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건설 워크아웃 신청시 신호탄
한국증권·한국저축은행 노출 최대
위험관리실패·대주주 여력도 제한
자금시장 경색되면 전 국민에 영향
시스템 위기 피하려면 대책이 중요
총선 전까지는 터지지 않을 듯했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이 결국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중견건설사인 태영건설의 워크아웃(workout,기업개선작업) 가능성이 제기됐다. 채권단이 적극적으로 돕지 않으면 태영건설 스스로 빚을 감당하기 어렵게 됐다는 뜻이다.
연말부터 내년 2월 사이 부동산PF 만기가 집중도래한다. 신용평가사들의 등급 및 등급전망 하향도 잇따르고 있다. 태영건설을 도화선으로 부동산PF에 대한 채권회수가 잇따를 수 있다. 부실이 일단 터지면 관련 PF과 연결된 건설사 뿐 아니라 돈을 빌려주거나 보증을 제공한 금융회사들도 피해를 입게 된다. 금융시스템을 통해 자금시장 전반은 물론 일반 금융소비자에까지 영향을 미칠 충격파가 발생할 가능성이 상당하다. 어떤 경로로, 어떤 회사들에 큰 영향을 미칠까.
태영건설의 문제는 3조2000억원이 넘는 부동산PF 우발채무(민자 SOC사업 제외)다. 빌린 돈을 갚을 길을 찾지 못한 미착공 현장의 비중이 절반 이상이라는 게 최근 한국투자증권 리서치센터의 분석이다. 해당사업장에 대한 보증이나 약정 등을 통한 간접 채무인 우발채무는 대차대조표에 잡히지 않는다. 3분기말 기준 태영건설의 순차입금은 1조9300억원으로 부채비율이 무려 480%에 육박한다. 장부상 순차입금에 버금가는 우발채무가 더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저런 자산을 판다고 해도 단기간에 쉽게 만들 수 있는 액수가 아니다.
워크아웃은 채권단 관리체제다. 부실기업 제출안 자구안을 채권단이 승인하면 이후 재무구조 개선기간 동안 각종 채무부담을 감당할만한 수준으로 조정해주는 제도다. 만기 연장이나 일부 탕감, 출자전환 등의 조치가 이뤄지기도 한다. 기업은 부도를 피해 자산매각과 구조조정 등을 통해 경영을 정상화 할 시간을 벌 수 있다. 채권단은 미회수 채권, 즉 손실을 최소화하는 게 목적이다. 손실을 전제로 하는 만큼 전체 채권액의 4분의 3이 동의해야 가능하다. 워크아웃에 실패하면 파산 수순(법정관리)다.
태영건설의 부실이 크지만 그 자체로 금융시스템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다. 문제는 태영건설 보다 더 열악한 다른 건설사들이 잇따라 채권상환에 실패해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를 신청할 가능성이다. 그만큼 금융권 전체가 감당해야 할 부실의 무게가 커진다. 부동산PF 관련 부실은 주로 2금융권에 집중돼 있다. 주목할 부분은 두 가지다. 저축은행 등과 같은 수신기관의 관련 여신 규모와 금융시스템에 영향력이 큰 대형증권사들의 노출액이다.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시스템을 보면 저축은행 가운데 부동산 또는 건설업 관련 대출 비중이 큰 곳을 확인할 수 있다. 올 상반기 기준 77개 저축은행의 기업대출 64조9857억원 가운데 47.33%인 30조 7600억원이 건설 및 부동산업 대출이다. 기업대출이 1조원 이상인 대형사 가운데 오케이저축은행, 한국투자저축은행, 웰컴저축은행, 다올저축은행, 대신저축은행, 모아저축은행, 하나저축은행, 엔에이치저축은행, 바로저축은행, 디비저축은행, 키움저축은행, 케이비저축은행, 키움예스저축은행, 아비케이저축은행이 업계 평균을 넘는다.
건설 및 부동산업 대출이 모두 부실은 아니지만, 부동산PF 문제가 드러나면 연체가 늘어날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질 수 있다. 부실여신이 늘면 자본을 갉아먹게 되고 자본비율이 금융당국의 적정선 아래로 떨어지면 예적금을 받는 금융회사는 정상영업이 어렵게 된다. 부동산PF 부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이 같은 상황에 대한 대비가 얼마나 잘 갖춰져 있는 지가 중요하다. 역시 부동산PF 문제가 불씨가 됐던 2011년 저축은행 사태 때에는 예금보험공사가 별도의 기금을 마련해 관련 부실을 흡수했다.
