 30.)
19)헐크색 피부 갖게 된 ‘이 여성’…이 놈의 ‘남편’ 때문에[후암동 미술관-앙리 마티스 편] - 야수주의 선구자 (2022. 7. 16.)
20)잘생긴 법학 교수님, ‘이것’ 그렸더니 미술계 '발칵'[후암동 미술관-바실리 칸딘스키 편] - 추상회화 선구자 (2022.7. 23.)
21)“이건 나도 그리겠다!” 1순위 그림, 그 놀라운 비밀[후암동 미술관-몬드리안 편] - 추상회화 선구자⑵ (2022. 8. 6.)
22)스파게티 면발? 1315억에 팔린 그림, 충격적 이유[후암동 미술관-잭슨 폴록 편] - 액션페인팅 선구자 (2022. 10. 29.)
23)몸 좋은 보디빌더, 거대 막대사탕 들고 ‘의문의 포즈’[후암동 미술관-리처드 해밀턴 편] - 팝아트 선구자 (2022.11.12.)
24)“동양서 ‘테러리스트’가 왔다” 피아노 다 때려부쉈다[후암동 미술관-백남준 편] - 비디오 아트 선구자 (2022.11.26.)
〈후암동 미술관 인물 편 읽는 순서〉
1)“이런 나체화는 뒷골목에 내걸어!” 꼬장한 천재 모욕한 자 최후는[후암동 미술관-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편] - 신의 예술가 (2023. 4. 7.)
2)“12살 어린 빵집女와 몰래 연애를?” 소름돋은 목격자, ‘증거인멸’해줬다[후암동 미술관-라파엘로 산치오 편] - 모든 화가의 왕자 (2023. 4. 15.)
3)“성폭행 피해자는 나야!” 고문도 견딘 그녀…복수는 우아했다[후암동 미술관-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편] - 영원한 복수자 (2023. 1. 28.)
4)“예쁜 내 금발 공주님”…‘딸바보’ 국왕 눈에선 꿀이 뚝뚝[후암동 미술관-디에고 벨라스케스 편] - 고결한 관찰자 (2023. 2. 24.)
5)“아내·자식·명예 다 잃었다”…그런데 왜 ‘빵’ 터지셨어요[후암동 미술관-렘브란트 편] - 빛의 마술사 (2023. 1. 7.)
6)‘이 그림’ 때문에 화형당할뻔…어느 야심가의 기구한 삶[후암동 미술관-프란시스코 고야 편] - 흑화한 사상가 (2023. 2. 4.)
7)“날 잊지마오” 가시덤불 ‘감옥’ 8년 갇혔다…그림에 펑펑 울었다[후암동 미술관-추사 김정희 편] - 조선의 품격 (2023. 3. 11.)
8)“6년 약혼女두고 바람…죽자 묘지까지 파헤쳤다” 이 남자, 변명 들어보니[후암동 미술관-단테 가브리엘 로제티 편] - 위험한 사랑꾼 (2023. 3. 18.)
9)“죄송해요, 엄마가 너무 싫어요” 효자 아니었어?…이 화가의 ‘반전’[후암동 미술관-제임스 휘슬러 편] - 모던한 이방인 (2023. 3. 4.)
10)“14살 소녀 이따위로 만들었어?” 평생 먹을 욕 다 먹었다[후암동 미술관-에드가 드가 편] - 무희의 화가 (2023. 3. 25.)
11)‘미녀 그리기’에 진심이었던 이 화가, 진짜 이유[후암동 미술관-오귀스트 르누아르 편] - 행복을 그린 화가 (2022. 12. 24.)
12)“고갱 그놈, 도대체 왜 그래?” 악마인지 ‘악마의 재능’인지[후암동 미술관-폴 고갱 편] - 고귀한 야만인 (2022. 12. 3.)
13)“나랑 6년 계약해” 유명 女배우의 파격제안…인생 달라졌다[후암동 미술관-알폰스 무하 편] -체코의 긍지 (2023. 2. 18.)
14)“백번은 넘게 봤겠다” 모두 아는 ‘이 절규’의 놀라운 비밀[후암동 미술관-에드바르 뭉크 편] - 노르웨이의 현자 (2022. 12. 31.)
15)“이놈의 짧은 다리 때문에” 카바레 스타의 영광과 몰락[후암동 미술관-툴루즈 로트레크 편] - 작은 거인 (2022. 12. 17.)
16)“로댕 아이를 뱄다” 폭탄선언 여성, 30년 수용소에 갇혔다[후암동 미술관-카미유 클로델 편] - 천재와 맞선 천재 (2022. 11. 5.)
17)눈동자 없는 기괴한 여자 그림, 알고 보니[후암동 미술관-아메데오 모딜리아니 편] - 파리의 귀공자 (2022. 12. 10.)
18)숨참고 키스 다이브!…아내가 그렇게 좋으셨어요[후암동 미술관-마르크 샤갈 편] - 순수한 방랑자 (2023. 2. 11.)
19)“당신은 저질 누드화가야!” 격분한 판사, 면전서 그림 불태웠다[후암동 미술관-에곤 실레 편] - 영원한 아이 (2023. 4. 1.)
20)당신은 모르실거야, 키스하는 두 사람 왜 이 꼴인지[후암동 미술관-르네 마그리트 편] - ‘진짜’ 괴짜 (2022. 9. 3.)
21)피카소도 ‘이 그림’에 “대박!” 감탄, 각성했다는데[후암동 미술관-피카소·마티스 편] - 피·마 대전 (2022. 9. 10.)
22)3번 유산·35번 수술의 악몽…그럼에도, 인생이여 만세[후암동 미술관-프리다 칼로 편] - 고통의 여왕 (2023. 1. 14.)
23)“내 천사여” 편지 사방팔방에 ‘뽀뽀’…한 무연고자의 죽음[후암동 미술관-이중섭 편] - 아고리, 나의 아고리 (2023. 1. 21.)
24)권총도 채찍도 버텼는데, ‘이 남자’ 행동에 무너졌다[후암동 미술관-마리나 아브라모비치 편] - 우아한 전사 (2022. 8. 20.)
〈후암동 미술관 현장 편 읽는 순서〉
1)이건희 컬렉션, 이 ‘다섯 작품’ 놓치지 마시라[후암동 미술관-‘어느 수집가의 초대’ 출장 편] - 전시 특집 (2022. 6. 18.)
2)알코올 중독 ‘이 남자’, ‘파리’에 미치자 놀라운 일 터졌다[후암동 미술관-몽마르트 언덕 편] - 동행자 : 모리스 위트릴로 (2022. 9. 17.)
3)고흐 “슬픔은 왜 나한테만” 펑펑 울었다, 고작 2평 다락방에서[후암동 미술관-오베르 편] - 동행자 : 빈센트 반 고흐 (2022 9. 24.)
4)모네 “앞이 안 보여도 상관없어”…백내장도 못 막은 그의 ‘최후작’[후암동 미술관-지베르니 편] - 동행자 : 클로드 모네 (2022.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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