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생발전 비중 낮은 韓에 부담
에너지구조 획기적으로 바꿀 계기
관련기술 가진 기업 많아 기회될만
제28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8)가 막을 내렸다. 화석연료의 퇴출(phase out) 방침과 탄소배출 감축 의무를 강제하는데는 실패했지만 화석연료 의존을 벗어나(away from) 탄소배출 제로(Net Zero)를 위한 행동에 나서자는 데에는 합의했다. 입장에 따라 평가가 다르겠지만 COP27 보다는 조금이나마 더 나간 것은 분명하다. 무엇보다 인류의 지속 가능한 생존을 위해 지구의 환경을 지키는 문제가 경제의 주요 현안이 된 것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맥킨지 자료 |
2015년 파리협약에서 세계는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2℃보다 상당히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고, 가급적 1.5℃ 이하로 제한하기 위한 노력을 하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세계기상기구(WMO)가 측정한 올 10월 기준 세계평균 기온은 벌써 산업화 이전 보다 1.4℃나 높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각국이 약속을 충실히 이행해도 2030년에는 온실가스 배출 감축분이 파리협약에서 정한 목표치의 3분의 1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이대로라면 지구가 계속 뜨거워져 기상이변 등을 피할 수 없을 것이란 뜻이다.
COP28 개막 전 온실가스 주범인 탄소 배출을 줄이기위해 화석연료(석탄, 석유, 천연가스) 퇴출 선언을 할 것이란 기대가 있었다. 기후협약이 구속력을 가지려면 198개 회원국 전부가 합의해야 한다. 하지만 전세계 에너지 공급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화석연료의 퇴출 선언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란 견해도 적지 않았다. 사실 화석연료 퇴출을 주장한 미국이나 유럽(특히 노르웨이), 남미는 최근 산유량을 공격적으로 늘리고 있다. 오히려 화석연료 퇴출에 반대하는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등은 원유 생산을 줄이고 있다.
주목할 부분은 이번 COP28에서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을 3배 에너지효율을 2배 높이자는 절충안에 123개국만이 동의한 점이다. 또 향후 2년내 모든 국가들이 포함한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한 ‘공격적인 목표’(ambitious target)를 설정하기로 했다. 불과 7년 내 재생에너지 발전이 획기적으로 늘고 연료효율이 크게 개선된다면 화석연료 의존도는 낮아질 수 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이뤄질 막대한 투자는 세계 경제성장의 동력이 될 만하다. COP28의 최대 성과가 ‘화석연료는 더 이상 에너지의 미래가 아니다’라는 합의에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신재생 발전 비중이 높아지면 탄소배출량도 줄게 된다. 유엔의 기후변화 정부 협의체(IPCC) 과학자들은 10년 내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현재의 절반으로 줄일 것을 강력 권고하고 있다. 신재생 발전 확대 부담은 곧 탄소배출량 축소 부담이다. 이미 유럽연합은 수입품에 대한 탄소배출량 규제에 돌입했다. 수입하는 제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배출된 탄소의 양을 유럽연합 기준으로 맞추라는 규제다. 역내 항구에 정박하는 선박의 탄소배출량도 규제하기 시작했다. 탄소배출을 줄이지 못하면 수출 길도 막히는 시대가 됐다.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은 뭘까? 2022년 기준 한국은 세계에서 9번째로 탄소배출량이 많다. 국내총생산(GDP) 대비로는 선진국 가운데 가장 많다. 신재생 발전 비중은 간신히 8%를 넘어 세계 평균(29%)에도 한참 모자라는 주요국 꼴찌 수준이다. 화석연료 퇴출 시한이 정해졌다면 부담이 엄청났을 수 있다. 그렇다고 안도하기도 어렵다. 재생에너지 발전용량이 지금보다 3배가 확대되면 유럽은 100%가 넘고, 전세계적으로도 90%에 육박하지만 우리는 30% 남짓이다. 세계적 흐름을 따라잡으려면 7년새 10배를 늘려야 한다.