12년 전 정부는 부실 저축은행을 대형금융회사에 넘겼다. 은행지주회사와 대형증권사 대부분이 저축은행을 보유하게 된 계기다. 공교롭게도 현재 기업대출 중 부동산과 건설업 관련 비중이 큰 저축은행 상당수가 은행지주나 대형증권사 계열사다. 대형금융사 품에서 안정적인 경영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결국 또다시 시장의 부담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다만 당시와 달리 대주주가 대형회사인 곳이 많은 만큼 외부의 지원 없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일 수 있다.
사실 2금융권에서 부동산PF 부실 우려가 가장 큰 곳은 이미 연체율이 10%를 넘은 증권사다. 증권사는 금융시스템 내에서 자금중개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만큼 부실로 인해 재무건전성이 악화되면 그 파장이 엄청날 수 있다. 특히 대형증권사라면 파장은 상상 이상으로 커질 가능성이 높다. 하이투자증권이나 다올투자증권 등 중소형사의 어려움이 많이 알려져 있지만 정작 가장 심각한 곳은 한국투자증권이다. 올 상반기말 기준 우발채무 규모에서 한국증권은 약 5조9000억원으로 업계 최대다.
한국증권의 우발채무는 자본규모가 2배 가까이 큰 미래에셋증권의 2.5배에 달한다. KB증권, 신한투자증권, 하나투자증권, 삼성증권, NH투자증권도 액수가 크지만 모기업이 은행이나 대형생명보험사여서 유사시 자본을 수혈 받을 수 있다. 한국증권은 그룹내 내 최대기업이어서 모기업의 지원 여력도 제한적이다. 앞서 확인한 것처럼 계열사인 한국투자저축은행 역시 건설과 부동산 관련 기업 여신이 많은 점도 부담요인이다. 한때 증권업계 우발채무 1위였던 메리츠증권이 2020년부터 우발채무 규모를 줄인 것과 대조적으로 한국증권의 우발채무는 최근 들어 계속 가파르게 늘어났다.
부동산PF 부실 문제는 결국 금융의 문제다. 시행사나 건설사들이 무너지는 것은 빚을 갚지 못해서다. 돈을 떼인 금융회사들이 부실을 감당해야 한다. 2011년 저축은행 사태 해결을 위해 예금보험공사는 27조원 넘는 자금을 투입했지만 그 중 절반도 안되는 13조원을 회수하는데 그쳤다. 그래도 2011년에는 금융당국이 최대한 사태 확산을 막아 금융시스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경제규모가 커진 만큼 이번 부동산PF 부실사태를 해결하는 데는 그 보다 더 큰 자금이 투입될 가능성이 높다. 당시 보다 가계와 기업의 부채가 급증했다. 당분간 부동산 수요를 자극할 저금리 상황도 다시 도래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부동산PF 부실로 인한 자금시장의 경색은 미국의 긴축 종료에도 불구하고 국내 시중금리를 끌어올릴 만한 재료다.
중앙정부의 세수 부족과 그에 따른 긴축재정으로 내년 지방정부가 부족한 재정을 채권발행 등을 통해 충당할 가능성도 상정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 한전채 발행 급증이 가져온 자금경색을 떠올려 보면 공공채권인 지방채 발행이 늘면 회사채 시장을 짓누를 수도 있지 않을까. 마침 내년에는 코로나19 극복과정에서 발행된 회사채 만기가 대거 돌아온다. 부동산PF와 관련 없는 가계와 기업들도 빚 부담이 커지기 쉬운 환경이다.
부동산PF 문제에 대해 새로운 경제부총리와 국토교통부장관은 연착륙을 강조했고, 실세인 금융감독원장은 원칙 있는 정리 방침을 분명히 했다. 둘 모두 중요하다. 총선 때까지는 정부가 부동산PF 문제를 일단 덮고 갈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태영건설 사태가 불거지면서 아직 100일이나 남은 총선 때까지 문제 해결을 늦추기는 어려워졌다. 경제에는 늘 어려움이 있다. 중요한 것은 어려움 자체 보다 대처하는 방법과 태도다. 마침 해외부동산 투자 잠재부실도 시한폭탄이다. 부동산PF 문제를 잘못 다루면 자칫 금융위기로 번질 수도 있다. 반복된 실수 같지만 달리 보면 2011년 한번 다뤄봤던 문제다. 어제 오늘 문제가 아닌만큼 정부 내에 이미 효과적인 대책이 마련돼 있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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