전기자동차(EV)와 함께 인공지능(AI)이 확산되면 전기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전세계 에너지 소비의 10%를 차지하는 전력의 비중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재생에너지 발전을 3배 확대해도 수요를 감당하지 못할 수 있다. 재생에너지가 아니더라도 탄소배출 없이 대규모로 전기를 생산할 방식이 필요하다. COP28에서는 2050년까지 원자력발전 용량을 3배 이상 늘리겠다는 21개국의 선언이 이뤄졌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 캐나다, 핀란드, 프랑스, 일본, 네덜란드, 스웨덴, 영국 등 선진국들이 동참했다.
태양광, 풍력, 수력 등이 가장 친환경적 발전으로 보이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재생에너지로 발전해도 이를 멀리 떨어진 소비지역까지 보내는 문제가 남는다. 전력망(electric grid) 구축이 필요하다. 비용도 막대하지만 친환경적이기도 어렵다. 이 때문에 주목받는 게 소규모원자력발전(SMR)이다. 기술발전으로 물로 냉각하지 않고 폐기핵물질을 연료로 쓰는 SMR도 가능해졌다. 기존 원자력 발전 대비 환경 부담이 덜하다. 안전성 논란이 여전하지만 짧은 시간에 대규모 전기 수요를 감당할 유력한 수단이라는 평가가 많아지고 있다.
최근 맥킨지는 지구 환경을 지키면서도 인류의 경제 성장을 유지하는 양립가능한(campatable) ‘탄소배출량 0‘(Net Zero) 전환 요건을 제시했다. 비용(affordable), 신뢰(reliable), 경쟁력(competitive)이다. 한마디로 화석연료 대비 효율이 높아져야 신재생으로의 전환이 원활해진다. 이미 경제발전을 이룬 선진국 보다 신흥국은 경제개발을 위해 앞으로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할 수 있다. 이들이 당장 값싼 화석연료에 의존하지 않게 하려면 신재생에너지의 효율을 높일 기술개발과 규모의 경제를 이룰 설비투자가 필요하다.
맥킨지 자료 |
우리 경제에서 철강과 화학 등 탄소배출이 많은 산업의 비중이 높지만 에너지 전환과 관련된 기술에서 경쟁력을 가진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전기차와 배터리는 물론 에너지저장시스템(ESS), SMR을 비롯한 각종 첨단 발전시설을 지을 수 있는 우수한 기술을 가진 기업들이 많다. 국내외에서 관련 투자가 이뤄진다면 우리 기업들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맥킨지는 파리협약 목표를 달성하려면 현재 연간 1조5000억 달러 규모인 저탄소기술 투자가 향후 30년간 연평균 7조 달러 수준으로 늘어야 할 것으로 전망했다.
최근 열린 COP 회의에서 신재생으로의 전환을 위한 자금마련이 중요한 안건이 된 이유이기도 하다. 지구 환경을 희생해 먼저 경제성장을 이룬 선진국들이 이제는 화석연료 사용이 어려워진 신흥국들을 위해 글로벌 기금을 만들어 도와야 한다는 논의다. 이 같은 논의와 별개로 중동의 산유국들은 석유와 천연가스로 이룬 막대한 부를 전세계 신재생에너지에 투자하려 하고 있다. 언젠가 화석연료 사용이 끝나더라도 에너지 강국으로 경제적 번영을 유지하기 위한 방안이다. 달리 말하면 에너지 전환으로 엄청난 미래 시장이 열린다는 뜻이다.
산업화 이후 170여년간 세계 경제는 비약적으로 발전해왔지만 화석연료에 대한 높은 의존을 바탕으로 했다. 지구의 생명을 소모하는 ‘지속가능하지 않은’(unsustainable) 방향이었다. 교토의정서와 파리협약 이후 이어져온 기후변화 방지 노력은 지구의 생명력을 희생하지 않는 ‘지속가능한’ 성장으로의 전환을 위한 노력이다. 글로벌 경제에 혁명적인 변화가 요구된다. 그 결과물의 경제적 가치는 어마어마할 것이다. 에너지 전환에 성공한다면 위기를 기회로 바뀐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성과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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